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돌봄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 무상의료 등 복지 정책, 노인/소수자/약자를 위한 공적 돌봄과 기부, 자원봉사 등을 통한 자발적 도움이 있다. 특히 연고가 없는 불특정자를 위해 자발적 돌봄을 하는 분들은 존경의 욕구를 위해서든 또는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본받을 분들이다.
가족관계에서 돌봄은 아주 오래전부터 정착되어 왔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양육과 부양이라는 법적, 윤리적 측면으로 강제하고 있고, 세대 간에 계승되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자식이 부모로부터 받는 경제적, 신체적 양육을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거나 또는 부족한 나머지 원망하면, 부모들은 서러움을 가슴으로 쓸어내리기도 하고, 잔소리로 쏟아내기도 한다. 반대로 부모는 자식한테 부양을 기대하기에, 금전 또는 정서적인 상호작용이 부족하면 서운하거나 공허하다.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1.
한 달에 한번 바닥 대청소가 있다. 보통 밤늦게 청소하기 때문에 퇴근하기 전에 자기 자리 의자나 박스 등 물건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면, 새로운 사무실 풍경이 펼쳐진다. 똑같은 크기와 색을 가진 큼지막한 의자들이 모두 나를 응시한다. 자리에 와서는 오래간만에 힘을 주어 의자를 내리고 앉는다. 주위의 의자들이 나를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한 마디씩 한다.
'김선임은 팔에 힘이 없어서 어제 누가 올리는 것을 도와줬던데.'
'정책임은 유연 근무제를 활용하여 애들 하교시키고 눈치 보며 늦게 출근하는데, 그때까지 의자가 있으면 너무 티 나는데.'
'이책임은 어제 술자리를 2차, 3차까지 가서 늦을 텐데.'
의자를 하나씩 하나씩 내려 준다. 책상 위 남아 있는 의자들이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냐고 째려본다. 모조리 내려 준다. 바퀴에 붙은 얼룩이 옷에 옮겨 붙어 떼 지지가 않는다. 시커멓고 해진 신책임 슬리퍼가 안쓰럽다. 어제 누군가 올려놓은 빈자리의 박스도 2개가 있다. 모두 끝내니 속이 시원하다. 이제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2.
장기 휴가 또는 출장을 갔다가 복귀하면 설레면서 낯설긴 한대, 1년여의 출산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면 어떨까? 게다가 휴직 전 팀은 사라지고 낯선 팀과 팀원들과 함께 한단다. 새 생명을 세상에 품어내고, 건강하게 기르느라 온 힘을 쏟았던 이들이 복직할 때,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출근해서 이메일 체크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있는데, 내 옆자리로 오늘 복직한다고 한다. 책상 위를 슬쩍 보니 먼지가 장난 아니다 싶어서, 자세히 보니 얼룩도 심하다. 다행히 1~2시간 후에나 온다고 한다. 입주 청소처럼 깨끗하게 환영해 주고 싶다. 화장실에서 핸드 타월 마른 거 한무데기와 물에 적신 한무데기를 가져와서 먼저 책상과 3단 서랍 위/앞/옆에 덕지덕지 눌어붙은 묵은 먼지들을 제거한다. 세밀한 손놀림이 필요한 서랍 안 청소를 위해 찌라시로 받은 소형 물티슈를 사용했는데 금세 동이 난다. 동료한테 대형 물티슈를 협찬받는다. 쓱싹쓱싹 어깨가 뻐근하도록 닦는다. 그래도 티가 나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손 세정제를 묻혀서 다시 닦고 또 닦는다. 책상과 서랍 외관은 제법 티가 나고 서랍 안도 깔끔하다. 아차, 겉옷 넣는 옷장, 수납장도 청소해야 한다. 다시 닦고 또 닦는다. 이제 마쳤는가 싶었는데 의자에 먼지가 쌓여 있다. 특히 뒷덜미 닿는 부위는 비듬이 떨어진 듯 색이 바래 있다. 회의실로 가서 깔끔한 놈으로 교체를 한다.
옷에 땀이 찰 정도로 일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는데, 내 책상과 서랍이 째려본다.
3.
퇴근까지 1시간 남았는데, 금일까지 각자 업무를 주어진 양식에 맞추어서 모두 취합하라고 한다. 단톡방에서 취합할 사람을 자발적으로 추천받는다. 모두 묵묵부답이고 시간만 흐른다. 그러다 솔선수범의 대명사,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짱가가 나선다. 먼저 본인 것을 순식간에 템플릿에 맞추어 정리하여 공유하고서는 내용만 채워달라고 한다. 타이밍이 중요하니 내용은 기존에 있는 것으로 채워 주면 본인이 정리하겠다고 하며, 휴가 중, 회의 중인 사람에 대해서도 어떻게 할지 가이드를 준다. 카톡 엄지척, 하트 아이콘 숫자가 쑥쑥 올라가고 칭찬의 릴레이가 이어진다. 그러나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취합을 끝낸다. 내일이면 누가 어제 무엇을 했는지 잊힐 것이고, 새로운 취합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짱가는 조직을 위해 희생을 하지만 연말 평가할 때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을뿐더러, 성과 추가에 부끄러워한다.
4.
회사에서의 돌봄은 오너의 철학에 따라서 구성원들의 자아실현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적자인 기업에서 지속적으로 최고의 복지혜택을 제공할 수 없고, 단합된 팀워크, 협업 조직문화를 강조하지만, 평가, 임금, 승진에서는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료들 간 돌봄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위한 공간과는 별개로 인간 가치가 꽃피는 소중한 노동 공간을 만든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업무가 지속되어 뒤쳐진다고 느낄 때, 조직책임자를 대하기가 무서울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때 동료들의 조언과 응원 덕택으로 출근할 힘이 생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국가, 가족, 친구, 학교, 회사와 직간접으로 돌봄을 주고받고 있다. 눈을 감고 천천히 오늘 하루 일과를 생각해 보면 수많은 돌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억하기 어렵다면, 바로 앞 쓰레기라도 찾아서 버리거나 옆 친지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자. 그것도 하기 싫다면,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명심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