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만 원짜리 질문

서른 살, 인생 첫 명품 가방을 샀다

by 이천형

서른 살 생일 다음 날,

저는 롯데백화점 본점에 들러 인생 첫 명품 가방을 구매했습니다.

그것도 일시불로 말입니다.


가격은 490만 원,
한정판 디올 가방이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홀린 듯 매장에 들어갔고,
홀린 듯 결정을 내렸고,
홀린 듯 카드 서명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왜 샀지?’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조금, 아니 꽤 화가 나 있었습니다.


몇 달 전 있었던 대학 동기들과의 만남이

시발점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불편해져 버린 그 모임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겉돌고 있었습니다.


대화 주제는 늘 비슷했습니다.
명품 이야기, 피부과 시술, 직장 상사에 대한 하소연.


그런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제가 그 자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아... 천형이는 이런 거 잘 모르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제가 신경 쓰여
무심코 던진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제게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았습니다.


저는 정말로 그런 것들을 잘 몰랐고,
사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저는
정말 일밖에 모르고 살았습니다.


평온하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스스로 선택한 방송 일.
조금은 불안정할지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일상이 곧 일이었고, 관심사도 일이었으며, 목표 역시 일이었습니다.

며칠 밤을 새워도 괜찮았습니다.
그 시간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 거라고,
저라는 사람을 설명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은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고립시켰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그때의 내가 원한 건 도대체 무엇이었나'


적어도 명품 가방은 아니었습니다.


그 가방은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처럼 느껴졌습니다.


490만 원짜리 가방을 들고 다니며
잠시나마 성공의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모습이었습니다.

가방 안은 가득 차 있었지만,

마음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사람은 때로

무언가를 실제로 가져본 뒤에야

그것이 정말로 원하던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진짜로 원했던 것은

반짝이는 새 가방도, 친구들의 인정도,

이 정도 돈을 써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는 증명도

아니었습니다.


저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고,

그 일에 몰두하며 돈을 벌어온 저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고 싶었던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490만 원짜리 가방을 샀고,

그로 인해 잠시 안심했으며,

이내 다시 허무해졌습니다.


그 가방은 아직도
옷방 한편에 놓여 있습니다.


자주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버리지도 팔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제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위로받고 싶었는지를

깨달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분명히 알겠습니다.


제가 정말로 갖고 싶었던 것은 가방이 아니라,

‘나 잘 살고 있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은
끝내 돈으로는 살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