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파벨만스>(The Fabelmans, 2023)
드라마/ 미국/ 151분/ 2023.3.2개봉/ 12세관람가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미셸 윌리엄스, 폴 다노, 세스 로건, 가브리엘 라벨.보러가기: 시리즈온/ TVING / WATCHA / Wavve
스티븐 스필버그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 <파벨만스>은 주인공 새미 파벨만(스티븐 스필버그 1946년생)이 엄마 아빠와 첫 영화를 보러 가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1952년, 새미는 여섯 살 때 엄마 미치(미치 파벨만/ 미셸 윌리엄스)와 아빠 버트(버트 파벨만/폴 다도)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영화관에 가는데 그 앞에서 아버지는 새미에게 “불이 꺼질건 데 음악이 크게 나오니까 놀라지 마.”라고 설명하자 새미는 어두컴컴한 극장이 무섭단다. 이때 엄마는 영화는 “꿈같은 거지”라며 다독인다. 새미가 본 최초의 영화는 세실 B 드밀의 <지상 최대의 쇼>(1952년)였다. 첫 장면에서 유대인 가족의 양육태도가 엿보였고, 엄마 아빠의 성향이 얼마나 다른지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파벨만은 첫 영화를 본 이 순간을 잊지 못하고....
어린 날의 어떤 순간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다. 어린 소년은 눈앞에 펼쳐진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서 열차와 차량이 추돌하는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열차가 탈선하는 장면이 침대에 누워도, 가만히 있어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새미는 기차를 선물받고 싶다 말하고, 선물 받은 기차 장난감을 차와 자꾸 충돌시키자 엄마는 8mm 카메라로 찍어보란다.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담아내고 싶은 욕망. 이 장면은 거장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를 만든 최초의 순간이 된다. 꿈을 만지는 순간. 다가서는 순간.
▶영화 대사
아빠: (아이를 자기편으로 돌려세우며) 아빠가 설명해 줄까? 큰 조명이 들어있는 영사기란 기계가 있는데, 그게 광대와 곡예사의 사진을 영사하는 거야. 영사는 내보낸단 뜻이야. 거대한 손전등에서 쏘는 빛 같은 건데 사진들이 빛을 아주 빠르게 통과해서 초당 24장이나 지나가. 사진 한 장은 머릿속에서 1/15초씩 머무는데 그걸 잔상 효과라고 불러. 뇌에서 지워지는 것보다 사진이 빨리 지나가서 멈춰 있는 사진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그래서 '활동사진'이라 부르는 거야.
▶영화 대사
(엄마가 지그시 아이의 어깨를 만져 자기 쪽으로 보게 하고)
엄마: 영화는 꿈이란다. 잊히지 않는 꿈. 보고 나면 너도 모르게 활짝 웃고 있을걸.
▶영화 대사
엄마: 그래서 충돌하는 걸 봐야 했던 거구나. 자기만의 세상을 통제해 보려는 거야. 세미. 아빠 카메라로 찍어놓자. 충돌은 한 번만이야. 현상에서 마음껏 보자. 안 무서워질 때까지. 이러면 기차도 안 망가질 거야. 한 가지만 더. 아빠한텐 말하지 말자. 너와 나만의 비밀 영화인 거야. 알았지?
새미: 응.
새미: 잔뜩 충돌시켰는데 기차는 안 망가졌어요.
엄마: 세상에. '지상 최대의 쇼' 보는 줄 알았네.
새미는 파벨만 가족을 두고 “과학자와 예술가의 전쟁터”라고 표현했다. GE 엔지니어인 남편 버트와 피아니스트인 아내의 성향은 확연히 다르다. 새미는 어린 동생들에게 유령 분장을 시킨 후 영상을 찍고, 학교 친구들을 배우로 기용한 서부극을 만들거나 격발을 표현하기 위해 옷핀으로 필름에 구멍을 뚫거나, 널빤지를 이용해 흙이 튀는 효과를 내는 등 기발한 연출법을 고안한다. 필름을 일일이 돌려보고 가위로 잘라 이어 붙이며 편집도 한다. 그러나 아빠는 이런 아들의 모습이 탐탁지 않다. 돈도 너무 많이 쓴다고 생각하며 “영화에 쏟는 시간의 반만 수학에 쏟으면...”이라고 말하자 새미는 수학이 싫다고 말하고 자신의 영화 작업은 취미가 아니라고 대답한다. 점점 영화에 빠지는 새미. 이런 새미에게 친척 보르스 할아버지가 등장해 예술론에 대해 설파한다.
