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찬 광장, 사라진 여유

by 시온

2025년, 우리가 아는 그 10월의 멋진 날 오후였다. 가을 햇살이 좋아서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사진도 찍고, 천천히 걸어보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광장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남쪽 끝의 길 건너편에서는 정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수백 명이 모여 스피커를 통해 큰 소리로 본인들의 주장을 뱉어내고 있었고, 맞은편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에서는 길 건너편의 사람들과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소규모 집회가 진행 중이었다. 광장 한가운데는 임시 무대가 세워져 어떤 기념식과 공연이 한창이었고, 세종문화회관 북쪽은 바리케이드가 쳐진 꽤 넓은 공사 구역이 차지하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의 북쪽 끝에는 서울 야외 도서관 광화문 책 마당이 펼쳐져 있었는데, 쿠션 의자에 앉아 책 읽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와 음악, 함성 때문에 집중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사람들은 서로를 피해 좁은 통로를 비집고 다녔다. 광장은 분명 있는데, 여유는 없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광화문광장은 누구의 광장인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는 시민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던 곳이었다. 대화와 토론이 있었지만, 그건 상대를 이기기 위한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오늘의 광화문은 어떤가? '나의 주장'과 '우리의 행사'로 가득하다. '모두의 공간'이 '각자의 무대'로 쪼개져 있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권리다. 하지만 자유가 소리의 크기 경쟁으로만 나타날 때, 광장은 대화의 장소가 되지 못한다. 서로의 말을 듣기보다 더 크게 외치려는 욕망만 남는다. 그 순간 광장은 소통의 상징이 아니라 소음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공유의 공간'이란 단순히 물리적으로 열려 있다는 뜻이 아니다. 함께 쓰기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조금씩 물러서고, 조금씩 비워야 비로소 함께할 수 있다. 광장은 그 '양보된 여백' 위에서만 제대로 기능한다.

지금의 광화문은 너무 꽉 차 있다. 정치적 주장, 각종 행사, 설치물과 구조물 등등. 공간은 열려 있되, 마음이 쉴 틈은 닫혀 있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광장을 둘러보았다. 아이 손을 잡고 지나가는 부모, 광화문의 풍경을 카메라로 담는 외국인, 천천히 걷는 노인. 광장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품고 있었지만, 그들이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조용한 틈은 사라지고 없다.


언젠가 광화문이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보다 모두의 여유가 울리는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날이 오면 나는 다시 그 광장을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햇살과 바람이 어깨를 스치는 그날, 광화문이 '누구의 광장'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임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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