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 온 이유

시작은 부루마블이었다

by 베르고트

파리에 처음 갔을 때, 가장 먼저 배운 단어가 sortie였다. 출구. 지하철역에서도, 건물 안에서도 그것만 따라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가서는 그 여섯 글자에서 어떤 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문을 나서면 햇볕 아래 선다는 당연한 이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많은 복도를 지나 더 많은 손잡이를 돌리는 동안 이 도시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길어질 테고, 그러다 보면 내내 답답했던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저의 바람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가장 먼저 배운 단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에서 가장 반가운 단어가 되었다.


디트로이트발 비행기에서 내려 복도를 걷다가 오랜만에 그 단어를 다시 보았다. 여기가 프랑스 어느 도시, 어느 공항이던가? 아니다. sortie는 똑같은 크기의 exit와 병기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곳은 캐나다 퀘벡 주, 그곳에서도 몬트리올이다. 맥줏집 외벽에 붙여 놓아도 잘 어울릴 빨간 네온사인을 보면서 그것이 내가 몬트리올에 도착했음을 확인하는 서명 같다고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여, 우리가 몬트리올이란 도시를 처음으로 알게 된 건 생각보다 오래전 일일지 모른다. 주사위를 굴려 세계 곳곳에 별장이나 빌딩, 호텔을 세우며 땅따먹기를 하던 추억으로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아마도 파란색 땅이었을 몬트리올을 차지하는 순간 돈줄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불운한 적수들은 내가 토지 증서를 손에 넣자마자 나의 도시로 발을 헛디뎠고, 그 대가로 값비싼 통행료를 토해내곤 했다. 토론토도 아니고 밴쿠버도 아니고 왜 하필 몬트리올이 기념비적인 보드 게임에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19세기 중반에 잠시 캐나다의 수도였던 적이 있어서? 아니면 토론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여서? 나는 몬트리올의 어감이 (시리얼을 먹고 싶어지게 하는) 캘거리나 (영화 「K-Pax」를 떠올리게 하는) 핼리팩스 같은 도시보다 좋아서라고 믿는다. 내가 몬트리올을 차지하려고 기를 썼던 이유는 사실 그 이름을 입안에서 굴릴 때 느껴지는 이국적인 질감에 있었다. 캐나다에 있다는 설명은 있는데 정작 캐나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던 나로서는 그곳까지 직접 가보겠다는 생각은 물론 하지 못했다. 다만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신호에 외로운 아마추어 무선사처럼 반응했을 뿐이었다.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줄은 꽤 길었다. 그 줄을 기다리면서 재차 프랑스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느꼈다. 눈을 감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불어에 귀를 기울이면 바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입국심사대에서 환영의 노래를 틀어주는 공항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의 말이 나름의 음악이었다. 불어권 도시에 살고 싶어 불어를 배우려고도 했었다. 허나 이렇게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때 언어는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나는 조금 무거운 머리를 운율에 맞춰 흔들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갔다. 내 차례가 멀지 않았다. 항상 아무 문제없이 입국심사를 통과할 거라고 낙관하고, 이번에도 한낱 관광객에 불과한 신분이라 낙관은 곧 확신이 되었다. 하지만 이민 희망자를 상대하는 출입국 심사대가 두 곳이나 있는 것을 보면서(아마 나라와 주 각각 허가를 받아야 하는 모양이었다.) 혹여 길게 살아보겠다는 딴마음을 품고 이 땅에 돌아온다면 그때는 이보다 만만치 않으리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언젠가 캘거리에 살고 있는 친구가 흘러가는 말로 캐나다에서 살아보는 게 어떻냐고 제의한 적이 있다. “캐나다에서도 유럽 느낌이 나는 몬트리올이 마음에 들 거야.” 나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몬트리올로 떠나야겠다며 꺾지도 않고 술잔을 비웠다. 얼마간은, 그러니까 한 몇 달 간은 이 도시의 이름을 계속 되새기며 반드시 그러겠노라 허황되이 떠벌리기도 했다. 결국 난 그러지 못했다. 대신 다른 사람을 이곳으로 보내버렸다. (나는 여기서 그녀를 M으로 부른다.) 내가 정말 이곳으로 떠나올 줄 알다가 결국 나 때문에 이곳으로 도망쳐야 했던 사람이었다.
“몬트리올엔 뭐하러 왔어요?”
심사관의 질문에 나는 그녀를 만나러 왔다고 대답했다. 심사관은 무뚝뚝하지만 집요하게 그녀가 하는 일을 캐묻고는 낙관과 확신으로 빳빳해진 내 여권의 한 페이지에 입국 허가 도장을 찍었다. 그걸 찍고 나서야 그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세관 신고를 마치고 터미널로 나왔다. M을 찾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냥 단번에, 자연스레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 낯선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든든함. 반가움. 뭉클함. 그리고 수개월 만에 보지만 마치 한 주 전에 봤던 사람처럼 어색하지 않고 서로 변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랐다. 떨어진 동안 우리가 보낸 어두운 시간이 말 그대로 빛 뒤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 같았다. 아니면 손잡이를 돌려서 빛으로 걸어 나왔던가. 이번 여행이 다른 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그 가장 큰 이유를 시작하자마자 찾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무엇일까. 질문을 찾는 질문도 있을까. 하긴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호기심에 있다고, 나아가 끝없이 자문하는 데 있다고 지난 마지막 여행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당장 할 일은 오래 기다렸고 보고 싶었다고 그녀를 안으며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는 일이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리오넬 그루Lionel-Groulx 역 앞에 내렸다. 청설모와 갈매기가 공존하는 작은 공원을 잠시 서성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럽의 도시를 연상케 하는 건물과 저 멀리 보이는 청동색 돔을 얹은 탑, 공원에서 노닥거리는 노인들과 길을 재촉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통화를 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스산해서 더 기분 좋은 바람과 거기에 두툼하게 발린 습기까지. 몇 번이고 같은 자리에서 빙빙 돌며 시야에 걸리는 모든 것을 담고 싶었다. 주사위를 굴려가며 그 이름이 적힌 증서를 손에 넣으려고 애썼고, 비교적 최근까지 모든 걸 다 버린 채 떠나오고 싶어 했으며, 결국 내 방황에 부수적 피해를 입고 먼저 도망 온 사람이 있는 곳. 기나긴 과정의 종착지이자 그 이후의 시간으로 건너가기 위한 환승 지점. 그곳이 몬트리올이었고, 이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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