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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ul 29. 2024

실패는 존재적 본질을 찾는 열쇠!

코스티카 브라다탄 <실패 예찬> 책 리뷰



1. 실패를 다시 생각하다.

책 좀 읽었다 하시는 분이라면 "실패"라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 '일을 잘못해 그르친 상태'로만 이해하지 않으실 겁니다. 우리가 "실패"라는 단어를 쉽게 언급했다는 것은 이미 '실패를 딛고 성공하거나 성공의 길로 가고 있는 상태'를 이야기하기 포석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패한 인생은 슬픈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실패를 성공의 전단계로 의미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실패한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 상당히 애써 왔습니다. 뭔가 인생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말입니다. 나의 예상 궤도를 심하게 벗어나기 시작한 인생이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무던히 전전긍긍하면서 실패에서 떨어지기 위해 발버둥쳤습니다. 그 전에는 늘 '별일 없이 산다'라고 떠들고 있었는데 인생이라는 것이 내 의사와 무관하게 그리 흘러가기도 하더군요.

무엇이든 리스크가 있는 일은 경험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나 실패는 겪어보지 않고는 그 의미와 무게를 전혀 알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 인생이 왕창 망했냐하면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어쨌거나 근근히 살아남은 지금 시점에서 실패라는 단어는 굉장히 무겁게 다가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와중에 <실패 예찬>이라는 터무니 없고도 말장난 같은 제목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실패를 어떻게 좋아하고 예찬까지 한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뭔가 헛소리를 늘어놓거나 말장난으로 장광설을 펼치는 것은 아닐지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실패를 성공으로 가는 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식의 의미부여에 대해 심각한 의심과 우려를 드러내는 책이었습니다.


인문학 교수이자 저자인 코스티카 브라다탄은 실패에 대해 상당히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실패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요소다. 실패에 관여하는 방식이 우리를 규정하는 것인 반면에 성공은 부차적이고 일시적인 것일 뿐 그리 많은 걸 밝혀내지 못한다. 성공 없이 살 수는 있지만, 우리가 완벽하지 못하고 불완전하며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합의를 못 하면 사는 의미가 없으며 이 전부를 깨닫게 하는 게 바로 실패다....



저자가 실패에 대해 설명하는 기본적인 내용은 뭔가 희망적인지 절망적인지 헤깔리는 정의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싶을 때 추가적인 설명을 해 줍니다.



실패가 발생했을 때 우리와 세상 사이, 우리 자신과 타인 사이에는 거리가 생긴다. 우리에게 그 거리는 우리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독특한 느낌, 세상, 그리고 타인들과 우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느낌,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준다. (중략) 그 일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이 존재론적 각성이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자 할 때 정확히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각성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치유가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 실패를 겪을 때, 실패감을 느낄 때야 말로 나라는 존재의 각성이 일어나는 때이며 복잡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치유, 계몽, 자아실현이라는 기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실패 예찬>은 실패 자체를 위한 실패가 아니라 실패가 낳는 겸손, 그리고 실패가 촉발하는 치유 과정에 대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실패에 대해 다층적으로 살펴보고 잘 활용할 때 내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죠.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저 나름대로 겪었던 그 간의 실패와 어려움을 떠올려보면 저자의 이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몰랐으면 몰라도 조금 겪고 나니 이 양반 말이 참말이로구나 싶은 것입니다.






