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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럼 그렇지, 쉽게 될 리 없지..

별이 되어 선물해 준 엄마라는 이름

by 최고담 Feb 26. 2025


그때의 우리 집 시계는 아마 다른 집 보다 더디 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시간.


그때의 남편에게 지금도 고마운 것은 나에게 억지로 괜찮길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때의 나는 얼굴이 눈물 하나 없는 무던한 표정으로 슬프고 힘든 말을 하곤 했다.


자신을 난도질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던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남편은 나보다 괜찮아 보였다.

사실, 좀 서운하기도 했었다.


따지고 보면 남편 입장에선 아이랑 보낸 시간이 2주 남짓이니 뱃속부터 함께한 나와는 좀 다를 수 있지 생각했다.


임신을 한 것도 아니니 호르몬 작용도 없을 것이고, 부성애가 생기기엔 좀 짧은 시간이니 그럴 수 있지 생각했다.


하지만, 연말 회식을 하고 술을 엄청 먹고 돌아온 남편이 샤워를 하러 들어가 너무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화장실 문 앞까지 갔을 때 깨달았다.


남편은 샤워기를 틀어두고 울고 있었다. 아버님도 재신이가 떠났던 그날에 한참을 샤워기를 틀고 울었다고 하셨다. 이런 것도 닮는구나 싶으면서도 짠하고 속상했다.


그러고 난 후, 나는 어쩔 줄 몰라 이내 못 들었다는 듯이 방으로 돌아왔다.


방 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가여워하느라 미쳐 신경 쓰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했다. 아이를 보내고 바로 출근해야 했던 남편의 심정을..


출산휴가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보내고 왔다는 소식이 회사에 쫙 퍼졌을 것이었다.


결혼하고 세 달 만에 출산을 한다고 갔으니 소문이 더 빨랐을 것이다.


그런 회사사람들의 동정 어린 눈을 견디고 이겨내며 괜찮은 척 일해야 했던 그의 심정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봤다.


남편이 씻고 나온 소리가 나자 자는 척을 했다. 눈을 뜨면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았기에.. 그저 눈을 감고 기다리다 옆자리에 누운 남편을 잠결인 듯이 꼭 안아주었다.


나와 같이 이 불행의 길을 걷고 있는 남편이 너무나 고마웠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임신 전문가가 되는 거 같았다. 난생처음 직구를 시도했다. 지금은 흔한 배란일 테스트기를 아마존에서 직구로 구매했다.


조금 빠른 반응이 온다는 임신테스트기도 샀다. 마음은

늘 임신에 다가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임신을 해서 결혼을 했으니, 마음먹고 반드시 임신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할 것들이 많았다.


걸어가면서도 아이가 보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산부인과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드라마에는 음식 앞에서 헛구역질하면 애가 생기던데 왜 나만 나한테만.. 이렇게 어려운 거 같지


그렇게 분노에 차서 생리할 즈음되면 증상놀이를 하고, 실망하길 몇 번 마침내 희미하게 두줄을 보게 되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눈을 몇 번 비벼보아도 두줄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남편과 산부인과를 갔다. 혹시 맞으면 안정기 까지는 아무에게 말하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가서 확인할 때까진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번엔 확실히 임신한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입덧이 있었다. 엄마가 그토록 우리 임신 중에 심했다던 입덧이 온몸으로 임신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입덧을 내가 겪은 기분으로는 표현하자면, 전날 술을 엄청 퍼먹고 토하고 토해도 아직 토할게 남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기집을 보고 입덧을 하니 세상을 다 얻은 거 같았다.

총총이가 다시 와준 걸까 생각하며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B형 남편은 A형인데 총총이는 O형이었다. 나올 확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좀 특이해서 이번에 온 아기도 O형이면 총총이가 다시 온 거라 생각들 거 같다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두줄을 확인하기 전, 친정아버지가 전화를 걸어 혹시 좋은 소식 없냐고 물었다.


엄청 선명하고 좋은 꿈을 꾸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태몽인 거 같아서 물어본다고 하셨다.


이 모든 정황이 너무나 선명하게 임신을 향하고 있었기에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이내 아기집을 확인한 순간 이번에는 건강하게 낳기만 하면 되는구나라고 행복해했다.


입덧을 했지만, 힘들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신기해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그다음 날 피를 보기 전까지는..




갑자기 뭔가 흐르는 기분이 들어 확인하니 피가 나오고 있었다. 임신 초기에 피 비침은 좋은 징조는 아니라서 놀라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음.. 산모님 병원에 내원해서
확인하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남편에게 이야기한 후 혼자라도 병원에 다녀오겠노라고 이야기했다.


사실은 불안했다. 그래서 가서 확인받고 싶었다. 이것은 그냥 착상혈이라던가 잠깐 그렇다던가 뭔가 내 걱정을 사라지게 할 무언가를 듣고 싶었다.


병원에 도착했고, 초음파를 보는 의사의 눈이 어두워졌다.


“아.. 아무래도 계류유산 된 거 같아요.. 이 추세라면 소파 수술을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거 같네요.


전에 일도 있고 하니, 수술하지 말고 일주일 후에 깨끗하지 않으면 그때 결정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


그럼 그렇지, 쉽게 될 리 없지 또 이렇게 희망을 줬다가 나를 구렁텅이로 넣다니..


세상은 너무 가혹하다. 왜 나만 왜 나한테만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야 왜.. 대체 왜..


병원에서 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집에 혼자 갈 수 있겠냐고 걱정스럽게 물으며 차라리 택시를 타고 집에 가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버스를 탔다. 택시를 타는 건 나한테 사치인 거 같았다.


그럼 그렇지, 오래도록 내 발에 채워진 불행이라는 족쇄가 이렇게 쉽게 떨어져 나갈 리가 없는데 왜 또 바보같이 바로 기대를 했을까.


쉽게 기대한 멍청한 나를 탓하고 원망하고 앉아있었다.


창문에 비친 나는 영혼이 살해당한 채로 그렇게 앉아있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던 입덧.


이 모든 상황이 원망스럽고 거지 같았다. 아이가 없는데 하는 입덧이라니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이렇게 되는 게 상상임신이 아닐까?

입덧이 아니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그냥 내가 지어내서 하는 건 아니겠지? 생각했다.


어느 순간 나오던 피가 멈췄다. 아 정말 끝이구나 생각했다. 이런 일을 또 몇 번이나 겪어야 할까.. 푸념했지만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혹여 수술할 가능성을 생각해서 이번엔 남편과 함께 갔다.


그동안 크면서 수술 한번 입원 한번 한 일이 없었는데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두 번째 수술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의사는 조용히 자궁상태를 보자고 했다. 물끄러미 초음파 화면을 응시했다.


의사가 바삐 손을 움직였다.


“산모님.. 혹시 가족 중에 쌍둥이가 있으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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