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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제주는 지천에 억새밭

- 11월, 가장 제주 다운 계절

by 걷는사람

11월의 억새밭


제주공항에서 중산간도로로 운전하면서 보이는 나지막한 오름이 크림색으로 빛난다. 햇빛에 비쳐 반짝거리기도 하고 눈부시기도 하여 눈을 돌리면 반대쪽에서는 더 선명하게 크림빛이 온 산야를 물들인다.


바야흐로. 억새의 계절이 돌아왔다. 어디에서도 스스로 독자적인 식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억새가 온 천하에 주인으로 돌아온다.

11월에는 어느 날 어디를 가더라도
모든것이 제주 스럽다.


산굼부리


그중에서도 11월 제주의 억새를 가장 원시적으로 느낄수 있는곳은 단연 산굼부리일것이다.


사실 제주에서 초등학생때 수학여행을 가면 유일하게 제주에서 돈받고 입장하는 곳이 산굼부리였다. 지천에 널린게 돌이고 억새요, 제주 자연이 다 우리 땅인데 돈을 내야 볼수있다는건 어린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제주도 사람 중에는 산굼부리를 안가본 사람들이 꽤 있다. 나도 초등학생 때의 그 배신감을 안고 다시는 안갔더랬다.


이후 어른이 되어 서울에서 살면서 간간이 제주에 가게되면 안가본 곳을 가게 되거나 집에 있어야했다. 그러다 2023년 11월 문득 억새를 한가득 보고싶은 마음에 내돈내산 기분으로 갔다. 그동안 산굼부리는 더 확장되었고 나름 포토 포인트도 생겼다. 촌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돈 낸김에 다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진 찍었더니 대만족이다.


제주 사람 같은 억새

제주의 억새는 꼭 제주 사람 같다.


제주의 억새는 옆 사람이 주눅들 정도로 높지도 않고, 드새지도 않다. 누가 해질녘 참빗으로 빗어놓은 것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풀잎을 자랑한다.


제주땅은 화산석 현무암으로 인해 검붉고, 구멍이 숭숭 난 토양 때문에 물이 말라 벼농사를 할 수가 없다. 밭만 많지, 물이 있는 논이란 것은 거의 본적이 없다. 그래서 온 나라가 9월 가을에 하는 추석이 뭘 기념하는지도 사실 절감하기 어려웠다. 제주에선 당근, 배추, 무우, 감자 같은 밭농사나 귤 과수원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11월이나 겨울에 수확을 한다.


가을날 익은 곡식들로 물든 샛노란 들판도 볼수 없었던 제주에, 오직 억새만이 이렇게 고운 색을 선물한다. 아무 곡식도 먹을 것도 내어줄 순 없지만 석양이 내려올 때 크림색으로 빛나는 춤을 춘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을 벗삼아 억새가 춤을 춘다.


가는길 팁

산숨부리는 제주의 동쪽에 위치해있고 남북으로도 중간, 지대로 보아도 한라산 중턱 정도에 있다. 제주 공항에서 차로 40~5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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