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우리는 이탈리아로 떠나기로 했다
11월은 남편의 생일이 있는 달이었다. 우리 부부는 이런 날이면 보통 양가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곤 했는데 대개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친정 부모님을 우리 집에 초대하게 됐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생일이 지난 후에 만나면 부정이 탄다는 엄마의 완강한 주장 아래 가능한 날짜를 맞춰보려 했지만 스케줄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내가 먼저 제안한 거였다. 그럼 차라리 우리 집으로 와서 아침 식사를 같이 하자고. 먼저 말을 내뱉고 나서 스스로도 놀랐다. 내가 왜 그런 귀찮은 일을 하자고 한걸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이건 엄마에 대한 나의 인정 욕구가 발현됐기 때문인 것 같다. 결혼 전에는 찌개 하나 끓일 줄 몰라서 '결혼해서 뭐 먹고 살겠냐'며 꾸중을 듣던 딸이 지금은 미역국 정도는 척척 만들어낼 줄 아는 실력자가 됐다는 걸 엄마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밥을 먹기로 결정한 후부터는 혹여라도 엄마에게 괜한 꼬투리를 잡힐까 봐 남편과 함께 집안을 쓸고 닦으며 청소했다. 또 당일 새벽에는 일어나자마자 미역국에 잡채, 불고기까지 생일상에 꼭 필요한 음식들을 직접 준비했다. 가짓수가 많지 않아 생일상 치고는 조금 조촐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준비하다보니 체면치레는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식탁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결혼 후 거의 1년만에 우리 집에 방문한 엄마는 음식에 대해 별다른 말은 없었다. (미역이 덜 익었고, 고기가 질긴 게 국을 좀 더 오래 끓였어야 했다는 피드백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면 아주 양호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다 같이 한 상을 빠르게 비우고 난 후에는 생일 케이크에 촛불도 붙였다. 다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껐더니 옛날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전형적인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연출된 듯했다.
생일 축하를 받으며 멋쩍어하는 남편을 보고 원래 우리 가족은 이런 성격들이 아닌데, 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화목한 연출은 모두 우리 남편이 가족의 일원으로 합류하면서 생긴 변화이기 때문이다. 주말 아침이면 아버지와의 포옹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는, 우리 집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애정 표현이 넘치는 집안에서 자란 남편을 배려하고자 한 우리 부모님의 노력이었다.
반대로 우리 친정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모두가 무뚝뚝하고 애교라는 것은 일절 부릴 줄 모르는 목석같은 사람들만 모여있는 곳이었다. 생일이 되면 케이크를 사다가 촛불을 불어주는 대신 침대 머리맡에 생일축하금을 올려놓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식이었다. 사랑해, 고마워 같은 말들은 낯간지러워서 잘 하진 못하지만 돈으로, 그보다 정확히는 돈의 액수로 마음을 표현하는 사이였다.
아무튼 그렇게 생일 축하를 위한 식사 모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엄마가 먼저 불쑥 말을 꺼냈다. "너희는 어디 여행은 안 가니?"
최근 몇 년간 엄마 아빠는 부쩍 여행을 떠나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는 예전에도 주변 지인 분들과 함께 패키지로 미국부터 유럽, 아시아 등 이곳저곳을 다니길 좋아하셨는데, 아빠도 거기에 합류한 것은 막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이제는 두 분이서 자유롭게 노년 생활을 즐기시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두 분은 젊은 시절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부동산 투자에도 성공, 노후 자금도 충분히 여유로운 상태였다. 요 몇 달간은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해외여행을 다니셨을 정도로. 물론 그 여행이 모두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 등 가까운 지역에 그쳤다는 점은 두 분에게 못내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말이다.
반대로 우리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부였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추억을 쌓는 게 좋다는 건 알지만, 아직 결혼한 지 2년밖에 안된 터라 신혼집에서 둘이 노는 게 가장 재밌을 때였다. 게다가 부모님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자금 사정과 임신을 준비 중인 우리의 특수한 상황이 발목을 잡고 있기도 했고.
엄마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야기가 툭 날아왔다. "너희가 자유여행 갈 때 우리도 데려가면 우리가 비용 다 내줄 수도 있는데." 오? 솔깃했다. 부모님, 남편과 함께하는 자유여행이라니! 게다가 여행 비용은 전액 부담해 준다니! 나라면 당연히 두 손 들고 찬성이었지만 남편이 어떨지 몰랐다. 장인 장모님과 함께하는 해외여행이라. 아무리 좋은 분들이라도 일주일을 넘게 붙어 다니며 생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거였다. 엄마의 제안에 너무 좋겠다며 웃는 남편을 말리며 한 번 생각해 보고 나중에 말해주겠다고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그렇게 부모님이 돌아가시자마자 넌지시 남편에게 물었다. 엄마가 이야기한 해외여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불편할 것 같다고 이야기할 줄 알았던 남편은 예상외로 너무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비용을 다 대주신다는 데에 크게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남편의 호의적인 반응에 힘입어 나는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12월 마지막 2주간이 어떻겠냐고. 우리 둘 다 회사에 장기 휴가를 내둔 시기라 이때가 가장 좋지 않겠냐면서.
내가 너무 빠르게 구체적인 날짜를 제시하자 남편은 짐짓 당황해했다. 곧바로 태도를 바꿔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발을 빼기 시작했다. 계획이 틀어질 것 같은 본능적인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남편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할 때면 대부분의 경우 대답은 항상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쇠뿔도 단 김에 빼라고 나는 더 적극적인 어필에 들어갔다. '내년에는 둘 다 바빠져서 이번처럼 장기간 휴가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부모님이 내준다고 할 때 가야지 두 분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 '여행 준비는 모두 내가 책임지고 할 테니까 몸만 따라와라' 등의 이유를 댔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요지부동. 고민만 하고 있는 남편에게 결국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바로 이탈리아.
남편은 종종 나에게 언젠가는 함께 꼭 이탈리아에 다녀오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 독일, 체코 등 유럽의 웬만한 나라들은 다 다녀온 우리가 유일하게 가보자 못한 나라가 바로 이탈리아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탈리아는 우리의 버킷리스트 같은 곳이었다. 로마 제국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서양 문명의 시초이자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있는 예술의 나라. 프라다와 미우미우, 보테가베네타가 있는 명품의 나라. 파스타와 피자, 티라미수가 있는 미식의 나라. 그러니까 죽기 전에는 꼭 한 번 가봐야 하는 곳이 이탈리아가 아니던가.
여행지를 이탈리아로 정하면 어떻겠냐는 나의 말에 남편은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했다. 이탈리아라면 그가 절대 거절할 수 없었을 테니까. 혹시라도 남편의 마음이 흔들릴까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탈리아로 가려고 하는데 두 분은 괜찮냐고. 엄마는 다행히 10년 전에 가봤던 곳이지만 한 번쯤은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였고 아빠는 처음 가보는 나라라서 두 분 다 만족해했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지도 못하게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떠나기 불과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