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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Feb 18. 2021

사소한 기억을 담은 집의 카레

가루 카레보다 고형 카레가 더 맛있어 보였던 게 시작이었다

할머니는 명절마다 물김치를 담가두셨다. 내가 할머니의 물김치만으로 밥 반 공기는 더 먹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손주가 왔다고 버선발로 달려 나오시는 분은 아니었다. 왔냐, 왔구나. 그보다 더 묵묵하던 할아버지보다야 살가운 분이긴 했지만, 시골집에 도착하면 대체로 모두의 관심에서 벗어나 혼자 시골집 구석구석을 쑤시고 다닐 수 있었다. 반년 전과 뭐가 달라졌는지 찾아내는 숨은그림찾기는 즐거웠다. 소가 있던 우리에 큰 개가 있기도 하고, 잠자리를 잡아다 주면 그렇게 맛있게 먹던 병아리들이 닭장 안에서 활개를 치며 나를 겁주기도 했다(솔직히 잠자리를 순식간에 해치우던 병아리 시절에도 무서웠다). 할머니가 건네는 인사는 귀성길 교통 체증에 시달리다 마침내 땅을 밟고 처음으로 먹는 밥상 위 물김치였다. 나도 살가운 아이는 아니라 물김치처럼 마음이 맑아지는 걸 느끼는 것만으로 감사를 대신했다.


물김치 말고도 할머니와 연결되는 음식이 하나 더 있다. 카레다.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내게 카레를 만들어 주신 적이 없고, 할머니가 카레를 드시는 걸 본 적도 없다. 그날의 카레도 어머니가 만든 거였다. 물김치를 후룩후룩 마시던 꼬맹이가 자라 대학에 복학했던 시기, 몇 년 동안 할머니를 모시고 산 적이 있다. 수업을 마치고 퇴근 시간 버스를 타고 돌아와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냄비에 있던 카레를 먹고 드라마나 볼 생각이었다. 아직도 그게 카레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장염인지 급체인지 그 밤에 탈이 났다. 구토와 설사, 발열, 카레를 먹고 속을 게우면 향신료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됩니다. 몇 번이고 방에서 뛰쳐나와 변기를 부여잡는데 어느 때인가 내 뒤로 아무 말씀 없이 나를 지켜보시는 할머니의 시선을 느꼈다. 할머니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하신 상태셨고, 당시엔 아직 아무도 몰랐지만 대장암을 앓고 계셨다. 방에서 나오시는 데도 한참이 걸리시던 할머니는 이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손주가 이러는 걸 처음 보셨을 것이다. 말은 없으셔도, 시골 밥상에 올라와 있던 물김치처럼, 나를 염려하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밤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에게 애가 아픈 거 같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내 방문을 여셨고, 나는 힘이 쭉 빠진 상태로 침대에 누워 “아, 뭐 체했나 봐.” 따위의 대학생 남자나 할 법한 쿨한 척을 했다. 그 뒤로 몇 년 동안 쿨하지 못하게 카레는 입에도 대지 못했다. 그래도 할머니의 시선은 잊히지 않았다. 등을 지고 있었고 정신도 홀딱 나간 상태였지만 그런 시선은 보지 않아도 잊을 수가 없는 법이다. 그때 “저 괜찮아요”라고 말했을까?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내게 카레가 자연스러운 장소는 집이다. 카레는 싫든 좋든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카레를 ‘집의 카레’라 불러도 되겠다. 집의 카레는 가스레인지 위에 한 솥 가득 담겨 약한 불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황금빛 샘이다.


