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 이민자의 아들이 앙숙 독일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남자 셋이 모이면 축구 얘기를 한다고 한다.
축구 얘기, 군대 얘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2002년 월드컵과 이후 2006년, 2010년, 2014년 월드컵까지 전차군단 독일을 대표했던 선수로 클로제라는 선수가 있었다. 키가 커서 클로제는 헤딩골로 유명했는데 단순히 헤딩골 뿐만 아니라 테크닉도 휼륭한 선수였고, 매 경기마다 매너가 좋았던 선수이다.
클로제는 1978년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하였으며 폴란드 국가대표도 했을 정도로 유명한 선수였다. 어머니도 핸드볼 선수 출신으로 폴란드 국가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활약을 떨친 대단한 선수였다. 클로제의 큰 키, 빠른 몸과 상대를 능가하는 점프력은 그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러나 70년대말부터 80년대 당시 폴란드는 동유럽국가로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있고 공산정권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던 정점에 있던 시기였다. 결국 클로제의 부모는 1981년 프랑스로 이민을 가기로 하고 갔다가 1987년 독일에 정착한다.
클로제는 독일 디텔코프라는 작은 축구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하게되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목수 일을 병행했다. 목수일을 병행하면서 했기 때문에 그의 별명이 파트타임 축구선수 였다고 한다. 축구 하나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나이는 먹고 있었다. 그러다 1998년 21세때 홈부르크, 1999년 독일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명문 클럽인 카이저 슬라우 테른으로 입단을 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결코 젊다고 할수 없는 가운데 이미 청소년기부터 두각을 나타내던 독일 출신 선수들에 가려져있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점프력과 헤딩 그리고 기본기를 갖춘 태도가 감독의 눈에 뛰어, 2000년 프랑크 푸르트전 후반 30분에 교체되어 첫 분데스리가의 데뷔를 한다. 이후 주전 공격수로 활약을 시작하였고 그 후 독일 국가대표팀에까지 오르게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을 하여서 월드컵 득점 공동 2위를 달성한다. 이후 4년뒤 독일 월드컵에서는 득점왕이 된다. 2006년도에는 독일 키커 지에서 선정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독일 분데스리가의 득점왕도 했다. 이후로도 계속 선수생활을 하다 2016년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니, 거의 40세까지 프로 축구선수로 활동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클로제는 독일 분데스리가 정상급 프로 공격수로 오래 세월 활약해왔지만 프로클럽보다는 독일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있을때 월드컵에서 더 큰 활약을 보여주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5골을 시작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5골,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4골을 터뜨린 바 있다. 2014년 월드컵에서 36세 노장의 클로제가 세운 16골 월드컵 대기록은 이후로도 깨지지 않고있다.
최소한 3번 이상의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여 매번 5골 이상을 꾸준히 넣어야 클로제의 기록에 근접할 수 있다. 클로제를 제외하고 역대 두 자릿수 득점을 넘긴 선수들은 모두 은퇴한 과거의 인물들이다.
사실 클로제의 기록은 전무후무하다. 메시, 호나우드, 펠레의 기록을 진작에 갈아치웠다. 그에 비하면, 사람들은 클로제를 잘 모른다. 겸손하고 잘나서지도 않고 무슨 가쉽이나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래서 유묭세는 덜하지만 그의 인생은 이민자의 영웅 서사, 복수와 용서, 그리고 꾸준함과 인내를 보여준다.
폴란드계 이민 2세로 독일에 정착한 클로제는 출신에 대한 편견과 차별 속에서 축구의 희망을 버리지않는다. 스무살이 될 때까지 독일 최하부리그를 전전하는 무명의 아마추어였지만 뒤늦게 발탁되며 최하위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까지 독일 최고 명문클럽들을 거친다. 2002년 클로제가 독일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처음 입고 한일월드컵에 출전했을 때가 24세였다. 나도 그때 TV 화면에서 클로제라는 선슈흘 처음 알게되었다.
2024. 6.3, “'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자' 클로제의 위대한 발자취”, fifa.com/ko/tournaments/mens/worldcup/articles/miroslav-klose-four-medals-ko.
이민자로서, 그것도 독일과 앙숙인 폴란드 국가대표 운동선수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독일의 국가대표가 되었다니.... 클로제는 보란듯이 독일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있을때 더 큰 활약을 보여주었다. 독일 국적도 아닌 폴란드 이민자가 독일 국가대표로 더 큰 활약을 보여줬을때 독일 국민 뿐만 아니라 폴란드 국민들도 자랑스러워했다. 진정한 복수는 이런게 아닐까?
사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5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 때문에 클로제는 술이나 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때 조국 폴란드에서 축구 국가대표였던 아버지로서는 독일로 이민와서 어렵게 가정을 꾸렸다. 나중에 장성한 아들이 독일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독일에서 눈을 감은 것이다. 클로제도 목수 일을 하면서도 축구에 대한 희망을 잃지않고 꾸준히 한 결과 빛을 보게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클로제에 대한 추억이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연히 독일 대표팀 축구를 보다가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한 장신의 선수가 눈에 띄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때 그는 종횡무진 이 코너에서 저 코너로 전속력으로 달히며 상대 선수들을 돌파했다. 끝까지 달리는 그 모습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후 2012년 유럽에 잠시 체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유로파 축구대회를 보면서 클로제라는 선수를 안 덕분에 축구 좀 아는 여자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메시, 호나우드 이런 스타 플레이어 말고, 클로제를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했다.
그는 보석같은 존재였다. 스스로도 빛나지만 내가 그 보석을 알아차렸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기뻤다. 그래서였는지, 클로제라는 선수를 아는 사람들끼리는 국적, 나이, 성별, 종교를 떠나 이민자들의 슬픔, 인내와 꿈을 모두 품은 영웅의 서사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나는 클로제에게 감사를 표한다.
동영상
2014, 7.9, “클로제, 메시도 깨기 힘든 전설이 되다 - 오마이스타“
2014.7.9, "[브라질 월드컵] 독일 클로제, '목수'서 '축구 황제'로 오르다 | 아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