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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Feb 25. 2021

사진, 혹은 사진 같은 글에 관한 책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사진의 용도

1.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잘 찍은 인물 사진은 그 인물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인물의 표정, 시선, 제스처, 옷차림, 배경이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평면 이미지가 화면 너머로깊어지기도 하고, 테두리 바깥으로 넓어지기도 합니다. 피사체가 유명인이라면 이미 그에 관해 알고 있는 사실이 부각되거나 축소되기도 하지요. 전혀 모르는 인물인데 잘 알던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존 버거는 『글로 쓴 사진』에서 인물 사진이 이룰 수 있는 예술적 성취에 글로 도전합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가 말하는 ‘글로 쓴 사진 - 포토카피’를 통해 또 다른 성취를 이루어냅니다. 그는 사진으로 찍듯 글로써 인물과 풍경을 그려냅니다. 직접적인 묘사, 저자가 인물과 나눈 대화나 인물에 관해 알고 있는 사실, 그리고 그 인물과 겪은 사건과 그 인물을 놓고 펼친 상상을 동원해서요. 한 편 한 편이 길지 않지만 누구도 그렇게 쓰기 쉽지 않을 적확한 첫 문장은 순식간에 독자를 텍스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합니다. 그래서 두세 쪽, 길게는 예닐곱 쪽의 포토카피 안에서 유영시키다가 급작스레 문을 닫고 현실-챕터의 끝으로 끄집어내지요. 어떤 사진에 매료되는 데 0.1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 사진에서 눈을 떼는 덴 몇 십 초, 혹은 몇 십 분이 필요한 것처럼요.

우리 모두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습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 사연이란 게 누구도 관심 없는 무의미한 사건일 수도 있지요. 나한텐 삶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고 해도요. 하지만 존 버거는 그 소외된 인물, 이야기를 지면 위로, 빛 속으로 끌어냅니다. 이 책 안에서 만나는 포토카피의 피사체는 흡사 소설 속 주요 인물처럼 주목을 끕니다. 그게 우리 모두가 실은 유의미한 존재라는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존 버거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을 그의 포토카피에 옮겨 적습니다. “사진은 끝없는 응시로부터 나오는 무의식적인 영감이다. 사진은 순간과 영원을 붙든다.” 존 버거가 글로 쓴 사진들도 이 위대한 사진가의 작품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인은 새 한 마리를 손에 올려놓더니, 머리를 흔들고 팔꿈치로 쳐내면서 다른 새들을 쫓았다. (…) 빵 부스러기를 주었으나 받아 먹지 않았다. 여인이 다른 비닐 봉지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며 찾는다. 그것은 우유가 조금 담긴 아기 젖병이었다. 비둘기의 입을 벌리더니 부리 속으로 몇 방울 떨어뜨려 넣었다. _35p.

그곳 산에서는 개연성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소나무숲이 지금 막 걸음을 멈춘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은하수가 마치 모기장처럼 가깝게 보일 때도 있다. 어느 8월 아침에는, 우유 짜는 헛간에서 똥 치울 때 쓰는 외바퀴차의 손잡이가 얼어 버리기도 한다. _83p.

비슈는 영원했다. 말이 늙어 일할 수 없게 되면 또 다른 어린 말을 사서 비슈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었다
언젠가 고삐 하나를 내 앞에 들어 보인 적이 있다.
무슨 뜻인지 알아요? 조용히 물어 왔다.
말을 보냈다는 뜻 아닌가요.
십오 년은 짧은 세월이 아니지요. 그가 말했다. _92p.



2. 『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마크 마리 지음



우리는 왜 사진을 찍을까요? 순간의 포착, 장면의 소유, 기억의 보조. 사진의 일차적인 기능은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빛이 허락하는 한, 단 한 프레임 분량의 시간과 장소가 고스란히 박제되니까요. 그런데 어떤 사진들은 화상이 맺히는 순간부터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집니다. 기록된 것들 너머로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아니 에르노는 연인인 마크 마리와 사랑을 나눈 다음 날 아침마다, 지난밤에 남겨진 흔적들을 마주하며 그 흔적이 매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옷과 신발, 먹다 남은 음식이나 제멋대로 움직인 가구들은 두 사람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구성으로 이미 “멀어진 축제”를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마크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를 사진으로 찍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진 몇 장을 선별하여 각자 그에 관해 글을 쓰기로 하지요. 글이 완성될 때까지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기로 하고서요.

이 작업이 단순히 연인 간의 게임에 그치지 않는 것은 아니 에르노가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는 항암치료 과정과 그로 인해 변해버린 몸에 관해 자세히 씁니다. 죽음이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거의 인물이 나오지 않는 사진만 찍었는데, 그런 사진들이 그녀가 없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미처럼 구겨진 옷이나 걸어가다 막 걸음을 멈춘 것 같은 뮬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부재를 주관적으로 옮기면 ‘상실’일 테고, 잃어버린 모든 것은 아름답기 마련이니까요.

이 책은 묘하게 로맨틱합니다. “당신을 베니스에 데려가고 싶어요.” 서로 어떤 글을 쓸지 공유하지 않았음에도 한 사진에서 같은 것에 관해 쓰는 부분이 있어서인지도 모릅니다. 또, 관계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연인 간의 글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조금은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글은 우리를 갈라놓을까, 혹은 더 가깝게 만들까?” 한 사람은 투병 중이고 한 사람은 막 이혼한 상태에서도 사랑을 나누고 여행하고 싸우고 질투하는 일상성이 유지되는 것을 보며 막연한 안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사랑 후에 어질러진 풍경의 상을 항상 보존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왜 조금 더 일찍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왜 어떤 남자에게도 그것을 제안해 본 적이 없었을까. (…) 아마도 나는 그 일을 오직 그 남자와 내 인생의 그 시기에만 할 수 있었으리라. _25p.

그 안에서 병은 제외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단번에 ‘내재된다’. 우리 셋, 죽음과 A와 나는 몇 달 동안 함께 살게 된다. 우리들의 동거인은 성가셨다. 그는 항상 거기에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손에 넣었다. _84p.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찍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서로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그것은 가속이 붙은 상실과도 같다. 상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십 장의 사진을 찍는 것은 오히려 더 깊은 상실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을 준다. _101~102p.




* 이 리뷰는 여분의 책방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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