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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 동화, 그러나 따뜻한
위로와 회복의 연대기

by 돈다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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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진수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을 이미 검증받은 바 있는 베테랑 양수련 작가의 <해피 벌쓰데이>는 정통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미스터리 중에도 점층적으로 이야기를 쌓아가며 독자를 자극하다가 마지막에 터트리는 폭발형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요즈음은 먼치킨 주인공이 다 때려잡는 회귀물이 주류입니다. 반면 이 작품은 매우 치밀하고 섬세하게 설계된 미스터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정통"이라는 수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읽은 <스파이 코스트> 같은 소설이 탁월한 능력의 주인공이 등장해 적을 해치우는 시원한 방식이라면 <해피 벌쓰데이>는 마지막까지 '이게 뭐지?', '누가 누구라는 거지?'하는 혼란 속에서 미칠 것 같은 궁금증을 쌓아가다가 마지막에 반전과 함께 팍 터트리는 방식의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저는 답답한 걸 싫어해서 전자의 방식을 더 선호합니다만, 이런 방식은 결말에서 힘이 빠지고 아쉽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피 벌쓰데이>는 마지막에 모든 의문을 단번에 해소해 주면서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선사해서 읽고 난 뒷맛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작품 내용을 설명을 하자니 거의 다 스포일러라 애매합니다. 막연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데 하여간 작가가 독자를 상대로 두뇌 싸움을 위해 마련한 장치가 상당히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머리는 어지간히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저로서는 굳이 이렇게까지 다양한 장치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쓴 소설이라 내용 파악이 완벽히 안되어서 머쓱했습니다. 그럼에도 결말로 가면 초중반에 뿌린 여러 장치와 떡밥들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해설 수준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아아아~~~' 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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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자의 심리를 자극하는 치밀하고 섬세한 심리묘사

하드보일드 액션 활극처럼 막 달려나가는 소설은 아무 생각 없이 읽다 보면 끝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의 경우는 가독성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다소 해깔리는 인물 관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좋다 보니 신경이 많이 쓰였달까? 맘이 편치 않아서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소설임에도 상황에 빠져서 '아니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라며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공감 능력이 좋다 하더라도 자신이 겪어 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는 그 정서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겪은 아픔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충격적인 상황을 겪어 볼 일이 없다 보니 그냥 힘들겠지 뭐, 하고 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제3자의 관점에서 관망만 하고 있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나의 일처럼 괴롭고 안타깝고 마음 아픈 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소설 속 상황 설명과 심리 묘사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 사건을 둘러싸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 모두 각자의 입장을 가지고 행동하는데, 그 행동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짜여 있습니다. 여기에는 절대 선역처럼 보이는 인물도 있고, 천하에 악인 같은 인물도 있는데 모두가 각자의 입장이 완연하게 드러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독자가 이야기에 입체적으로 빠져들기 좋습니다. 강렬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사실 서사 구조는 단순한데도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상황에 충분히 이입할 만큼 캐릭터 구축이 잘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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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복잡한 시국, 인간의 잔인성과 회복에 대한 위로의 이야기

사실 늘 장르 소설의 미덕은 재미라고 주장해 왔습니다만, 이 재미라는 것이 때려 부수고 죽이고 망가뜨리고 복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사건 속에 인간들의 사랑과 연민과 연대를 통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면 그 또한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이 소설도 외피는 일종의 복수극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따뜻한 사랑과 회복의 치유극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작가도 그런 관점으로 보이도록 설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믿을 수 없는 잔인한 살인과 범인을 특정하지 못해 끝내 해결 못하는 미제 사건은 가해자에게는 훈장일지 모르겠지만 직접 피해자는 물론 가족과 일가 친적, 지인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됩니다. 이 소설에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낙인찍혀 사회에서 격리되고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2차 가해의 상황이 주 이슈입니다. 또한 이 상황으로 함께 고통받는 주변 인물들에 주목합니다.


사회파 소설처럼 우리 사회가 왜 이런 비극을 양산하는가에 주목하기보다는 고통받는 개인의 아픔에 더 주목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사회적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경우도 많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해 시원함을 선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어쩌면 그건 현실 회피이자 자기만족일 수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회 속에 상처받고 소외받는 개인 차원의 아픔입니다.


우리가 개개인의 어려움과 아픔에 주목할 때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잔인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힘없는 개인들이 서로 연대하고 함께 목소리를 낼 때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큰 물결이 됩니다. 잘 배우고 능력 있다고 평가받는 사람도 의외로 내면은 약하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많이 가질수록 잃지 않기 위해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집단 지성과 단단한 연대의 힘을 통해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최악으로 빠지지 않는 가장 큰 힘은 동정과 공감과 사랑과 연대입니다. 양수련 작가의 <해피 벌쓰데이>속 주인공은 잔혹한 인간으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에서 격리 당했지만 결과적으로 남은 가족과 친구의 관심과 사랑, 연민과 연대 의식을 통해 결국 구원받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모두를 도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까운 사람만이라도, 내 힘이 미치는 관계 속에 있는 서로에게 만이라도 지치지 않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고 격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님 할 수 없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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