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처세술의 대가, 삼국지 가후의 침묵을 뚫다

생존율 0%의 도박판에서 77년을 살아남은 차가운 이성, 그 모든 기록

by 연구소장

프롤로그: 잡 호퍼의 이력서

현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의 책상 위에 가후의 이력서가 놓인다면, 그는 '잡 호퍼'로 분류되어 서류 광탈 1순위가 될지도 모른다. 동탁, 이각·곽사, 단외, 장수, 그리고 조조까지. 무려 다섯 번이나 주군을 바꾼 그의 이력은 '충성심 부족'의 전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학적 관점에서 가후의 이직은 변절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시장 가치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구매자를 찾아 이동한 고도의 커리어 피보팅 전략이었다. 조조의 아들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면서도, 훗날 조조가 가장 신뢰하는 참모가 되었던 기적 같은 반전의 주인공. 나는 굳게 닫힌 그의 대문을 두드렸다.



가후의 집은 무거웠다. 태위라는 직책에 걸맞지 않게 집안은 고요했고, 방문객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된 듯 문지방에는 뽀얀 먼지가 앉아 있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서재는 서늘했다. 한여름이었지만 햇빛 한 줄기조차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듯했다. 낡은 죽간 냄새와 쌉싸름한 찻잎 향기만이 감도는 그곳에서, 그는 마치 세상과 단절된 고승처럼 앉아 있었다. 앙상하게 마른 몸이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Q. 뵙기 어렵습니다. 위나라 최고의 개국 공신이신데, 왜 이토록 철저하게 대문 밖 출입을 끊고 계십니까?


가후는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의 손등에는 푸른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지만, 찻잔을 내려놓는 동작에는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차의 수면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A. "나는 본래 조조군의 원류가 아니오. 밖에서 들어온 이방인이지. 게다가 나는 책략으로 수많은 사람을 해쳤소. 공이 높을수록, 지위가 오를수록 시기와 질투는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법이오. 나의 생존 전략은 단순하오.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것. 지금은 나의 그림자를 지울 때요. 문을 닫아걸고 권문세족과 혼인을 맺지 않는 것만이, 나와 내 가문을 지키는 마지막 방화벽이오."


그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마치 감정이라는 수분을 모두 증발시킨 듯했다.


Q.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겠습니다. 젊은 시절, 저족에게 붙잡혔을 때 태위 단경의 외손자라고 거짓말을 해서 풀려났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때부터 임기응변에 능하셨던 겁니까?


가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사라졌다.

그는 찻잔의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과거를 회상했다.


A. "임기응변이라기보다는 확률 계산이었소. 당시 단경은 서쪽 변방에서 오랑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지. 저족은 힘은 있지만 정보가 부족한 집단이오. 내가 단경의 외손자라고 주장하면, 그들은 나를 죽였을 때 입을 보복과 나를 살려주었을 때 얻을 보상을 저울질하게 되오. 나는 그들의 공포심과 탐욕을 자극한 것이오. 실제로 나는 단경과 아무런 혈연이 없었지만, 그 거짓말 하나로 나는 살고 동행하던 수십 명은 죽었소. 그것이 난세의 첫 번째 교훈이었소. 힘이 없으면 혀라도 날카로워야 한다는 것 말이오."


Q. 동탁 사후, 이각과 곽사에게 장안을 공격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결정으로 한나라 황실은 쑥대밭이 되었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왜 그런 조언을 했습니까?


나의 질문이 날카로웠는지, 가후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침묵했다.


A. "도덕적인 비난은 달게 받겠소. 하지만 그때의 상황을 복기해 봅시다. 동탁이 죽고 나서 왕윤은 양주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 했소. 군대가 해산하고 각자 도망치면, 일개 정장에게도 붙잡혀 개죽음을 당할 판이었소.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충성이 아니라 생존이었소. 나는 그들에게 말했소. 군대를 모아 서쪽으로 가서 장안을 치자. 성공하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고, 실패하면 그때 도망쳐도 늦지 않다. 이것은 잃을 것 없는 자들이 걸 수 있는 최상의 도박이었소."


