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atre Romance Jun 18. 2023

두리안을 닮은 공연장

Esplanade 

아시아 동남부 말레이 반도 최남단에 있는 작은 다민족 도시국가 싱가포르. 19세기 초, 영국의 식민 아래 개발된 이후 동남아 최고의 선진국이자 경제국가로 성장해 세계경제의 중심지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국가이다. 싱가포르는 부존자원이 없고 반도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무역과 금융에 의존하여 경제부국으로 성장했다. 싱가포르의 주 종족은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지만, 무역과 금융으로 성장한 도시국가답게 그 외의 국가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해서 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 말레이, 인도계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가 매우 다채롭게 섞여 싱가프로만의 독특한 문화양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또 동시에 볼거리가 많은 관광도시로서의 입지도 매우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매년 독특한 문화양식을 기반으로 성장한 무역과 금융의 도시, 세계적인 항구, 아시아의 허브공항, 화려한 랜드마크들을 보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하고 있다.

에스플러네이드의 외관 (ⓒSungyeon Park)

싱가포르를 처음 방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연 싱가포르 강 하구, 마리나 베이로 몰려든다. 도시의 중심부가 베이에 집중되어 있고, 특히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머라이언 사자상, 대형 정원, 각종 호화 호텔들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마리나 베이에 가면 국제 금융계를 이끌어나가는 기업들이 자리한 고층 빌딩들 사이에 독특한 외관을 가진 동그란 건물을 볼 수 있다. 마치 열대과일 두리안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얼핏 보면 곤충의 눈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독특한 모습 때문에 베이에 있는 화려하고 독특한 건축물 사이에서도 단연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이곳은 바로 이번에 소개할 Esplanade - Theatre on the Bay이다. 

에스플러네이드의 외관과 내부 (ⓒSungyeon Park)

싱가포르의 DP아키텍츠와 영국의 마이클 월포드 앤 파트너스의 협업으로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이곳은(초기 두 단체가 공동으로 설계했지만, 1995년 마이클 월포드 앤 파트너스는 중간에 프로젝트에서 하차한 것으로 알고 있다) 1992년 처음 그 건설을 위한 발걸음을 시작해 2001년 2월에 완공, 2002년 10월 공식적으로 개관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극장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그 독특한 외관에 대해서 가장 먼저 언급할 수밖에 없다.

극장 공간 안에서 바라본 유리차양 (ⓒSungyeon Park)

1994년 처음 대중에게 공개되었던 건축 디자인은 관객들이 건물 내부에서 바깥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별다른 차양 없이 유리 케이스로만 덮혀진 모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리로만 외관을 덮는다면 싱가포르의 열대기후를 고려하지 않은 거대한 온실을 만드는 바와 다름없다는 평론가들과 대중의 비난을 받은 후에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차양이 추가되는 것으로 디자인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결국 두 개의 독특한 원형 모양의 유리 구조물 위에 7,000개 이상의 각각 다른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차양들이 자리 잡는 모양으로 최종 디자인이 확정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애초에 의도적으로 열대과일 두리안 모양으로 극장이 디자인되었을 거라고 추측했지만, 결국은 실용적은 문제로 두리안 모양의 외관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유리로만 구성된 외관을 가졌더라면 마리나 베이의 수많은 아름다운 건축물들 사이에서 별다른 매력을 뽐내지 못했을 것이며, 오히려 알루미늄 차양을 통해 독특한 스파이크 모양, 두리안 모양을 가지게 되면서 에스플러네이드 만의 독특한 외관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쇼핑몰과 연결된 에스플러네이드 내부 및 박스오피스 (ⓒSungyeon Park)

극장 안으로 들어가 보자. MRT와 쇼핑몰로 연결된 지하로 입장하거나, 1층 정문으로 입장하는 방법을 통해 극장으로 출입할 수 있다. 쇼핑몰의 나라 싱가포르 답게 에스플러네이드는 쇼핑몰과 연결되어 있어, 공연뿐만 아니라 외식 문화를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지하로 올라가 반층 위로 올라가면 박스오피스와 방문자 센터가 있고, 그 위로는 음악공연을 주로 하는 콘서트홀과 연극 등 극예술을 주로 하는 씨어터가 있다. 양쪽으로 각각의 공연장 공간이 나뉘어 있고 중앙 홀 또한 무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 내가 극장에 방문했을 때에는 중앙 홀에서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한층 더 올라가면 리사이틀 스튜디오와 기념품 샵, 공연예술을 주로 다루고 있는 꽤나 규모 있는 도서관과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 옥상 테라스 공간도 있었다. 

