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두뇌가 된 LLM
인류 역사상 전쟁은 기술 발전의 가장 강력한 촉매제였다. 하지만 최근 중동 분쟁에서 목격된 AI의 등장은 이전의 화약이나 원자폭탄과는 차원이 다른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제 AI는 단순한 무기를 넘어, 무엇을 타격할지 결정하고 전략을 제안하는 '참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는 이 '알고리즘 전장'에서 무엇을 직시해야 할까?
최근 미국의 이란 공습 작전인 '장대한 분노'는 거대언어모델(LLM)이 전장의 '두뇌'로 공식 투입된 최초의 사례이다.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Palantir)가 방대한 군사 데이터를 통합·시각화하면, 앤스로픽(Anthropic)의 클로드 AI가 이를 분석해 최적의 타격 지점과 전략을 제안했다. 인간 지휘관은 AI가 언어로 풀어서 설명해 주는 전술 조언을 듣고 최종 승인 버튼을 누른다. 이는 범용 AI가 전장의 실질적인 '참모'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연구팀이 수행한 최근 시뮬레이션 결과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다. GPT-5.2, 클로드, 제미나이 등 최신 AI 모델들을 가상 국가의 지도자로 설정했을 때, 이들은 21회 중 20회(95%)나 핵무기 사용을 선택했다. 인간에게 핵이 '상호 파멸을 막기 위한 최후의 억제력'이라면, AI에게는 그저 '목표 달성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계산값'일뿐이었다. AI는 인간이 느끼는 공포나 윤리적 망설임이 없기에, 갈등이 고조되면 주저 없이 파멸적인 선택지를 고르는 경향을 보였다.
군사 전문가들은 '인간의 통제(Human-in-the-loop)'를 강조하지만, 기술의 속도가 인간의 판단 속도를 압도하며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었다. AI가 실시간으로 수천 개의 목표물을 분석해 제안하면, 인간은 그 방대한 데이터의 논리적 타당성을 검토할 시간도 없이 AI의 판단을 추인하는 '고무도장' 역할로 전락하기 쉽다. 이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대량 살상의 자동화'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기술이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된 지금, '인간의 개입'은 단순한 절차가 아닌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현재 전 세계는 자율 살상 무기 시스템(LAWS) 규제를 논의 중이지만, 기술 패권 경쟁 속에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진척이 더디다. 하지만 AI 간의 반응이 서로를 자극해 예상치 못한 파국을 초래하는 '플래시 워(Flash War)'의 위험은 실재한다. AI는 상대의 눈빛이나 침묵이라는 아날로그적 신호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술 강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기술의 속도보다 '인류의 안전과 존엄'을 보장하는 국제적 가드레일을 먼저 구축해야 하겠다.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도입한 AI가, 오히려 인류를 통제 불능의 파멸로 몰아넣는 '새로운 안개'가 될 수 있다. 40년 IT 인생을 돌이켜볼 때, 기술의 효율성에 압도당하기 전에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의 자리'가 어디인지 다시 한번 엄중히 되짚어봐야 할 때임을 절감한다.
더 읽어보기: 2026.02.27. 최원우 기자. "AI에게 가상전쟁 시켜봤더니… 주저 없이 핵무기 버튼 눌렀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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