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 고명환 지음
"나 이거 오더 했는데, 두권 더 샀어. 혹시 주문할까 봐 미리 알려드려요."
동네 친한 언니가 책을 선물해 준단다.
마침 읽고 싶던 책이었다.
한국이었으면 당장 서점에 달려가서 데리고 왔을지 모르나, 미국에서 주문을 해야 하는지라 책값도 비싸고 (아무래도 운송료와 세금이 포함되다 보니) 마구마구 모든 책을 주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살짝 고민을 하고 있던 책이었다.
그런데 마침 언니가 주문해서 준단다.
학부모로 만난 언니들 중 운이 좋게도 독서를 좋아하는 언니들을 세 분 만났다.
그 누구도 먼저 "나 독서해"라고 이야기한 적 없었다. 한동네 몇 년 살다 보니 서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동네 엄마들 루머에 휘둘리지 않고 조용히 자식들을 키우고, 적당한 소셜모임에, 운동하고 랭귀지를 배우거나 심리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돌아갔거나, 바이블 스터디를 하거나 혹은 그림을 그리지만, 세분의 공통점은 책을 읽는 언니들이었다.
그렇다고 우리는 북클럽을 하거나 정기적 모임을 하지는 않는다. 모두의 스케줄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두어 번 정도 함께 주어진 기간 내에 읽자고 해봤지만, 우리의 생활은 그리 녹녹지 않다. 이번에 <퍼스널 MBA> 함께 읽기로 했는데 내가 먼저 배신했다. <브런치>에 첫소설적기, 완성하기 + 십만자 넘기기 챌린지를 하기 위함이었다. 함께 읽기로 했던 언니도 블로그에 북리뷰글을 올리기 위해 여러 책을 한 번에 읽으며 아들 농구게임 다니는 중이라 바빴다. 다른 두 언니들도 마찬가지로 바쁘다.
우리는 그저 프리 스타일로, 시간이 맞으면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쳐 수다를 하거나, 번개로 커피 수다를 할 뿐이다. 그리고 남는 시간이 생긴다면 모두 독서 시간으로 활용한다. 왜? 주부들은 할 일이 너무 많아 책 읽을 시간조차 모자라다. 사실 나도 설거지 쌓아놓고 모른 척 눈을 찔끔 감고 글을 쓰는 일이 자주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언니가 차 창문 밖으로 책이 도착했다며 건네준 책은 초록색에 진한 핑크로 포인트 준 개그맨 출신 작가 고명환님의 <고전이 답했다>, 화면에서 보던 그 책이었다.
고명환 작가님은 요즘 내가 즐겨보는 유튜버와 콜라보로 '고전책 읽기' 방송을 하시며 강조하신다. 인생을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사람에게 묻지 말고 고전에게 물으라고 알려준다. 그 고전 속에 답이 다 있다고.
혼란의 시기를 견디는 단단한 삶의 내공을 위해 책을 읽으라고 알려준다.
총 3부로 나누어진 이 책은,
1부 나는 누구인가
2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안에 챕터별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에는 이 책에서 언급한 고전을 리스트로 정리해두었다.
나의 독서 생활 돌아보기
고전을 떠오르니 어릴 적 기억이 났다.
어릴 적 책을 좋아했었다. 걸어 다닐 무렵부터 언니오빠책, 엄마의 교육 관련 전공서적들을 까막눈인 채 책을 뒤지고 그림을 보고 낙서를 했다. 덕분에 혼자 일찍 글을 깨우쳤고, 전래동화, 북유럽 동화집, 남유럽동화집, 안데르센, 컬러 학습 대백과, 오빠가 읽던 어린이용 삼국지 등등 집에 항상 굴러다닌 책 덕분에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다. 초등 4학년정도 되면서 <셜록홈스> 시리즈, <괴도 루팡>등의 추리소설과 시리즈에 푹 빠졌고, 외계와 미스터리, 지구의 불가사의 관련, 그 외 판타지나 각종 어린이 책과 위인전, 그리고 두꺼운 인물 사전을 뒤져가며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그때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들이 다양했던 거 같다.
정확한 나이대는 기억나지 않으나 <어린 왕자>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갈매기의 꿈>과 같은 감수성을 건드리는 책을 읽으며 눈물 뚝뚝 흘리기도 했다. 그즈음에 고전과 장편소설도 읽기 시작했던 듯하다. 그렇게 중학생 때까지도 책을 많이 읽었던 거 같다.
