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책리뷰
1.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을 이해하고 있는가?
EBS 다큐프라임은 2008년부터 현실 세계의 현안은 물론 인류와 문명, 자연과 생태계, 인문과 과학, 예술과 대중문화, 경영경제, 가정 등을 총 망라해 사람들이 알아야할 이슈에 대한 양질의 다큐프로그램을 제작해왔습니다.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화제성 테마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아왔고 특히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본질을 잘 몰랐던 사안에 대해 심층 취재해 리포트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아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12년 방영되었던 5부작 기획 "자본주의"편은 사람들의 뇌리에 크게 남아있는 최고의 기획 중 하나입니다. 저 역시 주변에서 꼭 시청하라는 권유를 받아 챙겨 봤던 기억이 납니다.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책으로까지 출간되었는데 당시에는 제대로 챙겨읽어보지 않았던 이 책을 독서모임에서 선정하면서 제대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10년전부터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원리와 생리에 대해 자세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저는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경제서적이나 자기계발서도 꽤나 읽었는데 왜 이렇게 기본적이고 중요한 핵심 속성이자 본질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인지 깊은 반성과 빡침이 온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태생적인 특성과 한계 때문에 늘 돈을 빌려주어야 유지되고 물가는 떨어질 수 없으며 주기적인 위기가 도래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등을 어릴 때부터 알아야 하는데 책을 읽고보니 문맹으로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틈만 나면 돈을 찍어내 당장 급한 불을 끄기에 급급했던 여러 국가들의 통화정책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에게 시켰어도 비슷하게 했겠습니다만은...
특히 미국에서 달러를 찍어내는 미연방준비제도 FRB가 국가기관이 아니라 민간은행이라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여러가지 이유로 경제사정이 어려워질 때 통화를 막 찍어내고 위기가 지나고 나면 필연적으로 부동산도 오르고 물가도 오르고 서민들이 그 여파를 온몸으로 받아내게 되는 시스템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게 되었을 때의 심정은 쾌나 절망적입니다.
10년이나 된 이 책이 지금에 와서 오히려 더 의미가 있는 이유는 당시 진단을 기초로 반추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제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진단하던 설명하고 있지만 지금 현실은 그때에 비하면 훨씬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진단은 유효하지만 그 진단을 바탕으로 답을 찾는 행위를 누구도 하지 않았고, 현실적인 대책이 실행되지도 못했습니다. 10년 전에도 지적했던 것들이 해결이 안되고 있다는 점에서 무기력하게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2.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마음껏 누렸던 시대가 계속되면 너무 좋겠으나 세상은 그렇게 한가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금융위기는 늘 반복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손쉬운 대안을 선택해 유동성이 과잉이 되면 양극화가 심각해 집니다. 이 사태가 경제 대공황을 불러오고 이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본 터전을 잃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특정 이론이 교차로 주도하던 시기가 어어져왔습니다. 초기 대표적인 학자와 이론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입니다. 국부론에서 주장하는 것이 단지 자유방임만은 아닌데 스미스의 주장이 왜곡되는 지점이 상당히 있는 것 같습니다. 자본을 가진 자들의 욕망은 스미스의 순수한 주장을 그대로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가치를 최상으로 여겼던 스미스의 이론을 등에 업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가난해지자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들고 등장합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반복적인 자본의 축적에 대한 문제의식만은 확실했던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바탕으로 급진적으로 활용되기는 했지만 이론 자체는 상당히 진보적이고 훌륭합니다. 다만 마르크스가 가장 간과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마르크스 본인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론을 전개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르크스와 달리 욕망에 차있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을 놓친 것이 비현실적인 결론에 이르게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본을 가진 자들의 욕망을 제어할 길이 없는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문제를 노출했고 실업률은 높아지고 또 다시 위기에 빠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케인스의 거시경제학이 주류로 등극하게 됩니다. 정부가 개입해 자본주의의 폭주를 제어해야 한다는 수정자본주의는 한동안 유용하게 이용되었으나 이 또한 정답은 아닌지라 자본주의의 원래 본질에 맞게 작은정부와 자유경쟁을 주창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대 유행하게 됩니다.
지금에 와서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지적되기도 하고 지지되기도 하는 혼란한 상황입니다만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금융자본이 국가의 영향력을 넘어서면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피해만 고스란히 보고 있는 국민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코로나시기를 넘기면서 넘치는 유동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금리 정책의 끝에는 또 어떤 부작용과 피해가 닥치게 될지 두렵기만 합니다.
3. 체제유지를 위한 대안은 과연 있는가?
자본주의의 태생적 장점과 한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어떤 대안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늘 해결책을 찾아왔다는 아름답고도 긍정적인 문구로 마무리하고 싶지만 여지껏 제대로 해결책을 찾지는 못한 것으로 미루어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보잉747 이론처럼 한번 이륙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계속 추진력을 얻어 나아가야만 하는 자본주의는 자칫하면 추락하는 무서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위태롭기만 합니다.
이 책은 마지막 5장을 할애해 이 와중에도 해결책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으로 복지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자본을 옹호하는 세력에 의해 복지는 모두를 망치는 나쁜 약으로 덧칠된 면이 있습니다만, 어떻게 따져도 복지없는 자본주의가 답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복지가 답이냐고 한다면 그 또한 선듯 그렇가도 할 수는 없지만 인류의 공존을 최상위 가치에 둔다면 부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 수단인 복지의 문제를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도 결국 복지가 무조건적인 분배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가진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자에게 제공하는 정도의 단순한 의미에서 바라볼 것이 아님을 공을 들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중 신선한 접근은 복지 정책을 통해 기본적인 생계의 문제가 담보될 경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창의성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창의성에서 세계적 경쟁력과 소프트파워가 길러질 것을 생각하면 긍정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시장방임도 정부주도의 구조도 모두 정답이 아니며 오로지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에 담긴 다양한 자본주의의 한계와 문제를 생각하면 빈약하기 그지없고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은 해결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대안이 제시된지 10년이 지난 오늘날,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악화된 여건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대부분 거시적인 담론을 다루는 책들이 가진 한계와 동일하게 이 책도 날카롭고 풍성한 현실 인식과 비판에 비해 무성의해 보이고 실효성 없어 보이는 막연한 결론으로 마무리되고 있어 독자 입장에서 힘이 빠집니다.
우리가 속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누군가는 부의 축적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누군가는 세계적인 공황과 경제악화와 무관하게 자본주의의 혜택속에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대중은 쉼없이 노력하고 노동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늘 빈곤에 허덕이고 상대적 박탈감에 힘겨워합니다. 딱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을 뿐더라 더 나은 대안도 찾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자본주의 세상이 어떻게 나아갈지 알수없지만 매우 어렵고 나쁜 시기에 도래해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와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10년전에 진단했던 자본주의의 문제와 한계에 대해 돌아보며 재평가해 보는 과정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자본주의의 속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독자가 계시다면 한번 쯤 읽어보시면 큰 도움이 될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