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JYP)
"친구들은 임신했을 때 행복했었대. 온 세상이 자기들을 잘 대해줘서. 근데 오빠는 왜 안 그래?"
JYP는 엘리베이터에서 아찔한 사랑을 나눴다. 이와 반대로 얼마 전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아내와 대화를 하며 아찔한 순간을 맞이했다.
결혼하고 3년 차에 들어서던 올해 초 우리 부부는 올해 안에 꼭 2세를 갖자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산전검사를 했는데 검사 결과 아내의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비정상이었다. 대학병원에 가서 정확한 검사를 받았다. 아내를 담당하신 주치의는 호르몬 약을 복용하며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하셨다. 큰 병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호르몬 약이 100퍼센트 안전한 건 아니어서, 약을 복용하는 기간 동안 임신 준비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는 결국 임신 준비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역시나 쏜살같이 흘렀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추적관찰을 한 결과 다행히도 지난 5월 병원에 갔을 땐 이제는 괜찮아졌다는 주치의의 소견을 받아냈다. 끼익 하며 닫혀있던 대문에 걸려있던 둔중한 빗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개전(開戰)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전원 돌격하라!
기쁘게도 승전보 소식이 빨리 찾아왔다. 7월 초 사무실에서 여느 때처럼 열심히 일하고 있는 척을 하고 있던 오전이었다. 아내가 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선명하고 빨간 두줄이 그어진 테스트기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단전에서부터 가슴까지 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믿기지가 않아 괜히 코로나 양성 나온 거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테스트기를 해본 당일 아내는 산부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고, 초음파를 통해 아기집과 난황이 생긴 걸 확인했다. 임신 6주 차였다. 지난 6월, 2년 만에 다녀온 신혼여행에서 생긴 허니문 베이비였다. 아기가 생긴 걸 자축하기 위해 우리는 그날 저녁 감자탕을 후후 불어 먹고 볶음밥을 싹싹 긁어먹었다.
아빠가 된다는 기쁨도 잠시, 임신 초기인 만큼 조심해야 하는 아내를 극진히 모시고 신경 썼어야 함에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나 스스로는 아내를 잘 챙긴다고 자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의 감은 날카로운 법이다. 나는 아내의 손바닥 왕국 위에서 살고 있는 신하이기 때문에 여왕은 불충한 신하의 마음을 즉각 알아차렸을 것이다. 내가 자기를 잘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걸.
"친구들은 임신했을 때 행복했었대. 온 세상이 자기들을 잘 대해줘서. 근데 오빠는 왜 안 그래?"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한평 남짓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치 영화 타짜에서 아귀와 예림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패를 돌리는 고니의 심정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답했다.
"아닌데."
자충수였다. 뭘 아니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내의 한마디에 그날 나는 많은 걸 뒤돌아보며 반성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임신한 아내가 힘들지 않게끔 옆에서 잘 보필하기로. (언제나 그랬듯) 최우선 순위로 아내의 안위를 생각하는 남편으로 살기로 말이다. 출산에 이르는 기간까지 자체 비상대책위원회를 운영하고자 한다. 비상대책위원회의 3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아내가 먹고 싶다는 건 무조건 먹기
2. 집안일 도맡아 하기
3. 아기를 위해 아내와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기
위 3가지 원칙을 내재화해서 아내에게 다시는 싸늘한 비수가 꽂히는 날이 없게끔 만들 것이다. 반드시. 기필코.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