그 시절 읽었던 기억나는 장편은 <오싱>, < 토지>등이었고 , 하버드 의대생들 이야기인 에릭시걸의 <닥터스>등 당대 인기 소설들과 학교에서 배우던 영문학 소설, 한국 근대 소설들을 읽었던 거 같다. 좋아했던 한국 근대소설은 염상섭의 <삼대>였다. <논어>등의 동양서적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고전이나 역사, 사상, 철학, 심리책도 하나씩 읽기 시작했던 거 같다.
가장 좋아했던 고전은 <쿠오바디스>와 <제인에어>였다. 그 외 읽었던 대부분 고전은 고등시절까지 다 읽었던 거 같다. 고전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 두께가 점점 두꺼워졌다. 어떤 책은 마치 사전처럼 두꺼워 안고 다녀야 했다.
상상력이 좋았던 시절 읽었던지라 몇십년 지난 아직도 <쿠오바디스>의 화형장면에 불속에서 피어오르는 사람 탄내가 나는 듯하고, <오싱>에서 오싱의 아들 류가 2차 세계대전 전쟁터에서 엄마를 찾다가 죽어간 장면은 지금도 떠오른다. 당시 그 대목을 읽을 때 듣고 있던 올드 팝송, 빌리조엘의 'Honesty'를 들으면 류의 절규에 아팠던 마음이 아직 느껴진다. <제인에어>의 경우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에 마지막으로 갈수록 아껴 읽었던 기억이 있다. 마지막 한 장을 마치기 싫어 한 바닥씩 아껴읽었던. 십대시절 반에서 돌아다니던 하이틴로맨스보다 고전이 훨 재밌었다.
대학을 가면서부터 지금까지 책을 읽었지만, 전공서적이나 그 시절 베스트셀러 수준이었고, 고전을 찾아 읽은 기억이 없다.
딱 한번, <제인에어>가 '내가 그렇게 아껴 읽을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였나..' 가물거려, 마흔정도 되었을때 다시 한번 읽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십 대 때 한장한장 아껴 읽던 시절의 감동과 판이하게 달랐다. '주인공 나뿐넘~!'하고 책을 덮었다. 아무래도 슬하에 딸이 있는 엄마가 된 후에 읽으니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점이 아예 달라져버린 것이다.
요즘 고명환님이 다시 고전을 강조하신다.
켜는 유튜브 영상마다 <데미안>을 자주 언급했다. 어릴 때 <데미안>을 읽은 적이 있지만 당시 내겐 살짝 어려웠던 기억이 있고,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단테의 <신곡>이나 <마르크스주의안>과 같은 철학 사상책은 어린 내게 혼자 읽기 쉽지는 않았다. 눈을 비비며 그냥 읽었던 거 같다. 그래서 내용을 잊은 게 많다.
당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진리는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나눌 어른은 집안에도 학교에도 없었다. 특히 고등시절은 대학입시 관련 이야기만 하고 국어 교과와 관련된 소설 읽기에 바빴다. 소설 분석과 시험을 위한 '읽기'였다. 내용은 국어선생님이 친절하게 주입시켜 주셨다.
그 누구도 내가 누구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고, 내 생각을 물어봐 주는 이도 없었다. 내 생각을 물어줬던 건 희망 대학 전공뿐이었다. 나는 그냥 어슴프레 제갈공명처럼 살고 싶다 정도로만 나의 인생 롤모델을 정했지만 그 또한 입시생이 되면서 잊어갔다.
중년을 앞두고 몇 년 전부터 나의 자아와 존재감이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를 사서 읽고 동영상을 찾아보며 내게 으쌰으쌰 응원의 소리를 집어넣기 바빴다. 그 응원의 소리는 도움이 되지만, 듣고 보지 않으면 금새 기억나지 않는다. 계속 속이 비어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고명환님이 다시 그 화두를 던져 주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아직 진리까지는 가지 말자고 스스로 주입 중이다. 이미 경험했 듯 진리를 생각하면 신학, 우주, 허무주의까지 사색에 너무 빠지면 애 키우기 힘들어진다.
(육아는 또 다른 세상이야기로 적당히 단순해져야 하고, 완벽을 추구하면 안되는 세상이다. 사색할 시간도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본캐는 무엇일까. 내 곁에 줄줄이 달린 부캐들은 내 본캐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한다.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분주한 시기다. 왜냐하면 돌봐야할 두명의 어린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내가 중요하다.