에스플러네이드의 콘서트홀 (출처: https://www.esplanade.com/)

우선 1층에 위치한 Concert Hall부터 살펴보자. 1628석의 대형 콘서트홀은 그 크기에 압도되고 또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원형무대 뒤로는 세계적인 오르간 제작 가문인 요하네스 오제르 보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4,889개의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자리 잡고 있고, 무대 앞으로는 말발굽 모양의 객석이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객석부터 4층까지 켜켜이 쌓인 객석과 발코니는 클래식 그 자체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콘서트홀의 형태인 슈박스 타입을 채택해 무대와 객석이 마주 보는 평행한 모습이다. 여기에 음향학자 러셀 존슨이 음향을 담당해 설계단계부터 콘서트홀의 생명인 음향 시스템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에스플러네이드의 씨어터 (출처: https://www.esplanade.com/)

연극 등 극예술을 위한 공간인 Theatre는 1948석의 객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대극장이다. 유럽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공연장 형태로 이곳 또한 말발굽 모양의 전통적인 공연장 모양을 모델로 지어졌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대 공간으로 이곳 또한 매끄러운 곡선 모양이 많이 사용되어 포근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뮤지컬과 같은 서양에서 발전되어 온 극 양식은 물론 아시아권에서 발전된 극예술을 올리는 것에도 전혀 무리가 없다. 조정 가능한 오케스트라피트도 있어 여러 가지 대형 공연을 수용할 수 있다. 

에스플러네이드의 Theatre Studio(왼)와 Recital Studio(오) (출처: https://www.esplanade.com/)

그 외에 에스플러네이드 본 건물 위층에는 실험적인 작품을 위한 유연한 공간인 Theatre Studio와 작은 규모의 음악회를 진행할 수 있는 Recital Studio가 있다. 씨어터 스튜디오는 최대 220명까지 수용가능한 블랙박스형 극장으로 개폐식 객석을 이용하여 일반적인 공연부터 실험적인 작품까지 다양하게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이다. 리사이틀 스튜디오는 부채꼴 모양의 245석의 객석을 가진 작고 아담한 공연장이다. 무대 위는 목재 바닥으로 되어있고 실내악부터 독주회까지 주로 음악공연에 적합한 공간이다. 싱가포르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는 국가적 특징 때문에 음악 부문에서 클래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통음악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기에 작은 규모의 공연장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Singtel Waterfront Theatre (ⓒSungyeon Park)

에스플러네이드는 최근, 중간 규모의 극장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에스플러네이드 해안가 옆에 Singtel Waterfront Theatre를 2021년 새롭게 개관했다. 극장과 약 100m 정도가 떨어져 있는 해안가에 위치한 이 새로운 극장은 극장명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통신회사인 싱텔에서 약 천만 싱가포르달러를 기부하여 만들어졌으며 그 외에 부족한 자금은 정부의 지원 및 기부금을 통해 충당했다고 한다. 싱텔 워터프론트 극장의 가장 특이한 점은 여섯 가지 구성으로 변형할 수 있는 좌석의 형태다.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형태로도, 스탠딩 객석으로도, 원형무대로도, 양면객석으로도 운용 가능하도록 설계한 덕에 기존 에스플러네이드에서는 올릴 수 없었던 중간 규모의 다양한 작품을 수용 가능하게 했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될 있는 무대와 객석 공간은 다양하게 변주되는 싱가포르의 독특한 문화와 닮은 듯하다.

에스플러네이드에서 열리고 있었던 페스티벌과 프로그램들 (ⓒSungyeon Park)

에스플러네이드의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싱가포르는 다문화국가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최소화시키고자 정부 차원에서 문화적, 사회적 결속을 장려하고 있다. 이런 국가적 성향은 문화예술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여러 문화를 포용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데 열려있으며, 예산의 절반은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만큼 예술을 통한 사회적 통합에 힘쓰고 있다.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지역 문화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래밍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페스티벌을 통해 아시아 예술의 가치를 강조하고 예술을 통한 사회적 통합 형성, 문화융합의 장을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싱가포르 아츠 페스티벌을 포함하여 말레이 페스티벌, 인도 페스티벌 등 각 문화별 주제에 따라 1년에 평균 15개 정도의 페스티벌이 열리고, 1년 내내 3500~4000회의 공연이 열린다고 하니 공동체 유대감을 성장시키고 다양한 문화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또한 꾸준히 무료 공연도 많이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싱가포르인들이 포용적인 문화향유의 가치를 몸으로 익히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에스플러네이드의 야외 공연 공연을 위한 공간 (ⓒSungyeon Park)

싱가포르가 한창 개발되었던 1970년대 당시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옹텅천은 "싱가포르는 궁극적으로 예술적이고 활기찬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라고 했다. 내가 에스플러네이드를 방문한 날도 야외공연장에서 무료공연이 이뤄지고 있었다. 야외 공연장에서 나오는 음악소리, 뒤에 펼쳐진 아름다운 베이와 바다, 자유롭게 춤을 추고 보드를 타는 사람들, 맑고 투명한 날씨까지 더해져 내게 에스플러네이드의 풍경은 생동감 그 자체였다. 지난 20년 동안 에스플러네이드는 싱가포르의 문화예술계의 뼈대를 탄탄히 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예술활동에 집중하고 다양성을 공고히 다지며 예술을 통한 융합의 멜로디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해 왔다. 앞으로 더 급속도로 다원화되고 변화해갈 싱가포르의 문화를 예술이라는 통로를 통해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에스플러네이드의 성장이 기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도시에서의 새로운 출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