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 책 리뷰
1. 숏폼, 도파민 중독, 디지털 디톡스, 일상철학
바야흐로 숏폼의 시대입니다. 얼마 전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설현 씨는 하루의 시작부터 일상 모든 일을 할 때 스마트폰을 틀어놓고 숏폼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 자신의 모습과도 너무 닮아 있어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 짧은 영상을 반복적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시대적 흐름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지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보니 숏폼의 대 유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도파민 중독을 경고하기도 하고, 디지털 디톡스를 권하기도 합니다. 도파민 중독에 대한 경고조차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숏폼으로 제작하는 현실이 아이러니합니다.
숏폼을 지속해서 보는 현상을 걱정하는 이유는 사고능력과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숏폼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니 책을 읽거나 긴 글을 집중해서 읽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소설 읽기 조차도 금세 주의가 산만해 읽는 것이 중단되는 것을 자주 경험합니다.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합니다만, 좋아하고 즐기던 일을 그냥 끊는 것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그다지 좋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반작용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실패하면 더 심한 중독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이어트를 잘못하면 리바운드 때문에 더 살이 찌는 것과 유사합니다.
흐트러진 사고력과 집중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툴은 "철학"입니다. 철학은 인생의 방향성과 지혜와 직접 관련되어 있습니다. 생각 없이 산다는 자각이 들 때 꺼내 들고 뭔가 해답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몇 안 되는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철학이라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점입니다. 통용되는 가장 모호하고 광범위한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철학이 답이 되려면 사색을 많이 해야 하고, 고민을 깊이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집중력을 발휘하기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깊은 사색을 한다는 것이 더없이 어렵습니다.
알랭드 보통을 주축으로 삶의 본질에 대해 공부하는 인생학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철학을 일상의 영역으로 가져옵니다. 그리고 최대한 짧은 텍스트로 폭풍 다이어트를 해서 큰 고민 없이도 쉽게 읽고 핵심만 취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 내놓았습니다. 그 결과물이 이 책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입니다.
2. 철학도 숏폼으로 제공하고 소비할 수 있을까?
철학의 본질은 탐구와 인식 그리고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의 결과로 세계관이 정립되고 삶의 태도도 정해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애초에 '쉽게', '적당히', '간단히'와 잘 어울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해도 늘 어려운 것이 철학입니다. 이런 철학을 쉽게, 간단하게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철학 부재의 시대에 큰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인생학교의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은 이 어려운 일을 어느 정도 해낸 것 같습니다. 철학하면 늘 만나게 되는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이고 칸트, 니체, 하이데거 등의 굵직한 철학자들을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카뮈나 애덤 스미스 등의 작가와 경제학자, 여기에 유교, 불교, 도교, 선불교 등의 동양철학까지 광범위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철학자의 철학을 달랑 두 세 문장으로 정리하고 요약해 전달하고 있으니 적어도 쉽고 명확하며 간단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성공적입니다. 이걸 이렇게 정리해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 철학도 숏폼으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구나 싶어 놀랍고 신기합니다.
대체로 첫 단락은 철학자나 철학 사조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두 번째 단락에서 그 철학자의 주장이나 철학의 핵심을 초간단 정리해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추가 설명이 필요하거나 독자에게 제안하고 싶거나 질문하고 싶은 내용을 역시나 간단히 요약해 마무리하고 있는 형식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과연 집중력이 떨어져 있는 분들에게 철학이라는 화두를 던지기에 더없이 좋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복잡하게 전달해 하나도 정리가 안 되는 것보다는 최대한 요약된 정보라도 기억에 남도록 제공되는 것이 시대적 흐름과 화두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법, 불안에 흔들리지 않는 법, 관계에서 중심을 잡는 법,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법 등으로 네 가지 범주로 구조화해 두었습니다. 단순한 철학 사조의 나열보다는 독자들이 자연히 나를 중심으로 세상까지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관점을 넓히고 이해의 범위를 확장하는 구조라 효과적입니다. 책을 읽기 어려운 시대에 조금이라도 사고하고, 고민거리를 얻고 싶거나 간단히 철학사조를 정리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3. 디톡스를 해서는 안 될 것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이 수많은 동서양의 철학을 간단히 정리를 잘한 책이지만, 과연 좋은 책인가 하는 부분에 있어 솔직히 의문이 듭니다. 시대적 흐름이나 독자의 요구에 부응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더라도 뭔가 중요한 알맹이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급한 데로 한 철학자와 일가를 이룬 철학사조를 단 두 세 단락으로 설명하고 요약한다는 것이 적절한가 싶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세네카의 철학이 달랑 이런 내용이라고?'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지요. 만약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소크라테스와 세네카의 철학에 대해 제대로 안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철학은 관찰과 사고, 이해와 깨달음의 영역에 가 있도록 돕는 도구라고 볼 때, 이 과정을 이렇게까지 간단히 해치울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끼리의 코가 아니라 코끼리의 코의 코털의 일부분만 소개하는 느낌입니다. 그리하여 철학의 본질에 너무 많이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건 너무 많이 양보해서인지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의미부여를 한다면 고육지책으로 이렇게라도 사람들이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해야 하다 보니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철학에 대해 아예 담을 쌓고 숏폼에 빠져 사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입문을 하게 되면 좋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만약 제대로 된 철학을 공부하는 징검다리로 활용한다면 좋은 일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도 '내가 뭘 읽은 거지?', '별 내용이 없는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정보량이 너무 적은 책입니다. 뭔가 일상 철학을 맛본다는 기분만 내다가 마는 책이라는 혹평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인생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는 기쁨을 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단순화 때문에 더 시간이 지나면 작위적이고 단편적인 지식과 오해에 빠지게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정말 가볍게 잠깐씩 철학을 생각하고 초간단 지식을 쌓아본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접하면 정말 좋을 책입니다. 이렇다 할 일상 철학의 답을 주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벼운 책은 가볍게 접근하고 뇌를 워밍업 한다는 태도와 기대로 접근하시면 딱 좋을 책입니다. 지나친 기대는 큰 실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꽤나 의미 있는 책이 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