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중 마주한 인간미
얼마전, 졸업한 대학교에서 송년회 겸, 졸업생과 재학생, 그리고 교수님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을 가졌다. 취업에 관해 궁금했던 점, 대학원 진학, 그리고 학과나 단과대 소식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는데, 나는 객실승무원 직무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과 시간을 갖게 됐다.
한 후배가 승무원은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한 직업이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힘든건지 감이 오질 않는다고 했다.
그 질문에 답을 하다보니,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이 직업이 이렇게 별로이기만 한 직업이었나 싶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다보면, 적당한 거리에서 단촐한 답변으로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편이 더 적절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엔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의미를 찾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 사례들을 소개할까 한다. 어느정도의 만족감을 통해 이 일을 계속해나가고,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나가는 '나'이기도 하니까.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쉽지 않은 것 처럼, 좋은 사람의 정의를 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상하 관계가 나뉘는 직종은 보고체계와 지시들을 잘 따라야만 한다는 명목으로 수평적인 문화를 거부하는데, 그 속에서 느껴지는 권력 관계는 ‘좋은 사람이 과연 어떤 건지’ 더욱더 혼란스럽게 한다. 윗사람에 대한 예의는 당연시되고, 아랫사람에 대한 하대가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도, 개개인을 함께 일하는 동료로 대해주고, 존중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분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배려를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 감사히 그 배려를 나눌 수 있게 이끌어 주는 사람이 좋다.
1. 승무원
우선 팀워크가 좋았던 비행을 떠올리면, 서로 “괜찮아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던 비행인 것 같다. 기내 판매가 많아서 서로 정신이 없을 때, 예민해지는 승무원들이 많은데, 서로의 실수를 미루고 책망하기 보다는 업무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분들이 있다.
예를들어, 1)‘너무 버거워질 정도로 주문량이 많아지면, 오더를 잠시 멈추고, 밀린 일을 차근차근해도 괜찮아요.’라고 말해주는 사무장님,
그리고 2)‘손님들 요청이 너무 많아서 제가 10분 넘게 물을 못 갖다 드렸어요. 혹시 한 번만 가져다 드리고, 늦게 드려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며 협업을 도모하는 선배님,
또 3)후배가 실수 했을때 ‘귀마개 달라고 하셨던 손님께서 저한테 한 번 더 요청하셔서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가져다 드렸어요. 수고 많아요!’라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는 선배님 등
서로 실수하거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음을 현장에서 함께 뛰는 동료들 만큼은 서로를 이해해주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들과 일할 때, 바쁘고 힘들어도 보람을 느끼게 된다.
2. 조종사
가끔 보안업무 때문에 조종실에 들어가게 되면, 기장님과 짧게 나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진지하게 이것저것 가르쳐주시는 기장님도 있고, 지금 객실 상황은 어떤지 물어봐주시고 승무원들 업무에 더 편하게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내게 일하는 의미를 가벼운 질문 하나로 일깨워주신 분이 있는데, 그 분을 소개할까 한다.
하루는 기장님께서 “일 어때요? 재밌어요?” 물어보셔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대답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래, 열심히 하는 게 맞다”는 피드백이 아니라, “열심히 말고~ 재밌게 해야지~ 얼마나 좋아 지루할 틈 없이 활기찬 일이잖아.”라고 하셨다.
기장님은 늘 먹는 크루밀도 날이 갈수록 맛있어지는 것 같다며 칭찬하시는 그런 분이셨다. 같이 비행하는데 긍정의 에너지가 내게도 느껴지는 그런 분 말이다.
사실 비행하면서, 소화불량에 낮밤 바뀌고 힘든데다 일도 못하는 내가 너무 답답해서 속상해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좋은 생각이 좋은 비행을 만들 수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하루였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는 게 맞다고, 적어도 막내는 그래야 한다고 채찍질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이렇게 즐겁게 일해야 오-래-, 그리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시는 분들도 많다. 그런 분들과 일 할 때, 일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3. 승객
하는 일이 뭐냐는 질문에 승무원이라고 답하면, 빠짐없이 진상손님이 없냐고 묻는다.