나는 가방에서 낡은 기록 하나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당시 장안의 참상을 기록한 사료였다.


Q. 여기 기록을 보십시오. '거리에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굶주린 백성이 서로를 잡아먹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공 한 사람의 생존을 위해 제국의 시스템을 붕괴시킨 것이 과연 '책략'입니까?


가후는 기록을 훑어보더니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A. "그 참상의 책임이 온전히 내게 있다고는 생각지 않소. 동탁이 죽지 않았어도, 왕윤이 무리하게 숙청하지 않았어도, 그 지옥도는 펼쳐지지 않았을 것이오. 나는 다만 죽음을 앞둔 자들에게 살 길을 제시했을 뿐이오. 그 결과가 예상보다 컸던 것은 인정하오. 하지만 나는 제후에 봉해지려는 것도 거절했소. 그것은 목숨을 구하기 위한 방편이었지, 공명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오."


Q. 이각과 곽사 밑을 떠나 단외에게 갔다가, 다시 장수에게로 이직했습니다. 단외는 공을 극진히 대우했는데 왜 떠났습니까?


A. "대우가 좋다고 해서 좋은 직장은 아니오. 단외는 겉으로는 나를 우대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자신의 군권을 빼앗을까 두려워했소. 의심 많은 CEO 밑에 있는 유능한 임원은 반드시 토사구팽당하게 되어 있소. 반면 장수는 남양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그를 보좌할 책사가 없었소. 공급은 넘치는데 수요가 없는 곳과, 수요는 절실한데 공급이 없는 곳. 어디로 가야 나의 시장 가치가 극대화되겠소?"


[증언] 전 직장 상사 단외의 고백
"가후가 떠난다고 했을 때, 솔직히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었소. 그자는 너무 똑똑했지. 내 부하들이 나보다 그를 더 따르는 것 같아 밤잠을 설쳤소. 그가 내게 와서 '제가 떠나면 공은 밖으로 강력한 원군을 얻게 되고, 안으로는 근심을 덜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더군. 소름이 돋았소. 내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가 떠날 때 가족들을 극진히 보살펴주었소. 그가 적으로 돌아서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으니까. 그는 내 공포심을 정확히 거래의 수단으로 이용했소."


Q. 장수 진영에 계실 때, 조조와 원소가 관도대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원소는 하북을 장악한 거대 기업이었고, 조조는 이제 막 성장하는 도전자였습니다. 장수는 원소에게 가려 했지만, 공은 조조를 택했습니다. 더구나 장수와 조조는 원수지간 아니었습니까?


가후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눈빛이 처음으로 형형하게 빛났다.

A. "바로 그 점이 핵심이오. 당시 원소에게서 사자가 왔을 때, 나는 그 앞에서 원소의 편지를 찢어버리고 사자를 꾸짖어 보냈소. 장수는 기겁을 했지. 나는 장수에게 조조에게 투항해야 할 세 가지 이유를 들었소. 첫째, 조조는 천자를 끼고 있어 명분이 있소. 둘째, 원소는 이미 세력이 강해 우리 같은 소규모 군벌이 가봤자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오. 하지만 조조는 세력이 약하니 우리를 얻으면 반드시 기뻐하고 중용할 것이오. 이것이 바로 한계효용의 법칙이오. 셋째, 조조는 천하를 도모하는 패왕의 그릇이오. 큰 뜻을 품은 자는 사사로운 원한에 얽매이지 않고, 이익을 위해 덕을 베푸는 법이오."


[증언] 당시 의뢰인 장수의 회고
"가후가 원소의 사자를 쫓아냈을 때,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소. 조조는 내게 원수요. 내가 그의 아들과 조카를 죽였는데 나를 살려두겠소? 가후에게 미쳤냐고 따졌지. 그런데 가후는 태연하게 말하더군. '원소는 형제도 용납하지 못하는 좁은 속을 가졌지만, 조조는 천하를 삼키려는 자라 과거의 원한 따위는 덮을 것입니다.' 나는 덜덜 떨면서 조조에게 갔소. 그런데 놀랍게도 조조는 내 손을 잡고 잔치를 베풀어주었소. 심지어 내 딸과 자신의 아들을 결혼시켜 사돈을 맺었지. 가후는 조조라는 인간의 심리를 바닥까지 꿰뚫고 있었던 거요. 그는 도박사가 아니라 확신범이었소."


