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책이 힘들어졌을 때
아무 변화 없이 평화롭게 흘러가던 평범한 어느 날. 집에 있는데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워지는 경험을 했다. 고향인 대구를, 사회생활을 시작한 도쿄를 떠나 서울에 새롭게 마련한 나만의 자취방이었다. 분명 내 마음대로 꾸며놓은 나만의 공간인 그 곳에서, 나는 숨쉴 수가 없었다.
바로 좁은 자취방 안을 꽉꽉 채운 책 때문이었다. 천장 수납장은 책이 두 줄씩 꽉꽉 채워 들어가 있었고, 숨쉴 틈도 없는 그 곳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책들이 책상 위에, 복층 계단 위에, 그리고 싱크대 위에까지 쌓여 있었다. 만약 내 인생이 히어로물이었다면 책은 분명 영문 모를 침략자였을 것이다. 어느새 내 생활을 야금야금 갉아 먹다가 언젠가는 나를 집어삼켜버리려고 하는 무서운 침략자. 그 정도로, 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집에 이렇게 책이 많아졌을까? 문득 과거의 플래너를 펼쳐 올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플래너를 쓴지 벌써 4년. 처음에는 시간 단위로 뭘 했는지를 기록했지만, 점점 강박이 생겨 지금은 시간 기록 없이 태스크 위주로 기록을 하고 있다. 기록한 플래너는 버리지 않고 보관한다. 그 기록 자체가 내가 살아온 발자국이자, 그 당시에 어떤 걸 느끼고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과거 어느 특정 시점의 나와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는 올해 3월.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평범한 월요일이었다.
6시 반에 일어나 7시에 한 시간동안 필라테스를 하고, 아침을 먹고 씻고 출근. 이 때는 한창 제품 가격 인상에 매달려 있었던 때였나 보다. 상사와 제품 가격 인상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몇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고객처에 제안하기 위한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작성한 날. 아무래도 9시까지 야근을 했나 보다. 그 후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와 10시부터 온라인 스터디에 접속. 그대로 12시까지 내리 공부를 했다. 배운 것은 '시스템'에 대한 것. 어떻게 회사에 자연과 같은, 있는 그대로의 흘러가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배웠다. 스터디 이후 1시까지 배운 것을 곱씹으며 씻고, 글을 쓰고,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은 마찬가지로 6시 반에 일어나 7시부터 수영 강습 1시간. 강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8시 반부터 30분간 온라인 영어 회화 레슨. 씻고 헐레벌떡 회사에 나가 아침 미팅 참석. 오전에는 2분기 판매 전략을 세우기 위해 영업팀과 미팅을 하고, 오후에는 여름에 커스터머에게 어필할 제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파일 작성. 그렇게 쭈욱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돌아와서 또 10시 반부터 12시까지 스터디에 참석했다.
다행히 각각의 하루에 대한 피드백이 남아 있어 당시의 내 상태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피곤해서 저녁에 과자 엄청 많이 먹음.. 쉬어야 했을까? 잠을 더 잘 수 있는 방법 궁리가 필요할 듯."
"조금 피곤했던 하루. 그래도 매일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당시의 나는 피곤에 쩔어 있었다. 그래도 그 일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의 자기계발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내게는 자기계발을 지속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기 때문에 이 피곤함 또한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뇌었고,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병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자기계발에 대한 집착은 책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공부하면서 좋아보이는 책이 있거나, 누군가로부터 추천받거나, 책 안에 인용되는 책까지도 모조리 사들이기 시작했다. 종이책이 더 공부가 잘 되니까, 종이책에는 밑줄을 긋거나 내 생각을 적으며 능동적으로 공부할 수 있으니까, 이런 이유로 종이책을 사는 빈도는 점점 더 늘어갔다.
알라딘에서는 내가 책을 얼마나 샀는지에 대한 연말 결산 결과를 제공해주는데 내 경우 2022년에 171권, 2023년에는 154권을 구입했고, 전체 구입자 중 상위 0.1% 안에 들었다. 그리고 2024년 9월까지는 총 144권의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이건 주된 구입처인 알라딘에 한한 이야기이고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할 때, 독립 서점을 방문할 때, 여행가서, 워케이션을 가서 등 책을 구입한 곳은 다양했고 책 구입 횟수가 느는 만큼 우리집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책으로 쌓여가고 있었다.
"우리집이 아니라 '책'의 집에 제가 얹혀살고 있어요."
사람들이 집에 놀러올 때마다 책을 보고 그 어마어마한 양에 놀라면 줄곧 하던 말이었다. 여긴 우리집이 아니며 책의 집인데 내가 눌러 앉아 있다고. 이걸 바로 주객전도라는 말 이외에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분명 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으면 행복했고,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었다. 밥을 먹을 때도, 전철을 탈 때도, 카페에 가서도, 심지어 자기 전에도. 그런데 언제부터 책이 이렇게 힘들어졌을까? 언제부터 그들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어졌을까? 책이 잘못한 게 아니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집에 계속 살기 위해서는 그걸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