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재구성되는 기억
초등학교 때였다. 체육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신나게 웃으며 교실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마지막 계단에서 발이 계단 턱에 걸려 그만 앞으로 고꾸라졌고, 내 몸은 바닥에 철퍼덕 넘어졌다. 친구들은 놀라기보다는 우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누군가는 "괜찮아?"라고 물어봤지만, 그 웃음소리만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당시의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어떻게 해야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갈까?"라는 생각에 울음을 꾹 참으려 애썼던 기억이다.
그 기억은 오랫동안 내게 수치심으로 남아 있었다. 넘어졌던 순간, 친구들의 웃음, 바닥에 엎드려 있던 나의 모습이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당시 나는 그 웃음소리를 비난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나의 부주의와 부족함 때문이라고 느꼈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몸이 오그라드는 듯한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지금은 그 기억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친구들의 웃음은 내가 느낀 것처럼 조롱이 아니라 단순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넘어지는 상황은 그저 우스운 장면으로 보였을 뿐이다. 그 웃음소리는 아마 나를 가볍게 놀리는 말투였겠지만, 지금은 그것이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음을 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계단에서 넘어진 사건이 지금의 나에게는 별것 아닌 일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수치심으로 가득 찬 기억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순간은 어린 나의 성장 과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계단을 올라갔고, 결국은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과 다시 웃으며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중슬릿 실험이 생각났다. 이 실험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빛이나 작은 입자들이 두 개의 틈(슬릿)을 통과할 때, 마치 물결(파동)처럼 행동하며 스크린에 여러 줄의 간섭무늬를 만든다. 하지만 누군가 입자들이 "어느 틈을 지나가는지"를 관찰하기 시작하면, 이 입자들은 더 이상 파동처럼 행동하지 않고 공처럼 한쪽 틈만 지나간다. 결과적으로 간섭무늬는 사라지고, 선명한 두 줄의 자국만 남는다. 이 실험은 단순히 관찰하는 행위만으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기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과거는 이미 지나갔지만, 그것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는지는 스스로 그 기억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억은 마치 두 개의 슬릿을 통과하는 빛처럼, 과거의 사건 자체와 그것을 재구성하는 자신의 관찰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즉, 과거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기억을 관찰하는 현재의 내가 그것을 좋게도, 나쁘게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더 구체화시킨 것이 글쓰기였다. 기억 속의 부끄러운 장면들을 글로 풀어내며, 그때의 사건과 감정을 하나씩 꺼내어 바라볼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나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글을 쓰는 동안 그저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롭게 이해하고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다.
글쓰기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자 하는 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조각에 새로운 빛을 더한다. 친구들 앞에서 철퍼덕 넘어졌던 계단은 나의 실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가졌던 나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웃음은 나를 수치심으로 몰고 간 조롱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소란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글쓰기는 과거의 기억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고, 세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관찰자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세상 모든 사건이 두 가지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나를 부끄럽게 했던 일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기억은 변하지 않지만 내가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오늘도 기억의 조각을 글로 맞춰본다. 글은 그 조각들에 새로운 색을 입히고,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 그렇게 글쓰기는 나를 관찰하며 성장시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뜻하게 바꾼다. 넘어진 순간조차도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한 하나의 소중한 조각임을 깨닫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