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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연극 후기(feat.국립극장 달오름

샛별BOOK연구소

by 샛별

고도를 기다리며

장르: 연극

150분

기간: 2023.12.19-2024.2.18.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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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월 5일 파리 바빌론 극장에서 초연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가 쓴 희곡이다. 그의 작품이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이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인 건 사무엘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고 난 1969년 12월이었다고 한다. 2023년 12월에 선보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블라디미르에 박근형 배우, 에스트라공에 신구 배우가 맡았다. 포조는 김학철 배우, 럭키는 박정자 배우가 각각 맡았다. 전석 매진이라 표 구하기가 어렵다. 책은 난해한데, 연극도 어려운데 사람들로 꽉꽉 차는 공연이라니.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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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단출하다. 나무 한 그루 덩그러니 서 있다. 소품도 거의 없다. 돌 하나 놓여 있다. 조명도 단출하고, 음악도 없다. 무조건 연기로 승부해야 하는 연극이다. 신구 배우와 박근형 배우는 최선을 다해 호흡을 맞췄다. 에스트라공이 신발을 벗으며 시작되는 연극이다. 블라디미르는 시종일관 에스트라공 옆에 붙어있다. 안 그래도 나이 많은 배우들을 더 늙어 보이게 분장했고, 낡은 의상을 입혔다. 가난한 노숙자처럼 이들은 초췌하고 더욱 비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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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조의 성량은 우렁찼고, 럭키의 관절은 삐거덕거렸다. 비인간적인 장면에 압도되는 무대. 박정자 배우께서 럭키라니... 럭키 목에는 밧줄이 매여있다. 밧줄을 당기고 풀어주며 럭키에게 명령하는 포조. 포조의 말을 잘 듣는 럭키. 럭키는 큰 트렁크와 바구니를 들고 있다. 압권은 역시 럭키의 대사. 8분 정도 이어지는 대사를 박정자 배우는 특유의 발성과 몸짓으로 읊었다. 럭키가 하는 말은 무의식의 세계. 혼돈의 언어였다. 언어조차 부조리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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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내용은 간단하다. 고고는 신발을 신고, 디디는 모자를 쓰고 서로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다 포조와 럭키가 오면 구경하고 또 지낸다. 하루가 너무 지루해 죽음을 생각할 때 꼭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내일 고도가 온다고 말하고 나간다. 다시 2막. 1막과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연극은 2막에서 끝나지만 만약 3막이 있다면 또 1막과 같을 것이다. 고고와 디디는 인생이 지루하고 또 지루하다. 고고와 디디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진 게 너무 없다. 가진 게 없는 건 인간의 한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일을 기다리는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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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에스트라공)와 디디(블라디미르). 둘은 50년을 이 짓을 하고 살았다. 50년 전에 죽으려는 고고를 디디가 구해주고 인연이 된 거 같다. 고고는 늘 자살을 생각한다. 그만 삶을 끝내려 하지만 디디는 고도가 온다니 곧 기다리라고 말한다. 디디가 말하는 고도는 희망, 꿈, 내일, 이상, 신, 구원 등등일 수 있지만 나는 고도=죽음으로 읽혔다. 이들이 확실한 건 고도가 온다는 사실 만이다. 다른 것들은 잘 모른다고 대답하지만 고도가 온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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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자명한 건 죽음뿐이다. 인간은 꼭 죽는다. 그 외에는 모두 불확실하다. 알 수 없다. 모른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내게 죽음을 기다리며로 읽혔던...연극을 그렇게 보고 온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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