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딱서니

by 에퀴티

1.

얼마 전에 담근 총각무가 맛깔나게 익었다. 힘은 부쳤지만 입맛을 돋운다. 첫째네는 익은 것을 좋아하니까 한창 먹고 있을 것이고, 둘째네는 날 것을 좋아하니까, 아직도 익히지 않을 것이며, 셋째네는 벌써 기름에 볶아 먹고 있을 것이다.

아삭하게 총각무를 반쯤 베어 물고, 무청과 함께 나머지를 밥공기에 넣으면, 하얀 흰밥에 고춧가루 양념이 묻어난다. 입에서는 시원한 무맛이 밥을 부른다. 숟가락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무청과 뜨끈뜨끈한 쌀밥을 크게 뜨고 입으로 털어낸다. 젓갈 양념을 머금은 무청의 까슬한 풋내가 씁쓸하고 깊은 맛을 더한다. 양념이 묻은 쌀밥 부분을 숟가락으로 벗겨가면서 입안의 간을 맞춘다. 총각무 3개면 한 끼가 후딱이다.

며칠을 아삭한 첫맛과 씁쓸한 여운으로 매 끼니를 해결했더니, 이제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생각난다. 지난번 총각무 사러 갔을 때 눈여겨보았던 동치미무들이 떠오른다. 베란다에 있는 큰 항아리를 비우고 캐리어를 끌고 시장으로 향한다. 캐리어에 한가득 쌓아 올린 무와 우리 애들의 13개 입들이 수평을 맞추니 이제야 풍성해진다. 바퀴 달린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예전에 수술했던 팔과 어깨가 찌릿찌릿하다.


커다란 대야에서 무를 씻고, 소금에 절이는 동안 무와 함께할 채소를 다듬는다. 그리곤 동치미무를 통째로 항아리에 차곡차곡 쌓고, 쪽파, 갓, 고추, 대파 등을 곁들인다. 이제 소금물을 만들어선 항아리에 붓는다. 이제 사이다처럼 달고 톡 쏘게 숙성되기를 기다리면 된다. 기운은 빠졌지만 뒷정리를 시작한다. 조그만 베란다 공간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한 손으로 수도 호수를 잡고 한 손으로 스테인리스 대야를 잡고 물로 씻어 낸다. 마지막 헹구기를 마치려는 순간, 손아귀 힘이 빠지면서 대야를 놓치면서 우당탕탕 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리는 풀려서 엉덩방아를 찧는다. 손과 발이 제멋대로 떨리더니, 양쪽 눈에서 눈물이 찔끔 흐른다. 수도 호수의 물은 하늘로 올라가서는 여기저기 뿌려대고 엉덩이 옆으로 떨어진다. 바지가 축축해진다. 떨리는 팔을 휘저으면서 수도꼭지를 찾아내고 기어코 잠근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난간을 잡고 일어서려는데 엉치가 꼼짝을 하지 않는다. 한참 숨을 고르고, 온 힘을 다해 일어나서, 이를 악물고 남은 자투리를 정리한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빠져드는데 나지막한 소리가 들린다.

'동치미를 왜 그렇게 많이 담갔니?'


2.

어제저녁에 조그마한 사과와 배 상자를 들다가 오른쪽 허리가 삐끗했는데, 자고 일어나자 아침 루틴에 애를 먹는다. 일어나서 이불 개기, 식탁에서 앉았다 일어나기, 바지 갈아입기, 양말 신기 등이 예사롭지 않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있는데 형한테서 전화가 온다.

'엄마가 2주 전에 동치미 담그다가 허리를 다쳤고, 그 상태로 1주일 지내다가 힘들어서 병원에 갔더니 엉치뼈에 실금이 가서 치료 중이고, 내일 경과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형이 부부동반 대학원 졸업여행을 가야 하니까 내일 엄마 모시고 병원을 다녀오라'는 것이다. 통화 막판에 모처럼 형제간 의견 교환을 하면서 마무리한다.