2. 구조를 알고 읽으면 더 잘 이해되는 구조적인 책

실패는 그냥 실패로도 의미가 크다. 실패를 도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도로만 주장하면 굳이 책을 쓸 필요도 없었겠지요. 이 책은 실패에 대해 좀 더 광범위하고도 구조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실패의 여러 층위를 설명하기 위해 총 4가지의 동심원 구조의 계층을 나누고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구분한 실패의 층위는 가장 바깥쪽부터 내부로 "물리적 실패", "정치적 실패", "사회적 실패", 생물학적 실패"입니다. 이 각각의 층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그냥 설명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각 층위에 걸맞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내세워 그의 인생과 선택, 실패의 순간 등을 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설명에 부합하는 유명인이 있으면 그때 그때 언급하며 저자의 설명을 강화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책의 구조와 구성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읽어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이 책이 제법 복잡하고 쉽지 않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는지, 책 시작부에 프롤로그를 별도로 마련해 둡니다. 이 책이 전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지, 자신은 어떤 이야기를 다루려고 하는지 간단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시간이 없거나 이 책이 도저히 안 읽히는 분이 있으시다면 프롤로그만 꼼꼼히 반복적으로 읽어도 저자의 의도는 잘 이해할 수 있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인물들이 과연 성공한 예시인지 헤깔리는 것은 이 책이 실패를 예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읽다보면 이거 칭찬이야? 욕이야? 싶은 부분이 은근 등장하기도 하고 이거슨 분명 돌려까기인데? 하는 곳도 많습니다. 이상하게 인문학 서적인데 뒷담화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서 참으로 신기한 책이었습니다. 특히 마하트마 간디에 대해 나름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기본 상식이 있었는데 이 책 때문에 다 깨졌습니다. 간디에 대한 생각이 확 바뀌는 계기가 된 것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의 두 번째 파트 "정치적 실패" 부분은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책의 마지막 생물학적 실패 파트는 좀 더 근본적이고도 철학적인 파트입니다. 생물학적 실패라고 했지만 사실상 죽음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인류는 죽음이라는 생의 마침표를 극복하는데 끊임없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 예찬이라는 주제에 어울리게도 죽음이 마냥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인지 자체에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오히려 추구해야 할 어떤 거시기로 생각하면 삶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철학자 시몬 베유>





3. 그럼에도 이 책이 쉽지 않은 이유

신선한 방식과 관점으로 접근한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잘 안 읽어지는지 읽는 내내 고민을 했습니다. 단순히 문해력이나 지적인 수준의 문제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자가 훌륭한 분인 것은 알겠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을 쉽게 전달하는 재주는 1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와 지적인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그런 것일수도 있습니다만, 서술 방식에 모호한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데에 있어서 직설적으로 정의를 내리거나 정확한 논점을 제시하고 이후에 다양한 예시나 논거를 풀어놓는 방식이 이해가 쉽습니다. 이 책은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내내 충청도식 애둘러 말하기를 시전하는 느낌입니다. 이런 거죠. '에,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하는 말은... 거시기 저 간디가 언론을 대하는 방식을 한번 살펴봅시다. 그러니까 이랬었단 말이지. 그랬답니다.' 뭐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사람 예시를 들면서 계속 타인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러다보면 독자입장에서는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문제입니다만, 각 챕터를 지배하는 중심 인물에 대해 사전 지식이 부족한 부분도 큰 어려움 같습니다. 물리적 실패 파트의 중심인물은 시몬 베유 입니다. 제가 철학자 시몬 베유를 얼마나 알겠습니까? 관심도 없고요. 이 양반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계속 하는데 관심이 갈 수가 있나요? 집중도 안되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정치적 실패 부분의 간디 이야기는 아는 인물이라 흥미가 있었고 재미있었습니다. 사회적 실패 파트의 에밀 시오랑에 대해서도 아는 바도 없고 관심 부족이었고요,


여기에 부수적으로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뒤엉켜서 등장하는데 이들 사이의 역학 관계를 이해해가며 읽는 부분도 쉽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인물들의 예화가 나열되어 있어 읽다보면 그래서 그 시점에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바가 정확히 뭐였는지 안드로메다로 가버립니다. 요런 부분들이 저를 힘들게 했고, 꽤나 오랫 동안 조금씩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번역의 문제인지 원문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문장이 잘 읽히지 않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번역이 되어 있는데 우리말인지 헤깔릴 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뒤로 갈수록 좀 더 잘 읽혔는데 이게 역자가 저자의 문장 스타일에 익숙해져서 번역이 더 좋아진건지 제가 이 번역체에 익숙해져서 읽기가 쉬워졌는지 모르겠더란 것입니다.


책을 리뷰하고 적어도 불만스러웠던 부분을 표현하려면 어떻게든 성의껏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서 욕하려고 읽는 책도 종종 있는데 이 책은 리뷰하면서 꼭 아쉬움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완독 후 다시 프롤로그를 읽어보니 역시 좋은 책은 서문이나 프롤로그만 읽어도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실패하기 쉽고, 실패가 많은 세상입니다. 그런 장소와 시절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맞기는 한데, 1 실패 1 성공은 아닌데다가 실패가 반드시 성공을 이끄는 것도 아니다보니 실패를 미화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힘을 잃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기에 실패의 구렁텅이에서 방황하지 말고 실패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에 대해서도 접해보는 것이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패 예찬은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드럽게 안 읽히기는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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