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물먹은 솜뭉치처럼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진다. 공기가 맑고 하늘이 청명한 독일은 햇볕이 강하다. 선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익다 못해 화상 입을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살성이 여린
‘다운천사’ 딸은 작은 자극에도 빨갛게 부어올랐다. 딸을 위해 독일에서 좋다는 크림은 다 발렸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연고는 집에 가득하다. 햇볕으로 인한 자극으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아침마다 선크림을 듬뿍 발려 학교에 보낸다. 오전에 바르고 간 선크림은 오후가 되면 지워져서 자외선 차단을 하지 못한다. 그 부분이 신경 쓰인다.
유치원에서는 야외 활동을 위해 개인용 선크림을 가져오게 한다. 학교에서는 며칠째 내리쬐는 태양에도 선크림을 가져오라는 말이 없다. 딸을 데리러 학교에 갔는데 얼굴이 사과같이 빨갰다. 집에 오자마자 씻기고 알로에 겔을 듬뿍 발라 피부를 진정시켰다. 쓰라린지 펄쩍펄쩍 뛰는 딸을 보니 속상했다. 특수학교이기에 유치원에서처럼 살뜰한 돌봄을 받을 줄 알았다. 속상한 마음에 두 담임 중 한 명에게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학교에서 돌아온 딸의 얼굴이 빨갰고, 쓰라린지 아파했습니다. 딸이 쓰는 선크림을 보낼게요. 야외 활동 시 발라줄 수 있나요?’ ‘선크림은 오전에 발라 보내고 대신 모자를 챙겨 보내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딱 잘라진 답변에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언제든지 사소한 것까지 소통하자던 선생님 아니었던가? 특수학교라며? 한 반에 아이 10명 담임선생님 2명 그리고 도우미 선생님이 5명인데 선크림 발라주는 게 그렇게도 어렵더냐!! 아이 얼굴이 화상 입은 것처럼 심각한데?’
학부모 상담 때 기저귀 떼는 걸 협력해 준다고 했었다. 요즘 부쩍 화장실을 가는 딸이었기에 기저귀 떼는 걸 다시 부탁하며 방수 팬티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팬티 기저귀로 연습해 보잔다. ‘이미 몇 년째 팬티 기저귀 차는 중인데 그게 될까? 팬티로 바꿔줘야 딸이 인식할 텐데.’ 나와 의견이 맞지 않았다. 기저귀를 채운다고 했음 집에 보내는 아이 엉덩이에 발진 없이 기저귀라도 잘 갈아주던가. 수영 수업이 있는 날에는 수영 기저귀를 채워 집으로 보내는 건 뭔가?
물론 두 아들도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담을 통해 선생님과 협력해서 방향성을 잡았다. 학급에 문제가 생기면 학부모들과 불편한 점에 의견을 모았다. 대표 엄마가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아이들은 보완된 곳에서 잘 성장했다. 말을 잘 못하는 ‘다운천사’ 딸은 자기표현이 서툴다. 어려움을 겪더라도 혼자 스스로 헤쳐 나갈 힘이 부족하다. 부모는 대변인이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딸의 학교 학부모와 소통이라도 되면 고요 속에 외침은 아닐 텐데. 학급 대표 엄마는 학부모들에게 핸드폰 번호를 공유하지 않았다. 다른 학부모들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까?
선생님의 지침에 따라 모자를 챙겨 학교에 보냈다. 딸의 얼굴이 또 빨개져서 돌아왔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답답했다. 고민 끝에 두 명 중 다른 담임선생님에게 연락했다. ‘언제나 수고하는 선생님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작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00은 태어날 때부터 살성이 여려서 작은 자극에도 힘들어합니다. 아침에 선크림을 발려 보냅니다. 야외 활동 시간에 모자를 잘 씌어줄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수고를 알아줘서 감사합니다. 00가 쓰는 선크림도 함께 보내세요. 집중해서 잘 살피겠습니다.’라고 답변이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3주 후 부활절 방학을 앞둔 날 담임선생님 그리고 도우미 선생님에게 작은 선물을 전달했다. 요구사항 많은 별난 엄마로 여겨지지 않기를 , 의견이 잘 수용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