'엄마는 기운도 없는데 왜 쓸데없이 동치미를 담가서 고생하지'


비가 와서 그러는지 평일 오전임에도 교통체증이 심하다.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번갈아 밟을 때마다 허리가 욱신 거리고, 그럴 때마다 씩씩거린다. 엄마를 만나고 병원까지 차로 이동하는 내내 투덜댄다. 형이 병원장과 친분이 있어서인지, 간호조무사, 간호사까지 모두 친절하게 맞이해 준다. 엄마 진료할 때 함께 진료받도록 요청하고 앉아서 대기한다. 이름이 호명되자 옆에 있던 엄마가 대기 의자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일어서고 천천히 한 발을 내딛고, 옆에 있던 나도 허벅지와 허리에 손을 얹어 힘을 주고는 일어서서 뒤따라 나선다.

진료실에 들어가 모자가 동시에 엉거주춤 앉는 모습을 보고 의사와 간호사가 씨익 웃는다. 철딱서니 아들이 나이 든 엄마를 따라 하는 진귀한 장면이다. 엄마는 막내아들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데, 아들은 스스로를 창피해한다. 엄마는 만나자마자 투덜대고, 제대로 걷지 못한 막내가 옆에 있는 것 만으로 좋고 든든하지만, 아들은 가족들 동치미를 혼자 만들게 하고, 엄마 케어도 제대로 못하는 스스로한테 창피하고 엄마한테 미안하다. 허리와 허벅지를 잡고 엄마를 졸졸 따라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중얼거리면서 쳐다보는 듯한다.

'나이가 얼만데,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한심한 건 똑같니!'


3.

초등학교 시절을 용두동에서 살다 보니 경동시장과 청량리 588이라는 성매매 지역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으면서 아이들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학급 반에 사건 사고가 생긴 날 종례시간에 초등 담임선생님 말이 또렷하다.

'너네는 이런 동네에 살아서 어쩔 수가 없다'.

그당시 선생님은 은평구에 살았기에 부촌으로 기억했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화장품 외판원을 하면서 가정 경제를 책임졌다. 쥬단학 대리점에 출근해서는 파란 제복으로 갈아입고, 캐리어에 화장품을 가득 담은 외판 가방을 2개 정도 싣고, 용두동뿐만 아니라 제기동, 전농동을 온종일 걸어 다닌다. 그리고 퇴근할 때 대리점에 들렸다 출근옷으로 갈아입고 집으로 온다. 지금도 팔과 허벅지 근육을 보이면서, 또래 대비 건강한 비결을 그 당시 열심히 일한 덕분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엄마 품을 유난희 좋아했다. 아침이면 울고불고하면서 출근을 방해하였고, 퇴근하면 엄마 품을 독차지했다. 여름 방학이면 누나, 형은 개울가가 있는 외삼촌네 집으로 좋다고 갔지만, 엄마와 단둘이서 지냈다. 엄마는 막내라서, 내가 태어나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사랑을 덜 받아 그런다고 항상 내편이었다.


그날은 친구네 집 근처에서 놀다가 가방을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땅바닥에 뒹굴면서 몸으로 신나게 놀았다. 저 멀리 낡은 캐리어를 끌고 색 바랜 파란색 제복을 입은 사람이 눈에 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옆모습만 보이면서 발 빠르게 걷는다. 외판 가방에 선명하게 쥬단학을 써져 있어서 옆모습을 보니, 하나뿐인 소중한 엄마다. 달려 나가려는데, 선생님 종례시간 말이 머리를 때린다.

'너네는 이런 동네에 살아서 어쩔 수가 없다'

주위를 둘러보고 골목으로 냅다 숨어버린다. 그사이 엄마가 쳐다봤을까 두렵다. 눈을 꼭 감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골목 밖으로 나오니 엄마는 사라진 후였다. 제복을 입은 엄마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 엄마가 처음으로 창피했다. 집에 오는 내내 뒤숭숭했던 마음이 도착해서는 도망친 사실이 들통날까 걱정으로 바뀌었다.

퇴근한 엄마 품에 안겼는데 낯설다. 저녁 내내 엄마 앞에서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오늘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일찍 잠자리에 빠져 드는데, 엄마 품에서 속삭인다.

'엄마가 창피하니?'

작가의 이전글화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