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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May 10. 2022

주말에는 무얼 할까

해가 지면 집이 내려앉을 것 같이 매섭게 비가 쏟아지는데 해가 뜰 때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뜨거운 해가 내리쬔다. 3년 동안 1년에 두 번씩 피지를 왔다 갔다 했는데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은 밤만 되면 퍼부어대는 요란한 빗소리다. 1층인 우리 숙소에는 아주 작은 테라스 겸 현관이 있는데 빨래를 널 수 있는 빨랫줄 한 줄 휑하게 걸려 있다. 미처 걷지 못한 빨래는 잊은 채 멈출 것 같지 않은 빗소리를 들으면 '이번 주말에는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겠구나 애들이랑 집에서 뭘 하지'라는 걱정으로 잠이 든다. 아침이 되면 커튼을 뚫고 거실 안까지 기어이 들어온 뜨거운 햇살에 문을 열어보면 빨래는 이미 젖었다 말라있고 바닥에 빗 자국 하나 없이 마른땅이 비 온 적이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그 흔한 키즈카페나 아이들이 놀 만한 시설 하나 없는 곳이라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세 살 터울의 남매를 데리고 해외 독박 육아를 하자면 주말에 무얼 할지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피지에 10년 정도 사신 홈스테이 주인분은 평소 하시던 대로 일주일 먹을 식료품 쇼핑을 토요일 새벽에 가셨고 우리도 그 동선 안에서 함께 움직이기도 했다. 토요일 새벽에 가장 신선한 과일, 생선들이 시내 한복판에 있는 가장 큰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혼자 버스를 타고 깊은 캔버스 백을 매고 시장에 가서 곧잘 과일들을 사다 날랐고 그런 나에게 현지인 친구는 넌 정말 현지인 같다며 웃었다.


멀리 가지 않는 주말에 아이들은 수영복을 속에 입히고 겉옷만 빠르게 입힌다. 수건, 여벌 옷, 수영을 못하는 둘쨰의 암링 그리고 나를 위한 E-BOOK 정도만 챙겨 택시로 5분 정도 거리인 타운의 호텔 수영장으로 향한다. 타운에는 두 개의 큰 호텔이 있는데 점심 식사만 주문을 하면 수영장은 추가 금액 없이 하루 종일도 이용할 수가 있다. 호텔 로비를 지나 걸어가면 시야에 걸리는 건물이나 벽 하나 없이 하늘, 하늘과 맞닿은 바다, 그리고 아담한 수영장 온통 파랗고 파란 것들로만으로 채워져 있다. 뭐지 이 오장육부가 확 트이는 느낌은. 크거나 화려지 않고 작고 내추럴한 이 모습에 깊은 곳에 고이 쌓아 두었던 화가 남김없이 다 날아가는 듯한 이 느낌은 대체 뭘까. 뒤따라 오던 아이들은 나를 앞질러 겉옷을 던져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집을 나온 지 20분 안에 나 역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니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늘이 드리워진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고 피자와 피지워터를 주문하고 선글라스를 챙겨 쓰고 준비해 간 E-BOOK을 켠다. 낯가림이 없는 윤아 덕분에 덩달아 동생도 놀러 온 처음 보는 아이들과도 잘 놀고 때로는 우연히 학교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는 등 이보다 완벽한 주말은 없다고 만족해했다.


1년 내내 여름인 나라라 하더라도 피지의 겨울은 우리의 가을 정도 날씨이며 추위에 약한 피지 언 들은 이 계절이면 기모가 있는 겉옷을 입기도 한다. 가끔 리조트에 유러피안들은 물에서 놀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소 싸늘한 계절이다. 이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그리고 가늘고 길게 가자는 마음으로 해온 아이들의 중국어 수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구글에 다양한 검색어로 IN FIJI 만 추가하여 검색을 하던 어느 날 아는 USP 대학 안에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공자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작정 찾아가 보니 다양한 레벨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교환학생을 온 중국 선생님이 영어를 베이스로 수업을 한다고 하니 더없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외국인들이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모습들은 내 머리속에서 찌릿찌릿 큰 자극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USP 공자 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 날 선생님(중간)과


우연히 학교 벽보에 붙어있는 광고 전단지를 놓칠세라 일단 사진을 찍어놓고 집에 와서 천천히 읽어보았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 수업이 있는 프랑스의 공익기관인 알리앙스 프랑세즈(Alliances Francaises) 벽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기관이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어느 나라든 자기 나라의 언어를 홍보하거나 이주하여 살고 있는 자국민 아이들의 모국어 학습을 위해서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의 한글학교처럼 말이다.  좋게도 우리 숙소에서 걸어갈  있는 거리임을 확인하고 나는  흥분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냐고 하겠지만 사실 중국어든, 프랑스어든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이 주말에 알차게 보낼  있다면 족했다. 그런 곳에서 기본적으로 영어로 수업을 한다는 것은 더없이 매력적인 것이었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 수업이 있는 알리앙스 프랑세즈(Alliances Francaises)에서 아이들은 프랑스어 기초를 배우고 토요일 오전에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보드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며 주변 섬나라의 전통 춤도 배우는  다른 학교 아이들과 어울리는 등 알찬 시간을 보냈다. 또한  달에  번씩 이중언어라는 주제로 프랑스어와 영어로 노래를 불러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무료 프로그램부터 성인들을 위한 프랑스 영화 감상 시간이나 쿠킹클래스까지 방과 후에나 주말에나 알리앙스를 가는 날은 나도 너무나 신이 나는 날이었다.


프랑스 선생님께 섬나라의 전통 춤을 배우는 아이들


프랑스어 기초반에서 배운 노래 장기자랑을 하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간단한 간식을 파는 주방 아주머니도 계셨는데 아이들이 수업에 들어가면 단돈 1달러에 나는 커피 한잔과 갓 만든 레몬 케이크 한 조각에 행복감을 만끽했다. 아주머니는 쿠키며 미니 사과도 파시지만 크레페나 케이크, 빵은 직접 구으시는데 아이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아 금방 동이 나 아이들이 더 먹고 싶다며 서운해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방일을 할 채비를 마치고 나오는 피지언 아주머니를 보고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참이슬이 쓰인 이 초록이를 피지에서 보게 될 줄이야!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아이들 간식을 담당하는 피지 언 아주머니가 참이슬 앞치마를 입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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