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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 Jun 21. 2021

차별받는 모두를 끌어안는, 뮤지컬 '레드북'

뮤지컬 '레드북' 리뷰

뮤지컬 '레드북'이 이 시대 가장 솔직한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서사와 코미디, 재기발랄한 가사, 빛나는 메시지로 무장했다.


3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레드북'는 현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지난 시즌에 참여했던 아이비, 홍우진, 김국희 등을 비롯해 차지연, 송원근, 서경수, 정상윤, 조풍래, 방진의까지 탄탄한 실력의 현역 배우들이 합류했다. 여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세상의 조롱에 맞서 나를 지키겠다고 부르짖는 주인공 안나는 단지 여성의 문제를 넘어 차별받는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사진=네이버TV '레드북' 쇼케이스 중계 화면]

◆ 가장 보수적인 시대의 '야한 여자'…차지연·김국희 호연 돋보여


'레드북'에서는 보수적이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환영받지 못했던 여자 안나(차지연)의 이야기를 담았다. 상속도 남편이 있어야 가능했던 때 안나는 결혼엔 도무지 관심이 없고, 일자리를 구하려 전전긍긍하지만 박대받고 성희롱 당하기 일쑤다. 오래전 모셨던 바이올렛 부인(김국희)의 손자 브라운(송원근)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지만, 점잖은 신사이고자 하는 그의 눈에 외설적이고 야한 소설을 쓰는 작가 안나는 별나디 별난 여자다.


차지연은 보수적인 시대를 가장 발칙한 발상과 묘사로 놀라게 한 여성 작가 안나 역을 열연한다. 그간 선이 굵고 카리스마 넘치는 역부터 젠더프리 캐스팅까지 두루 거쳐온 만큼 발랄하고 귀여우면서도 당찬 안나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묵묵히 걷는 그를 보며 차별받아온 모두는 작은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사진=네이버TV '레드북' 쇼케이스 중계 화면]

브라운 역의 송원근은 예의바른 신사를 자처하는 선량한 남자다. 극 초반 안나에게 꿈을 찾으라 조언하지만 진심보다는 귀찮은 감정에 치우쳐있다. 점차 안나에게 끌리면서 '이해할 수 없어도 좋아하는' 감정을 깨닫게 되고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을 객석에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바이올렛 부인과 도로시 등 다배역을 맡는 김국희는 이 작품의 코미디를 제대로 쥐고 흔든다.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메시지와 이야기를 누구나 즐길 수 있게끔 표현해냈다.


◆ 선명한 메시지, 재기발랄한 넘버…'웰메이드 창작뮤지컬'이란 이런 것


'레드북'의 안나는 여자라서 차별받고 조롱당한다.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정신병 취급을 받던 시대에, 도색소설을 쓰는 작가로 성희롱의 대상이 되고 급기야 재판에까지 회부된다. 살면서 "여자가 감히 그러면 안된다"는 시선을 마주해본 여성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사진=네이버TV '레드북' 쇼케이스 중계 화면]

특히 극중 작가인 안나의 직업 특성상, 넘버에는 풍부한 묘사와 비유가 넘쳐난다. 계속해서 변하는 사랑을 날씨에 빗대거나,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한 경험을 묘사한 가사들이 매 순간 귀를 즐겁게 한다. 대표 명넘버인 '나는 야한 여자'와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에서 차지연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극장을 채우는 순간, 모두가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선 안나는 스스로를 '세상에 얼룩을 남겨, 나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시끄럽게 소리를 내자고 말한다. 성차별 문제를 넘어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아온 모든 소수자를 끌어안는 대목이다. 이토록 선명한 메시지와 재기발랄한 표현을 뮤지컬의 문법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게 감동스러울 정도다. 분명히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창작을 하는 이유가 바로 '레드북'에 있다. 오는 8월 2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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