나는 가장 껄끄러운 질문을 던질 타이밍이라고 판단했다. 완성 전투의 기록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Q. 조조에게 장수는 아들 조앙과 조카, 그리고 아끼는 장수 전위를 죽인 철천지원수입니다. 완성 전투의 그 밤, 공의 계책으로 조조는 죽을 뻔했습니다. 여기 기록에는 조조가 흘린 눈물이 강을 이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조조가 받아줄 것이라 확신했습니까?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가후는 찻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앙상한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는 시선을 허공에 둔 채, 침묵보다 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A. "확신했소... 그리고 그것이 나의 포트폴리오였소. 조조는 당대 최고의 지략가요. 그런 그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사람이 누구냐? 바로 나 가후요. 조조 입장에서 나는 두려운 적이지만, 내 편으로 만들면 천하를 얻는 데 가장 날카로운 창이 될 수 있음을 그도 알았을 것이오. 실제로 우리가 투항했을 때, 조조는 내 손을 잡고 말했소. '나의 신의가 천하에 중히 여겨지게 만든 것은 바로 당신이오.' 그는 과거의 손실을 매몰 비용으로 처리하고, 미래의 이익을 위해 나라는 자산을 매수한 것이오."


Q. 솔직히 말해봅시다. 조조의 맏아들을 죽인 그날 밤, 당신은 정말로 죄책감을 단 1%도 느끼지 않았습니까?


가후는 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마치 과거의 피비린내를 씻어내려는 듯했다.


A. "전쟁이었소. 나는 장수의 참모로서 최선을 다해 조조를 이겼을 뿐이오. 죄책감이라... 그것을 느꼈다면 나는 진작에 죽었을 것이오. 난세에서 감정은 사치요. 다만..."


그는 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A. "...밤마다 꿈을 꾸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겠소."


[증언] 위무제 조조의 속마음
"솔직히 가후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 끓어오르는 살의를 참기 힘들었소. 내 장남 조앙이 죽은 그날 밤의 비명 소리가 귓가에 쟁쟁했지. 하지만 나는 CEO요. 감정보다 장부가 우선이지. 원소와 결전을 앞두고 가후 같은 인재를 적에게 넘겨줄 순 없었소. 그가 내 목을 겨눴던 칼이라면, 이제 그 칼자루를 내가 쥐면 그만이오. 가후는 내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까지 끝내고 온 놈이었소. 얄밉지만 탐나는 물건이었지. 결국 그 선택이 관도대전의 승리를 가져오지 않았소? 남는 장사였지."


Q. 조조가 공에게 후계자를 누구로 할지 물었을 때, 공은 즉답을 피하고 한참 뜸을 들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가후의 표정이 다시 평온한 가면으로 돌아왔다. 그는 찻잔 뚜껑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A. "그것은 내 목숨이 걸린 질문이었기 때문이오. 나는 본래 굴러온 돌이고, 조조의 가신 그룹과 섞이지 못한 이방인이었소. 내가 섣불리 누구 편을 들었다가는 나중에 보복을 당하거나 파벌 싸움에 휘말릴 수 있었소. 조조가 '왜 대답이 없느냐'고 재차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답했소. '원소와 유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Q. 그 짧은 한마디가 어떤 의미였습니까?


A. "원소와 유표는 장자 승계의 원칙을 어기고 총애하는 아들을 세우려다 나라를 망하게 한 대표적인 케이스요. 나는 조비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지만, 조조의 머릿속에 '장자 승계가 아니면 파멸이다'라는 프레임을 강력하게 심어준 것이오. 이것이 바로 넛지요. 직설적으로 말하면 반감을 사지만, 상대가 스스로 깨닫게 만들면 그것은 그의 확신이 되오."


