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시간이였다.
차별에 관련된 책을 읽고 모여 각자 서로 차별받았던 경험을 이야기 나누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소소한 차별을 경험했겠지만 나의 기억에 딱히 떠오르는 차별 경험이 없었다.
문득 가장 상처가 되었던 차별이 뭐였을까 생각해보니 많은 한국 여성들이 경험하는 시어머니의 차별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가족에게 받은 차별이 가장 큰 상처로 남아 있는가보다.
나의 시어머니는 어리고 싹싹하지 않고 야무져 보이지 않은 며느리가 성에 차지 않으셨던 것 같다. 종종 무언가 맘에 들지 않은 티를 내셨고 그런 것들은 나에게 상처로 남았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모임 멤버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다들 격하게 공감을 해주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시댁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시어머니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현재의 시어머니는 내가 정말 존경하는 분 이시다. 지난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변하셨고 진정한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시며 나를 자식처럼 여겨주고 계신다. 내가 자식들에게 보이지 못하는 넓은 아량과 희생을 사랑으로 나타내어 주신다.
시어머니가 보여주시는 삶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존경심이 들게 되니 어머니의 종교에도 관심이 향하기도 한다.종교가 어떻게 어머니에게 영향을 주었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어머니를 두고 나에게 차별을 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이상 무의미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라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뎌지고 덮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처라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분명 상처는 남아 있는데 상처가 아닌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상처는 회복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상처가 존재하기 때문에 회복이라는 의미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회복이 된다 해도 상처는 남아 있어야한다. 아마 내가 느꼈던 느낌이 이런 것이였던 것 같다.
상처라는 자국은 있지만 그 자국이 상처가 아닌 것, 그 자국을 통해서만 회복이 가능한 것, 상처와 회복이 함께 있는 공존하게 된 그 자국은 새로운 상처의 자국이라는 것.
때론 어떤 상처는 없어지지 않아도, 무뎌지지 않아도, 묻히지 않아도 괜찮은 상처가 있다는 것.
아니 회복을 원한다면 상처는 필수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기만 해도 상처라는 것을 지울 필요가 없다는 것.. 회복을 통해서 내 자신이 나아져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무수히 많은 흔한 상처들 중에서 이 상처는 더이상 흔할 수 없는 특별한 상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