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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Sep 09. 2023

추억의 음식은 날 것과 같은
언어로 춤추게 하죠!

기억의 음식은 동해바다 비릿함과 청량한 기억을 함께 주네요

밤새 붓든 내린 장마가 몰고 온 세찬 비바람이 지나가고, 

다시 거실 창을 타고 뜨겁고 차가운 바람이 겹쳐서 시간차로 들어온다.

그런데 가을에 다가선다는 절기도 지났는데, 

날씨는 서늘해지긴 해도 해질 무렵 더위는 왜 가시지 않는 걸까? 


오랜만에 시골집을 방문하여 치매에 고생하시는 어머님을 만나고 보낸 시간을 동생들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이 한 바퀴가 돌고 나면 누구나 하는 생각이 있게 되죠.

이젠 잊고 산지도 꽤 오래됐지만. 세상에 태어난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웠고, 

가장 많이 불렀으며, 또 어느 순간부터는 가장 자주 속으로 삼켜야 하는 말이 있죠. 

그 순간 절로 치밀어 오르는 ‘엄마’라는 말’ 이죠. 


이제는 맛볼 수 없는 어머님의 설악산 깊은 물로 담근 함경도식 식혜, 

젓갈 없이 생 명태가 그대로 담긴 김치와 동치미 물김치이다.
 함께 보내온 여동생의 동해바다 냄새가 무릇 나는 싱싱한 갓 말린 생선들과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기억들이 담겨 있죠.

어머님이 담가서 보내준 물김치에는 늦여름이 지나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곤 했지 죠. 

물김치에 집 나가 없었던 입맛이 돌아오고 잃었던 감각과 생기가 돌아 온곤 했죠. 

내 몸에 녹음된 해변의 새소리, 파도 소리, 그리고 산속 계곡의 시냇물 소리를 마구마구 꺼내 주죠. 

물김치 하나만 먹었을 뿐인데, 내 몸이 잠시 동해바다와 산내음이 가득한 짠 숲이 된 기분이었죠. 

어떤 추억의 음식은 미묘한 화음을 주고 날것과 같은 언어들로 춤추게 하지요. 

 

아! 이걸 안 보내주시면 어쩔 뻔했나. 

물김치에 국수를 말아 국물을 크게 한입 들이켜니 아, 여름의 몸이 된 것만 같았다. 

강릉에서 생신날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가는데 어머님이 김치통을 내민다. 

열무로 담근 물김치다. 

“무겁게 뭐 하러 이런 걸 싸. 먹을 사람도 없는데.” 

어머님이 애써 만든 걸 가져가기 귀찮은 마음이 드는 것도 죄스러워서 

어쩌면 힘들게 만드신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 좋아하는 거야.” 

막상 김치통을 받아 드니 식사 준비로 시장에서 하루의 절반을 쓰고 돌아오는 엄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게 보이죠.
  

이제 지난 고향의 동해바다에서 풍기는 비릿한 기억, 

한 동안 머물렀던 내설악의 숲과 청량한 산속의 개울가는 기억과 함께 오기도 가기도 하죠.

그 속에 담긴 어떤 음식의 기억은

나에게 미묘한 화음과 날것과 같은 언어로 날 춤추게 하죠.


추억을 준 동해바다의 비릿함과 내설악의 청량한 개울가는 기억과 함께 멀리 가죠.

이젠 치매에 누군가를 잘 알아보지도 못하시는 어머님과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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