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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부르크의 최중원 Jun 05. 2021

해만 주는 존재

M 나이트 샤말란을 아시나요. 식스센스라는 전설의 반전을 가진 영화로 유명한 감독이죠.  그 감독이 식스 센스 다음에 찍은 영화가 뭔지 아나요.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영화입니다. 아마 모르실 거예요. 그렇게 성공한 영화도 아니거든요.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고. 아무튼 그 영화에는 사무엘 L. 잭슨이 운명적으로 계속 다치는 사람으로 등장해요. 그 사람은 54회의 골절을 겪는 불행한 인생 속에서 이렇게 생각하죠.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세상 어딘가에는 운명적으로 어떻게 해도 다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결국 그는 절대로 다치지 않는 사람, 브루스 윌리스를 찾아내죠.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냐고 생각하시겠죠. 이해합니다. 하지만 허무맹랑하기로 치면 방사능 거미에 물려 손목에서 거미줄을 쏘게 된, 거꾸로 매달려 키스하는 취미를 가진 친구나 색색의 돌을 모아서 장갑에 박은 다음에 손가락을 한번 튕기면 전 세계의 인간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도 별반 다를 게 없죠. 그러니까 제가 이제부터 할 이야기도, 그런 의구심일랑 접어두시고 오픈 마인드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직 그렇게 오래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짧지만은 않은 제 삶 속에서, 저는 언제나 남에게 해만 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좋은 영향력을 끼친 적이 없어요. 저는 제 엄마 아빠가 누구인지 모른 채 고아원에서 컸습니다. 제가 자란 고아원은, 밥이 그렇게 맛이 있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은 곳이었어요. 수녀님들은 신앙심이 너무 굳건하셨고, 그래서 종종 특정 문제에 있어서는 완고했지만 그래도 끝도 없이 무엇인가를 베풀 줄을 아는 분들이셨죠.  하지만 고아원이 있던 교구에 새로 오신 신부님이  혼자서 씻을 수 있는 나이가 된 저를 데리고 샤워실에 함께 들어갔다가 그 모습을 한 수녀님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왜 그 일 때문에 고아원이 문을 닫게 되었는지 저는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제가 아니었다면 고아원은 아마 아직까지도 문을 열고 있었겠지요.


어떤 말이 하고 싶은지 잘 압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것은 정말 흔한 일이 아니지만, 저와 비슷한 일을 겪은, 저보다 더 심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보통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는지 저는 여러 번 봤어요. 네. 제 잘못이 아니죠. 하지만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저로 인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배고픈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는 것은 사자의 잘못이 아니죠. 하지만 토끼가 죽은 것은 사자 때문이잖아요.  만약 그런 일이 제 인생에서 딱 한 번 일어났었다면,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반쯤 눈을 감고, 그래, 내 잘못은 아니잖아. 하고 편하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매번 일어난다 면요, 점점 더 자신이 주는 해에 민감해지게 됩니다. 사냥꾼이 사냥을 많이 할수록 사냥터의 환경과 온도, 사냥감의 습성, 총의 정확도와 반동 같은 것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아니면 천체의 운행에 대해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해서 이젠 밤하늘에 반짝이는 작은 빛 하나를 봐도 쉽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하자면 숨을 내쉬는 것 하나만으로도 올라가는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통해서  제가 이 지구에 끼치는 나쁜 영향을 감각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죠. 방금 표현은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질 까 봐 던진 농담이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된다면 도저히 살아나갈 수가 없잖아요. 


당연히, 안 믿으시겠죠. 어차피 이 이야기는 30분 안에 완성되어야 하니 구구절절하게 다 털어놓을 여유는 없습니다. 그 대신 몇 가지 일화를 들려드릴게요.


제가 대학생일 때, 제 친구가 저에게  달팽이 한쌍을 맡아달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자란다는 식용 달팽이 었죠. 크기도 초등학생 주먹만큼 자라는 데다가 식성도 엄청나고, 번식력도 좋아서 한 번에 알을 200개씩 낳는 그런 친구들이었습니다.  TMI인데, 달팽이는 짝짓기를 하기 전에 한판 싸움을 벌인대요. 이긴 쪽이 수컷이 되고, 진 쪽이 암컷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요.  저희 집에 데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항의 유리 너머로  흙에 파묻힌  비비탄 크기의 알 수백 개가 보이더군요. 깨어나는 것도 얼마나 금방이었던지요. 

