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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계모야!?

by 베존더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삼 남매 도시락을 싼다. 그 소리에 ‘다운천사’ 딸은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온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는다. “잘 잤어?”라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오빠를 깨우러 간다. 갈아입을 옷을 꺼내주면 낑낑거리며 잠옷을 벗는다. 머리빗을 들고 나타난 엄마를 보고는 아빠 품으로 파고든다. 아빠가 빗겨주길 바라는 딸은 내 손에서 빗을 빼앗아 아빠에게 준다. 아빠가 빗기는 척하고 난 뒤에서 머리카락을 촘촘하게 땋는다.


차에 영차 올라타고는 동요를 틀어달라며 손짓한다. 들려오는 동요를 허밍으로 따라 부르며 차창 밖을 내다본다. 햇볕이 드리우면 눈살을 찌푸린다. 학교에 도착해서는 폴짝 뛰어내린다. 토끼같이 깡충깡충 뛰어 교실로 들어간다. 딸을 보며 “재미있게 놀아”라며 가볍게 손을 흔들고 돌아선다. 이삿짐을 싸다 보면 딸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선생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난치며 걸어 나온다. 내 눈과 마주치자 멈춰 선다. 씰룩거리더니 이내 울음보를 터트린다. 울먹이는 목소리에

‘파파’라는 단어가 섞여 나온다.


남편의 일이 일찍 끝나면 딸을 데리러 가곤 한다. 딸은 아빠가 데리러 올 거라 기대했던 모양이다.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나에게로 왔다. 그 자리에 풀썩 앉아서는 목놓아 “파파”를 부른다. 지나가는 선생님마다 울지 말라며 다독였다. 목청껏 우는 소리가 학교에 울려 퍼졌다. 어서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20킬로그램이 넘는 딸을 안아 올렸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나오는 길에도 느껴지는 시선에 애써 웃었다. 종종걸음으로 차에 다다르고야 딸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속으로는 너무 서운했다. ‘계모도 아니고 친모에게 안겨서 우는 건 뭔데? 입혀줘, 먹여줘, 씻겨줘 무엇이든 내 손으로 해주는데 왜? 항상 선택지는 아빠냐고.’

운전하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에게 “내일은 아빠에게 데리러 오세요. 하자 알겠지?”라는 내 말에 딸의 슬픔은 조금 누그러졌다. 오페라 극장에서 일하는 남편은 오후면 집에 들어온다. 비슷하게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눈을 흘겼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씩씩거리는 나를 남편은 쳐다볼 뿐이었다.


“내일은 여보가 학교에 데리러 가!! 이틀 연속 갈 때마다 우니깐 민망해 아빠랑 똑같이 생겨서는 누가 보면 내가 계모인 줄 알겠어”라는 말에 남편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다음 날이 되어 남편이 데리러 갔다. 문 앞에 서 있는 남편을 발견한 선생님들은 한 마디씩 했다고 한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하며 “00 아빠죠? 어제 아빠를 찾으며 많이 울었어요. 오늘은 00가 울지 않겠어요. 다행이에요.” 뒤이어 나오는 선생님이 “어제, 당신 와이프 고생 많았어요.”라고 거들었다고 한다. 담임선생님 손을 잡고 나오는 딸은 다다닥 뛰어와서 남편에게 안겼다고 한다.


그날 이후 아빠가 데리러 가면 조용했고, 엄마가 데리러 가면 역주행으로 도망갔다. 도망가는 딸을 반대편에 서 있는 선생님이 대신 잡아주었다. 어느 날에는 구석진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 모든 선생님이 알게 됐다. 딸에겐 오로지 아빠뿐이라는 것을, 그 후로 선생님들은 날 측은히 여겼다. 때로는 “파이팅”이라며 힘을 북돋아 주기도 했다. 눈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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