얼마 전 본 <지옥 2> 드라마에서 박정자라는 여인은 죽어 여러 세계를 돌아다닐 때도 자신이 엄마라는 정체성을 잃어본 적이 없다고 주인공에게 말을 한다. 그 말에 지옥에서 정체성을 잃은 남자 주인공은 더 괴로워했다. 그때 나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주부라면 무조건 '두 아이 엄마'라는 정체성이 본캐여야만 할까. 지옥에서도 잊지 못하는 두 자녀. 나도 같은 입장아라면 그럴거다.
하지만 분명 두 아이의 엄마말고도 있다. ‘엄마’를 본캐로 둔다면 평생 아이들에게 얽매여 살아야할 것이다. 성인이 될 아이들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
발목이 묶여 같은 자리를 뱅뱅 도는 파랑새는 멀리 날아가는 자녀와 함께 힘차게 날아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혹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녀와 나를 묶어 둔 채 자녀에게 부담스러운 캐릭터가 될 수도 있다. 자신과 자녀를 동일시 하고, 자신의 꿈을 자녀에게 강조하는 엄마들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벌써 답답하다.
그래서 ‘엄마’를 본캐로 두는건 위험요소가 따른다. ‘엄마’는 가장 우선시되고 본캐만큼 중요한 0순위의 ‘부캐’여야한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누구였나. 진정한 본캐를 찾는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혼란스럽지 않고 안정되고 가정도 행복해 질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러게. 경제적인 독립이냐, 돈과 상관없는 비영리 업무냐. 그냥 계속 내 꿈을 좇아야 하나.
지금 학교를 다니며 학위 공부를 하지 않는 엄마 중, 내가 아는 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한 언니가 있다. 그 언니는 책만 읽는다. 그것도 원서로. 공부를 좋아한다. 본인의 전공도 있었다. 그런데 언니는 사춘기 소녀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아직도 모르겠다고 했다. 어쩌면 언니도 엄마라는 존재로 너무 오래도록 깊게 (자녀 교육 제대로 열심히 하시는 분이다.) 생활을 해 왔기에 기억이 안 날지도 모른다. 언니는 브런치에 (이런 맥락도 없는) 글을 쓰면서도 즐거워 밤새기도 한다는 나를 칭찬해 주고 부러워했다. ‘ 재미있긴 한데, 내게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아직 돈을 버는 프로도 아니고. 이렇게 시간만 축내는건 아닌지 염려되요. 출간되었을 때 축하하고 칭찬해주세요.‘라고 대답헀다. 진심이었다.
나도 사실 고민은 많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내가 무엇을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잘 쓰고 있나. 문장이 너무 가볍나? 끈기를 가지고 계속한다고 뭐가 될까.
대학이나 회사에서는 내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해 주는 교수님과 교우, 동료들이 있었다. 지금은 단 한 명도 없다. 비평해 줄 자격이 되어도 혹시 내 마음 다칠까 봐 쓴소리 해주는 이가 없다.
이즈음이면 내 인생 잘 가고 있나, 제대로 가고 있나 정도는 돌아봐야 할 거 같다.
언니가 선물해 준 책을 읽을 후, 고전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한국처럼 도서관에 한글책이 쌓여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기 그지없다.
막 도착한 책은 <데미안>, <손자병법>, <보랏빛 소가 온다>, <앵무새 죽이기>, <이상 단편집>, <이효석 단편집>, <삼국지> 1편이다. 그 외 글 관련 책도 두어 권 함께 주문했다.
이상하게 신이 난다.
오랜만에 읽어 볼 '날개'와 '메밀꽃 필 무렵'은 어떤 식으로 내게 와닿을까.
손자병법을 읽고 아이들의 고민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니들이 고전 읽기 시작할 때, '나를 찾고, 다시 일도 하고 싶은데 고전 읽을 시간이 어딨어.' 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명환 작가님의 책을 읽은 후 다시금 고전에 묻기 시작할 거 같다.
고전 덕분에 나도 모르게 내 속이 잘 영글어갔던 십 대 때처럼 다시 멀끔한 눈으로 세상과 내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도록 고전에 질문 하고자 한다.
https://youtu.be/SuFScoO4tb0?si=JJf7hTQOBNmSGRcc
고등시절에는 빌리조엘, 시카고, 사이먼앤 가펑클, 비틀즈등 부모세대의 올드팝송을 들었다. 물론 당시 신곡들도 즐겻던. ( 갑자기 추억팔이… 가을입니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