그때는 겨울이었고, 겨울학기가 한참 막바지였을 때였죠. 마지막 발표를 앞두고 학교에서 밤을 새운 저는, 씻고 옷을 갈아입으려 잠깐 집에 돌아왔었습니다. 방은 너무 싸늘했고 달팽이들은 추위에 놀라 입구를 얇은 막으로 막고 반 겨울잠 태세에 돌입해 있었습니다. 저는 샤워를 하는 잠깐 동안이라도 몸을 좀 녹이라고, 달팽이 우리를 방바닥에 놓고, 이불로 덮은 뒤에 보일러를 최대로 틀었습니다. 그리고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보일러를 끄는 것을 잊어버리고 학교로 다시 가버리고 말았죠. 다음날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방은 너무나도 뜨끈뜨끈했고, 깜짝 놀라 뛰어들어가서 달팽이 우리를 덮고 있었던 이불을 들춰보았을 때, 사하라 사막 같은 흙 위에서 바짝 말라죽어있는 두 마리의 큰 달팽이와 수백 마리의 새끼 달팽이들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 달팽이들은 사실 제 친구의 여자 친구가 선물해줬던 거였고, 그 일로 인해 그 친구는 실연을 겪어야 했었죠.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회사를 다닐 때는 저 때문에 회사에서 몰래 바람을 피우던 과장님과 대리님의 불륜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었죠.  그 회사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IT 기술을 접목한 이런저런 상품을 개발해서 파는  곳이었는데, 그때 제가 속한 팀에서 개발하던 제품이, 동작과 소리를 감지하고 영상통화를 걸어주는 캠이었지요. 제 책상에 마침 테스트 중이었던 시제품이 있었는데, 회식이 있던 날에 제가 그 제품을 끄고 나온 것을 깜빡했습니다.  갑자기 제 폰으로 영상통화를 걸어온 그 캠이 서로 집에 일이 있다고 약간의 간격을 두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 과장님과 대리님이 사무실의 제 자리 건너편 테이블에서 격한 사랑의 스킨십을 나누는 모습을 영상통화로 보여주지 뭡니까.  저희 팀은 풍비박산 나버렸지요.  


비슷한 일화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떨어진 제비 새끼를 다시 올려주려다가 제비집을 잘못 건드려 다섯 마리의 새끼 제비를 모두 추락사시켜 버린 일도, 맞은편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사람을 잡아주려다가 그 사람이 균형을 잡는 것을 방해해서( 국가대표 체조 선수였답니다) 더 큰 부상을 입게 한 일도 있었죠. 심지어 주식도, 비트코인도, 제가 사면 곧바로 폭락해버립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합니다.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자꾸 우기는 일본에 가서 살까. 자꾸 동북공정을 일삼는 중국에 가서 살까. 아니면 알카에다 같은 조직에라도 들어갈까.  제가 남에게 해를 주는 것이 불가피한 일이라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해를 받기에 적당한 대상을 찾아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 아닐까.



이제는, 제가 영화 언브레이커블을 보고, 이 세상에는 분명히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긍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존재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겠지요.  세상의 밸런스는 어떤 식으로든 유지되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예수님, 부처님, 이름 모를 성인, 평생 폐지를 모아서 모은 돈 몇억을 죽기 직전에 장학재단에 기부하는 사람이라던지,  글을 잘 쓰거나 노래를 잘 부르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하는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라던지, 가지 색 피부를 가진 외계인이 손가락 한번 튕겨서 전 인류의 절반을 죽여버린 세상을 되돌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슈퍼히어로들이던지.


영화 언브레이커블에서 사무엘 L 잭슨은  절대 다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위해 직접 여러 번 테러를 일으킵니다. 도저히 살 수 없는 상황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후보에 올린 다음에, 정말 절대로 다치지 않는 사람이 맞는지 관찰하는 식이었죠.  그렇게 그는 브루스 윌리스를 발견하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브루스 윌리스에게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를 입히기 위해 노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를 입지 않는 사람을, 그럼으로써 저에게까지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찾아봐야 할까요.  숨을 더 격하게 쉬어서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늘리고, 고기를 더 먹어서 소가 뀌는 방귀에서 나오는 메탄가스가 지구의 온난화를 더 촉진시킬 수 있도록 하고, 세상 모든 주식과 모든 코인들을 전부다 사 버리고,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모든 아이돌 그룹의 팬들이 되어 버리고,  그리고 또 무엇이 가능할까요.


아쉽지만 이젠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이 고민은 이제 오롯이 제 몫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혹시라도 재미있게 읽으신 분이 있다면, 그래서 이 글이 바로 당신이 해만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말하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거기 당신, 그 생각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당장 내일 아침 당신에게 어떠한 불행이 찾아올지 모르거든요. 하다못해 늑대만 한 대형견이 질펀하게 싸 놓은 똥이라도 밟게 되실 겁니다. 이 글을 읽은 것과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불행이라고 여기실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은 다 연결되어있고, 태평양 저편의 나비의 날갯짓이 이편에서는 폭풍을 일으키기도 한다잖아요.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로 이 글을 읽고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바로 제가 찾던 그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배트맨과 조커, 사무엘 잭슨과 브루스 윌리스, 그리고 당신과 저.  그렇다면 연락을 주세요. 그렇지 않은 여러분께는 다시 한번, 해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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