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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의 힘

<시적 사물: 철문>

by 모카레몬



철문에 녹이 슬고 있었다
바람 몇 번

비 댓 번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오래, 안에서부터

견고함을 풀어놓는 중이다


대문 밑으로 개 한 마리 지나가고

꼬리에 흙탕물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는 대문을 닦다 말고
한참을 문만 바라보았다


“이놈도 나이 먹는구나“


그 한마디에
철문이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은 조금씩 녹이 스는 법이다


너무 단단하면

풀릴 때가 온다

그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


그날 저녁
아버지 손끝에 묻은 붉은 녹이

밥상 위에까지 번져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따뜻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대문 앞에 오래 서 계셨습니다.

철문을 닦는 손보다 문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기억합니다.

아버지 나이를 지나가보니 제 안의 빛과 무게를 가늠하게 됩니다.

인생을 풀면서 이제는 흘려보낼 것들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쓸모없어서가 아니라, 좋았던 것들이어서

천천히 놓아 보내는 일입니다.

흘러가도 잊히지 않고 어디에선가 남아서 빛이 되면 좋겠습니다.

글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뜻도 그렇습니다.

그것들이 새로운 생명력으로 푸르게 자라면 좋겠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린도후서 4:16)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주일을 시작하는 첫날, 활기찬 하루 보내세요❤️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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