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됐다.
밤사이 아무 일 없었구나.
밤 사이 응급 상황이 되어버려 인사도 못 나누고 수술이 시작되어버릴까봐서, 어제 중환자실에 아빠를 홀로 남기고 돌아서며 흔든 손이 마지막 인사가 될까봐 불안했던 밤이 다 지나가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중환자실 면회는 오전 10시 30분 부터였지만 엄마와 나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부산하게 8시 부터 이미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시간이 되어 아빠 얼굴을 보니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됐다. 아빠를 한 번 더 봤네. 아, 아빠와 말을 더 섞을 수 있네.
그 이틀을 보내며 실감했다. 제대로 인사 못하고 떠나보내는 것이 얼마나 큰 공포이며 고통이 될지를,
그걸 굳이 그런 식으로 배우고 싶진 않았지만 알게 되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빠에게 밤사이 아프지는 않았냐 물으니 '진통제 들어간 이후론 나는 뭐 다 괜찮어'하며 수술 전 애가 타고 있는 아내와 딸을 안심시키시더니, 우리 중환자께서, 한 마디를 더 얹으셨다.
'나만 편할 거라서 엄마랑 정희한테 미안허네'
'그게 뭔 말이시래?'
'나는 마취 들어가서 눈 감으면 사실 그 다음 것은 알 바가 없지. 눈 떠서 다시 만나면 좋은 거고, 아니면 그 눈 감은 채로 하늘나라 가면 되는 거야.
그러니 나는 편한 건데 엄마랑 정희를 힘들게 기다리게 하니 미안하네'
그 말을 듣고 아빠 앞에서 또 울었다.
사실 자신이 가장 무서움 타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그 순간에 엄마와 내게 그런 위로를 거꾸로 건넬 줄 아는 아빠는, 기품 있는 사람이었다.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은 매일 오전 10시 30분부터 보호자 1인에 한해 30분의 환자 면회만 허락한다.
그런데 그 날은, 수술 직전 면회인 터라 그랬는지 엄마와 내가 함께 들어가 아빠와 이야기 나눈지 한 시간 반이 넘어가도록 제지하지 않았다. 제지하지 않는 것도 사실 이상했지만 상관없었다. 입 밖에 그 말을 꺼내진 못했지만, 우린 혹여라도 작별이 될까 싶어 매 순간을 아까워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12시가 되어 침상에 실려 수술 준비를 위해 들어가는 아빠와 한 번 더 인사를 했다. 아빠의 침상이 수술실 쪽 코너를 돌고 출입제한구역 자동문이 닫힌 후에도, 엄마와 나는 고개를 빼고 그 곳을 한참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