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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Mar 21. 2023

"기어이 여는구나, 상자를..."

판도라의 상자

"기어이 여는구나, 상자를."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이 자신의 학폭 과거를 캐는 남편에게 한 대사이다.


쁜 상자 안에서 썩은 냄새가 폴폴 올라오고 온갖 벌레들이 날아드는데 남편 하도영은 아내의 상자를 열지 않을 재간이 있었을까.


누군가 내게도 금속 상자를 하나 쥐어 주었다.

의자나 선반으로 쓰라며 무심히 건네준 것이다.


하지만 상자는 무언가 담으라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받자마자 거침없이 뚜껑을 열어보았다.

무심히 건네주었으니 이제는 별 쓸모가 없는 사소한 것들이나 들었을 터였고 쓰레기면 버리고 내 물건이나 담아 쓸 요량이었다.


금속 상자의 뚜껑을 여는 순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듯 "불행"이 고개를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핏빛 눈동자에 야비한 웃음을 띤 채 기지개를 켜며 걸어 나왔다.


숨조차 쉴 수 없던 나는 뒤로 나동그라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불행"이란 놈은 나를 한 바퀴 빙그르르 돌더니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안으로 쑥 하고 들어와 버렸다.


순식간에 나의  심장은 악마의 불을 삼킨 듯 타오르며 재가 되었고  나의 폐는 검은 연기로 가득 차올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제 금속 상자에서는 잔 연기만이 하늘로 올라가며 뿌옇게 흩어졌다.


그렇게 며칠을 쓰러져 있었을까.

눈을 떠보니 내 앞에 금속 상자가 그대로 있었다.


기듯이 일어나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순간. 텅 빈 것은 상자만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심장도 "불행"이란 악마와 함께 재가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지독한  공허 이외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텅 빈 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금속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이제 나는 마음 담을 심장 없이

망가진 폐로 가쁜 숨을 쉬며

살아가게 되는 것인가.


무심하게 내 손에 상자를 쥐어준

그에게 화조차 낼 수가 없다.


이제 나에겐 화를 담아 뿜어낼

심장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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