어느 나라에서건, 재료와 빛깔과 이름이 다르다 하더라도, 이 알싸한 향신료가 가득 들어간 음식은 가정식으로 사랑 받았다. 커리 가루나 페이스트만 있으면 먹다 남은 재료를 처리하기 좋았고, 조리법도 쉬웠다. 채소와 고기를 모두 넣고 뭉근하게 끓인다 – 은은한 화력과 시간의 마법이면 그만이었다. 인도나 영국의 ‘커리’든 태국의 ‘갱’이든 일본의 ‘카레’든 그런 모든 요리도 집의 카레다. 지금도 세상 어딘가 낡은 식탁 위엔 집의 카레가 올라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밥이나 콩 위에 부어 먹고 누군가는 빵을 찍어 먹는, 어쩌면 스프처럼 국물만 훌훌 마시고 있을지도 모를.



카레의 발상지는 인도였지만, 인도엔 ‘커리’란 말이 없었다. 지금도 재료가 무엇인지, 향신료들을 어떻게 배합한 마살라masala를 쓰는지, 조리는 어떻게 하는지, 얼마나 묽거나 되직한지에 따라 부나, 빈달루, 코르마, 칼리아, 힌두스타나처럼 저마다 요리 이름이 다르다. 동인도회사에서 일하던 영국인들은 처음엔 인도의 풍습을 배워 인도인처럼 지냈는데, 중세시대부터 요리에 적극적으로 향신료를 쓰며 그것 때문에 전쟁과 약탈도 불사하던 유럽인답게 인도의 음식에도 금세 적응했다. 인도의 다양한 향신료 요리를 ‘커리curry’라는 말로 뭉뚱그려 부르기 시작한 것도 영국인들이었다. 커리의 어원이라고 여겨지는 말 중 하나는 남인도에서 밥과 곁들여 먹는 소스라는 뜻으로 쓰던 ‘카릴kaṟi’이다. 18세기 말 영국인들은 커리를 인도인들과 함께 본국으로 데려갔고, 동양의 환상이 가득한 이 음식은 금세 영국을 사로잡았다. 집에서 직접 여러 향신료를 갈고 섞어서 요리하는 인도의 재래식과 달리 영국의 상인들은 몇 가지 배합법으로 규격화된 커리 가루, 커리 소스를 만들어 팔았다.


영국의 커리는 그들의 다른 식민지로 퍼져 나갔다. 그 외의 대륙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동 이민을 떠난 인도인들이 직접 전파했다. '향신료와 함께 채소와 고기를 넣은 국물 요리'라는 스펙트럼 넓은 이 음식은 각 지역의 요리법과 어우러져 그곳 고유의 음식으로 변화했다. 전 세계가 커리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커리를 먹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내가 먹는 집의 카레는 한국의 가정에서 흔히 만들어 먹는 그 카레다. 한국에 카레를 가져온 건 일본인들이었고 두 나라의 카레가 (인도의 수많은 커리에 비하면) 실질적으로 크게 다른 것 같진 않지만, 나는 밥과 카레를 비비느냐 비비지 않느냐로 둘을 구분한다. 일본 카레 전문점에 가면 “밥과 카레를 섞지 않고 따로 드셔야 맛있습니다.” 라는 말이 어딘가에 꼭 쓰여 있다. 그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나는 밥 전체를 황금빛으로 물들여 김치나 깍두기와 함께 먹는 집의 카레 쪽이 친숙하다.


가만 돌이켜보면 카레는 먹기 전부터 흥미로운 존재였다. 카레 블록, 고형 카레 때문이었다. 일본의 S&B 푸드에서 1956년 처음 판매한 고형 카레는 순수한 향신료 조합이었던 ‘커리 파우더’에 마늘, 양파, 고추 등 풍미를 더할 재료를 추가하고 소금, 설탕으로 간을 한 다음 밀가루, 기름과 함께 굳힌 것이다. 외국에선 흔히 ‘커리 루curry roux’라 불린다. 고형 카레는 기름에 양파를 볶는 중에 카레 가루를 넣거나(말린 향신료를 기름에 볶으면 맛과 향이 극대화된다) 국물을 더 걸쭉하게 하려고 밀가루나 버터를 넣는 등 몇 가지 철자를 생략하게 해줬다. 물론 실리적인 면을 알 리 없던 내겐 고형 카레의 초콜릿 같은 생김새가, 단맛과 매운맛으로 맛의 단계를 나누는 체계가 매력적이었다.