[증언] 수혜자 조비(위 문제)의 고백
"가후 태위의 그 한마디가 나를 황제로 만들었소. 당시 아버지의 마음은 재주가 뛰어난 동생 조식에게 기울어 있었지. 가후가 만약 '조비 공자가 적임자입니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아버지는 오히려 그가 파벌을 만들려 한다고 의심했을 거요. 하지만 그는 원소와 유표의 실패 사례를 들어 아버지의 가장 큰 공포인 '조직의 붕괴'를 자극했소. 그건 반박할 수 없는 논리였지. 나는 가후에게 빚을 졌소. 그래서 황제가 된 뒤 그를 태위로 삼고 그가 죽을 때까지 공경했소. 그는 입을 열어야 할 때와 다물어야 할 때를 아는 무서운 사람이었소."


Q. 공은 동탁, 이각, 단외, 장수, 조조 등 다섯 주인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패턴이 있습니다. 공이 떠나거나 조언한 주인들은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반면 공은 그때마다 더 강한 세력으로 갈아타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이것은 '현명한 이직'입니까, 아니면 주인이 망할 때를 기다려 자신의 몸값을 챙기는 '기생 전략'입니까?


가후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A. "기생이라... 재미있는 표현이오. 하지만 기생충은 숙주를 죽이면 자신도 죽소. 나는 그렇지 않았소. 이각과 곽사는 내 말을 듣지 않아 망했고, 장수는 내 말을 들어 제후로 편안히 죽었으며, 조조는 내 말을 들어 천하를 얻었소. 나를 제대로 쓴 자는 흥했고, 그렇지 못한 자는 망한 것이오. 그것이 기생인가, 공생인가?"


Q.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가후라는 인간의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나'보다 '대의'가 먼저였던 적이 있었습니까?


가후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A. "세상 사람들은 우직한 충신을 칭송하오. 하지만 어리석은 충성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과 백성까지 파멸로 이끄오. 나에게 충성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오. 그것은 계약이오. 나의 재능을 알아주고, 내 말을 들어주며,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주군에게 나는 최상의 솔루션을 제공했소. 나는 주군을 위해 일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위해 일했소. 내가 바로 나 자신의 주인이었기 때문이오."


에필로그: 가후의 유산

가후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낙양의 해는 저물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겼지만, 자식들의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역사는 가후를 '독사'라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77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숙후(肅侯).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죽은 뒤 그의 후손들이 누린 삶이다.


가후가 사망하자 장남 가목은 아버지의 작위를 그대로 승계했다. 그는 조비 시절 이미 부마도위라는 근위 관직을 역임했고, 이후 군수를 지내며 안정적인 관료 생활을 했다. 차남 가방 역시 별도의 열후로 봉해졌다. 이는 가후가 생전에 후계 구도 문제에서 보여준 현명한 처신에 대한 조비의 확실한 보상이었다.


가후의 가문이 삼국 통일 이후, 그리고 사마씨가 정권을 잡는 피비린내 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가후의 유훈 때문이었다. 그는 생전에 자식들의 혼처를 구할 때 권문세족과 맺지 않았다. 만약 그가 조씨 황족이나 하후씨와 혼인 동맹을 맺었다면, 훗날 고평릉 사변 때 멸문지화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식들을 '권력의 태풍'에서 의도적으로 격리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장 안전한 생존을 물려주었다. 가후는 자신의 지략이라는 맹독성 자산을 철저히 업무 시간에만 사용하고, 퇴근 후에는 그 독이 가족에게 튀지 않도록 완벽한 방화벽을 친 것이다.


난세에 이름이 없다는 것은 곧 무사하다는 뜻이다. 가후의 후손들은 역사책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가후가 설계한 최후의 걸작이었다.


가후는 이력서 한 장 쓰지 않았지만, 자신의 행동과 판단력 그 자체를 살아있는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난세의 취업 시장을 평정했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생존이 화두가 된 21세기, 프로 이직러 가후의 차가운 계산기는 1,8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서늘한 교훈을 던진다.


"당신은 조직을 위해 맹목적으로 희생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가치를 냉정하게 계산하고 움직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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