물론, 무리한 요구나 본인의 기분을 여과 없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그래 승무원도 사람이다,,,)인 승무원에게 표출하시는 분들을 가끔 만날때가 있긴 하다.
그래도, 요즘엔 바쁘게 기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움직이는 승무원들에게 힘내라고, 고생 많다고, 화이팅을 외쳐주시는 손님분들도 많다. 내리실 때, “밤새 승객들 케어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수고많으세요.”라는 말을 전하고 나가는 손님도 꼭 한 분씩 있다.
좋은 분들의 기억을 떠올리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한 분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손님이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이었는데, 비행기의 가벼운 흔들림에도 크게 혼란스러워하시는 손님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한 번 너무 심한 터뷸런스를 경험해서 몸이 완전히 붕 뜨고, 비행기 천장에 머리를 박았던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기장님의 터뷸런스 싸인이 날때마다 가서 안심을 시켜드렸는데, 손님은 우리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느끼시면서도 승무원분들은 괜찮으시냐고 걱정해주셨다.
“흔들리는데 서 계셔도 돼요? 어서 가서 앉으세요. 다치실수도 있잖아요.”
그 분의 두어 마디가 진심이어서 더 감사했다. 안전업무를 할때, 우리 몸보다 승객을 먼저 안전하도록 안내하고, 그 후에 우리도 착석하게 된다. 그런데, 승무원의 안전을 배려해주는 승객이라니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 손님이 내리실때, 사무장님께 승무원분들이 신경 많이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일본 과자를 한 보따리 건네셨는데, 사무장님께서 멋지게- “저희가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배웅하셨다.
4. 교관님
승무원들은 입사교육을 받거나, 입사 후에도 정기교육 혹은 안전 훈련을 받을때, 교관님들을 마주하게 된다. 교관님들은 회사를 대변해서 승무원들을 교육시키는 분들인데, 교육기간이 아닐때는 비행도 하신다.
교육때는 비행중요단계부터 항공기 사고의 원인과 비상탈출, 그리고 서비스 매뉴얼 등 다양한 것들을 가르쳐주시지만, 한 두 차례 1:1 면담의 시간도 할애해 주신다.
면담 때, 교관님께서 승무원 사회가 소문이 많고, 빠른데, 소문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밝게 비행하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던게 기억이 난다. 교관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이라는 걸 비행하면서 더 잘 느끼게 되었다. 교관으로서가 아니라, 회사선배로서 후배들을 생각해서 해주신 말씀이고, 비행하면서도 계속 붙잡게 되는 말이라 그 교관님이 참 감사하다.
그 교관님께서는 승무원하면서도, 다른 거 배우고싶으면 더 배우고, 다른 진로가 또 해보고 싶으면 그것도 한 번 도전해 보면 된다고, 회사만을 대변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봐주시는 분이었다.
사실 일하면서 보람이라던가, 즐거움이 어떤 큰 것으로 부터 오는 것이아니라, 사사로워보이는 소소한 것으로 부터 오는 것 같다.
위에서 쓴 글은 내가 아직 연차가 덜 쌓인 꼬맹이 승무원의 입장에서 느꼈던 것들을 나열한 것이라 다른 승무원분들이 보시면 어떤 느낌을 받으실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 발 한 발 승무원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한 구성원으로서, 꼬맹이 시절 느꼈던 것들을 써두면, 나중에 동료들의 입장을 더 잘 헤아리는 일원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우아하고 예쁘고 품위있는 승무원 보다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나만큼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인간미가 느껴지는 승무원이 되고 싶다.
승무원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께, 이 글이 승무원이 되어 맞이하는 일상을 그려보는데에 조금은 현실감 있는 모습이기를 바란다.
그럼, 다음 글에서 또 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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