매운맛의 강도에 따라 강조색만 다른 채 슈퍼마켓 선반에 가득 쌓여 있는 카레 상자를 처음 봤을 때 과장을 좀 보태자면 황홀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얇고 길쭉한 상자엔 보통 맛있는 간식, 이를테면 초콜릿 같은 게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진 속 카레는 꼭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초콜릿 강처럼 보였다! 순한맛, 보통맛, 약간 매운맛, 매운맛으로 세분화 됐다는 점도 카레의 세계가 아주 넓고 깊다는 인상을 주었다. 어떤 맛을 먹어야 할까? 순한맛은 애들이나 먹는 거지(그럼 너는?). 하지만 매운맛은 글씨가 너무 빨개. 그렇다고 약한 매운맛이 덜 매울까? 답은 매번 보통맛이었지만, 몇 살 더 먹고 나서는 과감하게 약간 매운맛을 고름으로써 내 입맛이 조금 어른스러워졌음을 스스로에게 과시했다.


사실 카레를 처음 맛본 기억은 카레 상자를 처음 봤을 때보다 희미하다. 아마 놀라긴 했을 거다. 아무리 원조 ‘커리’에 비하면 맹탕이라 해도 카레 맛은 카레가 아니면 안 나오니까. 그 맛은 정말 난생처음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도 카레 업계 1위를 달리는 제조사가 자사 제품을 한국인 입맛에 딱 맞춘 덕에, 그리고 어머니께서 줄기차게 카레를 만드신 덕에 익숙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일본에선 카레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 한국으로 보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혹은 떡볶이와 비슷한 위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강황, 호로파, 커민, 생강, 고수, 고추, 정향, 회향, 계피, 카르다몸…… 몇몇은 한국에서도 즐겨 쓰는 재료이지만, 대체로 낯선 이름들! 먹을 때마다 이건 다른 한식에선 찾아볼 수 없는 맛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전혀 낯설진 않다. 꼭 한국말 잘 하는 오랜 외국인 친구 같다.



중학교 때 도시락 맨 밑 국통에도 종종 카레가 들어 있었다. 전날 저녁에 카레를 먹었다면 다음 날 도시락은 카레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점심에 도시락에서 카레를 봤다면 저녁에도 집에서 카레를 먹겠구나 예상할 수 있다. 어느 날, 평소 같이 점심을 먹던 친구들 모두 공교롭게 다른 약속이 잡혔다. 아시겠지만 그 시절 점심 파트너는 ‘핵심 불변’, 날마다 한둘 빠지고 늘어날 순 있지만 거의 고정 멤버로 가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회사 점심시간도 아니고 네댓 명 모두 다른 일이 생기다니? 어쩔 수 없이 서로 도시락을 맞붙여 본 적 없던 점심의 이방인 같은 녀석과 겸상을 하게 됐다. 반찬통을 하나씩 열던 내게 그 친구가 물었다.


“야, 너네 집 카레는 왜 이렇게 묽냐?”


그때, 혹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던, 우리 집 카레가 남의 집 카레보다 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어머니가 카레 가루를 아끼신 걸까? 정량은 넣었는데 오래 먹어야 하니까 물을 많이 부으신 걸까? 그래서 가끔 맹맹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걸까? 그게 나 스스로 뜨끔해서였는지 그 친구의 말투에 그런 의문을 품게끔 하려는 뭔가가 있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카레가 뜨거워 뚜껑에 물이 맺혀 묽어진 거라는 식으로 얼버무렸지만 까매서 티가 나지도 않는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훗날 나는 집의 카레라면 레토르트 카레가 표준 점도라는 단순한 기준을 세웠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 친구 집은 카레의 수분을 고추장 수준까지 날려서 먹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건 카레를 ‘발라 먹는’ 거라고, 친구.



