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아무것도 팔 게 없습니다

보험왕이었던 사람이 보험을 팔지 않게 된 이유

by 낭만닥터진사부

저는 그날 계약서를 내밀지 않았습니다.

맞은편에는 30대 후반의 직장인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였고, 이미 세 개의 보험에 가입된 상태였습니다. 저는 준비해 온 설계서를 가방에 다시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은 더 드릴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약 15년간 보험 일을 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가 내민 계약서에 이미 사인했거나, 곧 그런 자리에 앉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매달 빠져나가는 보험료를 보면서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물어볼 사람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설계사에게 물으면 더 복잡한 설명이 돌아올 것 같았고, 인터넷을 찾아봐도 뭔가 팔려는 글들뿐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보험을 권유받는 방법은 있어도, 보험의 구조를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는 한때 보험왕이었습니다.

전국 2위 수상 경력에 방송 패널, 대학 강의까지 했습니다. 지금은 투자론과 행동경제학을 연구하고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이 이력을 자랑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 정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조차,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는 말을 드리려는 겁니다.


"나는 보험왕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시절이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처음에 저는 원칙을 지키는 설계사이고 싶었습니다. 꼭 필요한 것만 권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원칙 때문에 수입이 거의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저도 결국, 구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실적이 올랐습니다. 계약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고객분이 제게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이 보험, 저한테 진짜 필요한 거 맞아요?"

저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습니다. 그 침묵이 제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침묵이, 이 연재가 시작된 이유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 없으셨나요?

설계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잘 모르겠던 순간.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서 '잘한 건가'하는 찜찜함이 며칠 지속되던 경험을요?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전국에 보험설계사가 651,256명 있습니다. 국민 78명당 설계사가 1명인 나라입니다. 편의점보다 12배 많습니다. 이 나라에서 보험 권유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 누구에게 돈이 흘러가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잘못이 아닙니다. 이렇게 설계된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반응하신 겁니다.


저는 오늘 아무것도 팔 게 없습니다.

이 연재에는 특정 보험사 링크도, 추천 상품도, 제 연락처도 없습니다. 저는 지금 어떤 금융회사와도 제휴 관계가 없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고객이 잃는 것이 설계사가 버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얼마나 잃고 있는?"


이 질문이 제 마지막 상담 이후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답이 생각보다 불편합니다. 이 연재 전체가, 그 불편한 대답입니다.


한 편씩 읽어가시다 보면, 지금까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구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강요는 없습니다. 중간에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이 질문을 갖게 된 것 자체가, 이미 대부분의 분들과 다른 출발점입니다.

핵심요약.png

보험회사가 보험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면, 그들의 진짜 사업은 무엇일까요?

다음 편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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