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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Jul 15. 2024

신개념의 내 ‘가족’을 소개합니다

  자식인양 마음에 자리매김한 단체가 여럿 있습니다. 선한 동력의 사회활동에 감화돼 몰아준 관심의 결과였죠. 10년 또는 길게는 20여 년 전부터 독립 시민단체와 새로운 저널 언론매체 등등에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세계로의 펼침 막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던 예전의 모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균형을 잡아가는 한 시민으로서의 나를 바라봅니다. 단순 사고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인식의 관점을 구축할 기회를 얻었음은 그들이 내게 내린 축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정을 꾸리지 않아 피붙이를 잉태한 적 없으나, 그들을 서슴없이 선택한 결과로 나 또한 남부럽지 않는 신개념의 ‘가족’을 이뤘습니다.      


  독보적 존재의 시민단체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1박 2일간 회원워크샵의 자리는 처음이었는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그 단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회원끼리 모여 숙의 토론하는 장이었죠. 그에 앞서 단체에서 보내준 자료의 분량은 어마어마했어요. 미리 읽고 오라는 주문을 덧붙였죠. 마음에 부담을 안겼지만 개최 장소가 워낙 아름다운 파주 출판도시란 점에 마음이 팔렸습니다. 여행길에 나설 때처럼 들뜬 마음이 그 부담을 가볍게 내치는 게 아닌가요. 아니나 다를까 출판도시 입구부터 펼쳐지는 푸름의 향연 그리고 독특한 건축양식과 어울린 외부 설치미술. 눈의 감각부터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요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설정한 그 이면에 빡센 일정이 깔려 있을 줄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밤 10시까지 토론하고 나서야 취침을 할 수 있었죠. 고단했지만 촘촘히 짜인 일정이 되레 그 단체에 대한 강한 신뢰로 자라났습니다. 잘 먹여주고 편안한 잠자리 제공과 더불어 회원 간 의견수렴을 통해 새로운 전략을 이끌어 내려는 그들의 노력이 참 가상하더라고요. 잘 키운 자식을 바라보게 한 흐뭇한 체험이었습니다.


  각각 분임토의 자리가 배정되었고, 테이블마다 12명의 회원들이 마주보고 앉았는데요. 구성이 흥미롭더라고요. 20대에서 70대까지 고른 세대 간 통합을 보는 듯 했으니까요. 그런 그들과 꼬박 24시간의 일정을 소화해 냈습니다. 그 날의 참여자 모두 그 단체에 대한 애정이 깊은 정예부대라 느껴지더군요. 처음 대하는 사이였음에도 쉬는 간만에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모습에서 허물없는 친지간처럼 느껴졌지요.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같은 동행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이렇게 안정되고 편안한 자리가 또 있을까 싶더라고요. 나는 깜박하고 소매 긴 옷을 준비해가지 못했는데요. 중구장창 쏟아지는 에어컨 바람에 무방비로 내몰려 힘들어하는 내게 어느 중년의 남성 회원이 자신의 겉옷을 흔쾌히 내어 주는 게 아닌가요. 하등 거절할 이유가 없는 나로선 그의 친절을 덥석 받을 수밖에요.

  위 단체로 말할 것 같으면 두 번째 자식처럼 마음에 와 닿은 곳입니다. 물론 큰 녀석 같은 존재가 따로 있지만 왠지 둘째에게 밀리는 감을 떨칠 수 없더군요. 큰 놈 보다 작은 놈이 잘 풀리는 여느 집안처럼 말입니다. 내게도 엄지와 검지 그리고 약지 등으로 손꼽게 하는 후원단체들 인거죠. 때론 의외의 실망을 안기는 일도 일어났지만 정부지원 없이 후원만으로 독자적으로 꾸려가는 운영단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일리 있는 어떤 비리에 노출되었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비난할 일이 아닌 것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꾸준한 활동으로 20년 30년의 명맥을 유지한다는 점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닌가요.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가 그 곳에도 미치지 않을 수 없음을 떨쳐낼 수 없더군요. 가족 내 일어나는 문제도 이 같은 선상의 흐름에서 비일비재 발생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세대의 대다수가 ‘장학금 기부’에 꽂혀있을 때 나는 일찌감치 시민단체의 기부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원래 타고난 나의 시대적 감각이 동원됐습니다만. 더해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라는 고 노무현대통령의 말씀이 전환된 사고로서 더 굳힌 계기가 되었습니다. 단체가 내게 안길 성과물을 의식해 시작된 일이 아니지만 긍정적인  결과물로써 잘된 선택이 되었죠. 하지만 진실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마음 한 구석에 눌리는 무게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른 생각을 내는 소수자로 살아가려는 묵상도 함께 받아들여야 하니 말입니다. 변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이룰 때는 반드시 온다는 희망 하나로 그들을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비록 내 세대에서 마주칠 변화의 시간을 기대할 수 없겠지만. 

  한편 후원단체에서 주선한 행사는 보고 들을 유익한 내용이 많습니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참여할 기회가 활짝 열려있지요. 다채로운 행사에 초대돼 다양한 세대와 어울릴 세계로의 진입은 이 늙은이에게 얼마나 설레는 일입니까. 이렇게 시대변화의 흐름을 읽고 결정내릴 수 있었던 나의 판단에 이로써 안도합니다. 우린 살면서 숱한 고비를 겪기 마련입니다. 그때마다 옳은 판단인지 아닌지 헷갈림과 마주할 순간이 많죠. 더욱이 홀로 자신을 책임지고 살아갈 사람들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문제해결의 판단능력을 배양시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판단의 결과로  한 사람의 삶의 질이 송두리째 바뀔 테니까요. 특히 귀가 얇아지는 노년기에는 더욱 유념해야 할 부분이 될 겁니다.  


  홀로인 내게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을 취한 배경은 어려울 때마다 적재적소에서 바른 판단의 힘이 받쳐준 결과로 이해합니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죽는 날까지 판단의 날이 녹슬지 않도록 경각심을 잃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가족’의 개념도 굳이 혈연 중심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십시오, 가족의 해체는 어떤 의미로든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습니다. ‘혈육’은 거부할 수 없는 인과성과 얽힌 복잡한 관계성으로 최악의 경우 나를 옥죌 수 있습니다. 반면 후원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는 일은 가족개념의 연장선과 잇게 하는 혁신적 현상으로서 부각된 지 오랩니다. 향후 더 발전된 시각의 세계로 부상할 지도 모릅니다. 홀로인 사람에게 오로지 내 판단의 선택으로 나만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노년의 나에게 이처럼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점은 분명 든든하게 작용될 것입니다. 신개념인 내 가족형성의 한 사례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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