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겠네
69日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실행하고, 혼자 실패하고. 멘토나 롤모델을 찾지 못했다. 절대적으로 믿는 것도 없고 의존하는 것도 없었다. 신이든, 사람이든 하나만 전적으로 믿고 따랐다면 조금 편하게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오만하게도 오래도록 나를 사로잡는 존재가 없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엄마, 아빠에게 지식은 구했지만 지혜를 묻는 게 어색해졌다. 6년을 미션스쿨에 다녔다. 인도를 떠돌았다. 절에도 들어갔다. 그래도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들 하던데, 머리로 이해를 못 하니 마음이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강연을 찾아다녔다. 하나같이 빛나는 사람들이고 흡인력이 있었지만 여운이 길지 않았다. 누군가에 의해 섬광처럼 내리 꽂힌다는 아하-모먼트를 느낀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을까. 나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걸까, 아님, 회의주의자인가. 결국은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묵직하게 나를 짓눌렀다. 친구들도 많고, 하고 싶은 건 다 하며 살면서도 뒤돌아서면 늘 고독했다. 나는 왜 이럴까.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상황을 파고들다 보면 바닥에 발도 못 붙이고 그렇다고 하늘을 날지도 못하는 애매한 위치에서 부유하는 느낌, 그 느낌을 스무 살의 어느 날부터 놓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근원을 알 수 없어서 그때그때 특정한 행위들로 생각을 멈춰버렸다. 목이 쉴 때까지 노래를 부르거나, 밤새 tv를 보거나, 종일 잠을 자거나, 머리가 아플 때까지 차를 마시거나, 무릎이 안 펴지도록 풀을 뽑거나, 취하도록 술을 마시거나, 결국 또 지식을 탐닉하거나. 쓰고 보니 자학적인 면이 보이는데 살아가며 늘 동반하는 찝찝함이 완벽하고 싶어 하는 성격과 부딪히니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생존의 방식이었다.
100일에 가깝게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나를 모르겠다.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글쓰기라고, 진짜 나를 찾았다고들 하는데… 고백하건대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를 구성하는 것들은 파악할 수 있어도 진짜 나를 모르겠다. 무의식 지하 몇 층까지 내려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차라리 현상으로 눈에 보이는 게 나라는 시각이 맞는 거 아닌가. 아무리 글을 써내려도 내 존재의 원형은 언어로 길어지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글을 쓰면서 나는 고독하고 애매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글은 ‘살풀이’가 되기로 했다. 그것뿐이다.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원래 그런 거야.’하고 받아들여도 삶의 무게는 다 내려놓기는 어려워서 난 또다시 고독함과 애매함에 휩싸이겠지. 말하자면, 글쓰기 95일 동안 많은 것을 썼음에도 아무것도 안 쓴 것 같다는 말이다. 나는 날지 못하는데 글만 훨훨 날아가서 사라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