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09.28." 빛을 찾아가는 세월의 순간" 작업 일기
정원작품을 만들며 드는 기분은 꼭 링안에서 권투를 하는 듯한 기분이다.
작가 스님이 찍어준 얼굴을 보니, 평온하고 조금 수줍거나 나름 우아를 떨던 그런 모습은 몽땅 어디로 가고
나는 마치 무슨 전투에 나온 사람처럼 얼굴에 힘을 잔뜩 주고 목에는 핏대를 세우고
온몸에 힘을 잔뜩 준채 계속 글로브를 두드려 대고 있다
마치 처음 링안에 올라와서 잔뜩 쫄고 긴장한 채 상대의 사소한
몸놀림에도 퍼드득 퍼드득 반응을 하는 초짜 데뷔 선수 같다.
이런 긴장이 잔뜩 몸으로 들어와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뭔가 하며 원인을 찾아보니
작업을 하는 공간 주변을 끊임없이 오고 가는 행락객 들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채여서, 누가 맘에 안 들게 말만 하면
가시를 곤두세우고 민감해지는데 원인이 있었다.
여건상 가장 방문객이 많은 한가운데를 작품을 만드는 데 포장을
사방으로 둘러치고 하기는 그렇고 하여 오픈한 채로 작업을 했다
그런데 장소의 특성상 여러 부류의 사람들- 각자의 교양이나 의식의 틀이
각기 다른 무수한 사람들이 수천 명 지나가는 길 한가운데서 작업을 하다 보면
그들의 교양의 높낮이를 고스란히 그대로 겪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하루 종일은 상황은 이러하다
길을 지나다 작업 인부나, 작업 중인 사람에게 꼭 화장실을 묻는 사람이 있다.
대답 안 하고 일 계속하면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그리고 "안 들려요? 안 들려??"쫒아와서 그런다. 헤고
작업 중인 공간에 불쑥 들어와 이것저것 계속 묻는 사람이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이 꽃 이름은 뭐냐, 월동은 되냐, 내가 아는 이름은 다르다, 나는 이걸 키웠는데 얼려 죽었다, 씨를 맺었다
꽃이 많이 피더라, 하여 옆집사람에게 나눠주었다"
누가 물어봤냐고????
또는 계속 꽃 이름을 읊고 "어디서 사 왔냐고, 어떻게 심어야 잘 사냐고, 관리 어떻게 하냐고 "
그리고 이거 팔면 안 되냐"
보면 모르냐고 꽃집인지, 공사 중인지???
이런 사람도 있다. 역시 방해 꾼이다.
어머 이쁘다, 어머머 이뻐 여기도 찰칵, 저기도 찰칵, 그러다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힘들다고요 흙 장갑 벗고 만지고 하는 게!!!
그리고 또 한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자기네 끼리 서서 계속 쳐다보면서 (감독처럼) 자기네 끼리 계속 떠든다.
저건 이쁜데 저건 좀 안 어울린다. 저게 무슨 뜻일까, 그리고 한참 떠들고 까르르까르르
땀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 사람 옆에서 계속 구상에 방해되게 떠들면서
가지도 않고, 죽어라 노동하는 사람을 구경한다.
여기가 무슨 동물원이냐고요???
암튼, 작업하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절대 배려하지 않는다.
봄 가을날 농사철에 함부로 농로를 지나다니면 안 되는 이유를 뼈저리게 알았다.
제발 부탁하고 싶다, 그냥 조용히 좀 지나가 달라고
아님, 팔 걷고 들어와 봉사를 하던가 아님, 모른 체 좀 해달라고
암튼 신경이 칼날 앞에 삿갓을 들이민 듯 예민하다.
작업 일정은 정해져 있고, 전시는 코앞이고, 사람들 손은 생각보다 더디고
작업 비용은 생각보다 더 든다.
다음 박싱 상대는 해당 관계자들이다.
최고 의사결정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
결정 내리고, 결재해주고 안타깝게 몸이 아파 병원에 들어가 계시다.
갑자기 업무를 내려받은 책임자는 하필 정원에 관해 한치의 관심도 없고
업무 인수인계를 받은 지 6개월밖에 안 되어 도통 돌아가는 일이 머리가 아프다
게다가 새로운 일이 들어온 것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대놓고 "나라면 이런 일 절대 결정도 안 하고, 시작도 안 했을 거예요"를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아, 그리운 어퍼컷! 라이트 훅, 레프트 훅!!, 송곳 잽 팍팍 팍!!'
아, 게다가 최고 상좌 대빵은 관심 폭발 애정 품 품이다!
오시면 작업 중지다.
계속 말씀을 하시어 엎드려 작업을 할 수도 작업 지시를 할 수도 작업 코칭도 할 수가 없다.
이런 가운데 나의 인품과 성격은 점점 똘아이로 변질되어 간다.
도대체 수습이 안 될 지경이다.
계속 자신에게 묻는다. 너 심성이 왜 이리 거칠어지니, 왜 그렇게 꼬인 사람 같이 바뀌니?
'진정해라, 우아하게 품위 있게, 따듯하게 , 감사하며
사람들과 상황을 품고 차분하게 가라' 주문을 한다.
아씨!. 잘 안 된다.
생맥 1000CC에 화풀이를 해보고, 양질 초밥에 화풀이를 해본다.
근데 먹는 거론 해결이 안 된다.
헤고, 근데 나보다 더 죽겠는 한분이 엄청 큰 인내심과 의리로 버텨준다.
방방이 두드리며 결정만 하던 오빠가 계속 삽질과 문제 해결로 링밖에서 떠드는 놈들을 정리해준다.
그래, 난 한놈만 패면 된다.
그게 나다. 내 안에 못된 마음, 그놈만 죽이면 된다.
참자,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오늘의 송곳 쨉이다.
바쁜 학사 jana 께서 계속 다큐 사진을 이쁘게 찍어준다. 거칠고 촌스럽고 황량한 시간들을
우아하고, 폼나고 멋진 시간 이미지로 살짝 바꿔준다. 덕분에 악다구니 같은
칼날 앞에 들이댄 살 같은 민감함과 불안감을 잊어버리게 한다.
즐기자 즐기자 이 순간을 즐기자 .
생명을 다하여 순간을 사는것, 그게 정원이다
그게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