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만큼 참았지 않았냐?
이거 화내도 되는 타이밍 맞지?”
실행의 기준은 숫자로 계산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예전처럼 쉽게 화내지 않는다.
교육 수준이라기 보다는
남의 시선을 많이 따지는 민족이다 보니
한 템포 정도는 참을 줄 아는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우리는 화를 잘 낸다. 화내면 크게 분노한다.
한국 사회에서 분노는 스스로 적정의 계산과 의미를 부여 후
가장 마지막에 허락되는 감정 표출인 것 같다.
설명이 바뀐 횟수 3.
한 번의 해명은 실수다.
두 번은 '어쭈?' 혼란스럽다.
세 번째부터 사람들은 상대방의 의도를 본다.
이때부터 생각이 바뀐다
“무슨 일이 있었나?” → “왜 나를 속이려 하나?”
그리고 이렇게 결론낸다.
“이건 화내도 되는 상황이다.”
상대적 박탈감의 기준 30%
사람들은 격차를 이렇게 해석한다.
(5%) “저 사람이 조금 더 잘했겠지”
(10%) “음… 운이 좀 작용했나?”
(20%) “사회구조가 그렇게 바뀌고 있군”
(30% 이상)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게 완전 특혜잖아”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남이 30%쯤 더 가져간다고 느끼는 순간, 모욕의 시작이 된다.
“나는 노력했는데…” → “이 구조는 나를 바보로 본다.”
분노가 정당화 된다.
2
기다림의 유효기간 2년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나아질 거야.”
약 2년까지는 의미가 있다.
2년이 지나면 기대는 희망이 아니라
속았다는 감정으로 바뀐다.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말한다.
“충분히 참았다.”
존중이 사라지는 시간 0.5초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데 반 초면 충분하다.
비아냥 거림, 말 끊김을 당하는 순간, 인사 무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자리에 분노가 들어선다.
“이건 나 자체에 대한 도전이자 무시다”
사람들이 화낼 때는 이성을 잃어서가 아니다.
화낼 자격이 생겼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화낸다.
충분히 무시당했고, 참았고, 비교했고, 확인했다
이 모든 계산이 끝난 뒤, 사람들은 마지막 숫자를 꺼낸다.
“이제는 화내도 된다. 문제는 내가 아니고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