이후로 카레는 비용을 아끼는 식단으로 편입됐다. 3,500원에 콩나물비빔밥을 팔던 컨테이너 식당에서 두 번째로 많이 시킨 메뉴도 카레 덮밥이었다. (가격도 같았다.) 아주머니는 모두가 다 먹는 약간 매운맛 레토르트 카레를 뜨거운 냄비에 데워 밥 위에 붓고 달걀 프라이를 얹어주셨다. 카레랑 달걀 프라이를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지금껏 집에서 먹었던 카레가 얼마나 아쉬운가! 대학생 이후로 몇 년에 걸쳐 시나브로 물러가던 카레 울렁증이 단번에 치유된 것도 바로 컨테이너 식당에서였다.


딱히 먹을 게 없는 저녁이면 퇴근길에 마트에서 레토르트 카레를 샀다. 여전히 선반에 늘어선 카레 상자는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그중 행사가로 딱 천 원짜리 한 장만 받는 카레를 고르곤 했는데, 데울 필요도 없이 뜨거운 밥 위에 바로 부어서 먹는 제품이었다. 그게 다른 레토르트 카레보다 감칠맛이 좋고 알싸한 향도 강한 것 같아서 좋았다. 재빠르게 달걀 하나 부쳐 올리고 화끈한 청양고추와 함께 즉석 카레라이스를 먹으면…… 호화롭거나 정성 들인 저녁 식사가 부럽지 않았다. 한때 잃어버렸으나 비로소 되찾은 한 끼에, 그 재료만큼이나 제각각인 기억이 푹 빠져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도 집에서 카레를 조리할 때 굳이 고형 카레를 쓴다. 요즘 나오는 커리 가루가 물에 게우려고 애쓸 필요 없는 특별한 과립형이라는 광고에 혹해도 역시 포장을 뜯었을 때 블록이 들어 있어야 이제부터 카레를 먹는다는 기분이 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초콜릿처럼 한 덩이에서 또각또각 잘라내는 게 아니라 1인분씩 낱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놈의 플라스틱을 다 어쩌려고. 하지만 냉동실 안에 들어 있는 다진 마을 블록, 다진 고추 블록을 생각하면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요즘 소분 포장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것 같다. 하긴 여기에 넣은 것도 카레용 손질 채소 두 봉지다. 세 명이 사는 우리 집은 이 시대에 그렇게 적은 구성원이 아닌 것이다.


4인분이라 네 조각 들어 있는 고형 카레를 채소와 고기가 끓고 있는 냄비에 넣어 휘적휘적 푼다. 마녀가 된 기분이다. 금세 진한 갈색이 올라오고 국물이 걸쭉해 진다. 사실 어렸을 적에도 우린 3인 가구였다. 그런데 그때의 카레보다 양도 적고 자박자박해 보인다. 요즘 카레는 워낙 좋은 재료를 많이 넣(는다고 하)고 일본식 카레를 지향하고 있어서 색도 황금색이 아니라 갈색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만든 카레도 결국 집의 카레다. 커리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변했듯이 집의 카레도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맛은 똑같은 브랜드의 레토르트 타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때 사무실에 부어먹는 카레 한 박스가 있어 자주 점심으로 먹었기 때문에 계속 먹어 오던 그 맛이다. 그저 저마다 다르게 간직하고 있을 카레에 대한 추억만이 이 흔한 요리에 나름의 의미를 혼합한다. 그것도 일종의 향신료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맛있다고 입을 벌리는 아이 역시 지금부터 집의 카레를 기억하기 시작할까? 이 음식이 싸고 맛있고 간편한데 영양도 좋다는 일반론을 넘어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순한맛인데도 아이는 맵다고 우유를 찾는다. 그래, 아직은 이르겠지. 하지만 언젠간 아이에게도 그만의 집의 카레가 생길 것이다. 추억 없는 사람은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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