▶영화 대사
아빠: 말이 되니? 새미, 취미에 100달러를 써?
새미: 취미 아니야.
아빠: 영화에 쏟는 시간의 반만 수학에 쏟으면...
새미: 수학 싫어. 왜? 쓸데도 없잖아.
아빠: 뭔가 만들 땐 꼭 쓰이는 거야. 아빠가 어릴 땐 온갖 것들의 원리가 다 궁금했어. 차, 백미러, 방향 지시등
새미: 근데 난 영화 만들고 싶어.
아빠: 실재하는 것들 얘기야. 가상의 것들 말고, 실제로 쓸모가 있는 것들. 운전면허증처럼.
▶영화 대사
보리스 할아버지: 네 엄마의 가슴속에도 우리와 같은 게 있었어. 예술. 나나 너처럼. 우린 약쟁이야. 예술은 우리의 마약이고, 가족은 사랑하지만 예술은 우릴 미치게 하지. 나라고 여동생들과 부모를 떠나서 머리를 사자 주둥이에 처넣고 싶었겠니? 사자 입에 머리를 넣는 게 예술이에요? 아니, 사자 입에 머리를 넣는 건 용기지. 사자가 내 머리를 먹지 않게 하는 것. 그게 예술이다. 티나는 네 엄마에게 이런 말 안 했어. "하고 싶은 일을 하렴" 좋은 사람이었지만 걔는 두려워했어. 네 엄마가 어찌 될까 봐 그저 두려워했지. 그래서 미치는 꿈을 포기했단다. 얼마나 아팠는지 기억하기 바란다. 사람들이 말할 때 "무슨 일해? 귀엽네, 취미잖아." "우표나 나비 수집 같은 거야."그때 그 얼굴의 고통을 떠올려라.
▶영화 대사
보리스 할아버지: 예술이 하늘의 왕관과 땅의 월계관을 줄 테지. 허나... 네 가슴을 찢어놓고 널 외롭게 할 게다. 넌 네 가족들의 수치가 되고 사막으로 추방당한 집시가 될 게다. 예술은 장난이 아니야. 사자의 입처럼 위험하지. 네 머릴 물어뜯을걸.
보리스 할아버지는 예술은 마약이며 중독되고 끊지 못해 미치게 한다고 말한다. 예술을 해야 할 사람이 하지 못하면 얼마나 힘든지 엄마(미치)를 염두에 두고 말해준다. 예술은 하늘의 왕관과 땅의 월계관을 줄테지만 외롭게 할 거라고. 보리스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새미는 영화란 무엇인지 좀 더 고민했을 것이다.
▶영화 대사
새미: 엄마 말 안할 게. 안할 게.
이 장면은 너무 슬프다. 새미는 가족들과 간 캠핑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편집한다. 편집 도중 엄마가 아빠의 조수인 베니 삼촌과 긴밀한 장면을 포착한다. 너무 놀란 새미. 필름은 때로 원치 않은 진실을 알게 되기도. 새미는 안락했던 가족이 무너지는 것을 발견하고 고민한다. 엄마에게 화가 나 툴툴거리는 새미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아들의 행동이 이상하다며 언성을 높이다 새미의 등짝을 때린다.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새미는 엄마를 카메라 앞에 앉히더니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온다. 엄마가 영상을 보는 사이 새미는 침대에 앉아 운다. 엄마는 영상을 보고 나와 무릎을 꿇고 코드를 뽑아버린다. 자신의 불륜을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서. 울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에게 새미는 "말 안할 게" 하며 위로한다. 엄마는 아들에게 들킨 이 상황이 미어지게 아프다. 이 부끄러움을 어째야 할까.
그리고 엄마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최선을 다해보고... 최선을 다해봐도 베니와 헤어질 수 없음을 알고 결정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며 고백한다. "베니에겐 내가 필요해"라고. 옳지 않지만 나쁜 짓이지만 비난받겠지만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베니가 없으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거라며 사람은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얼마나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고 살까. 그것이 사랑. 소위 불륜일 때 그 감정을 조율하거나 거세하거나 금지시킨다. 엄마처럼 결정하기 어렵다. 가족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엄마는 가장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그걸 알면서도 하겠다는 엄마. 그래야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변명들. 새미는 엄마의 말을 담담히 듣고 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엄마가 베니에게 가겠다니... 엄마는 달걀 요리를 다 태운다. 다 탔으니 다시 만들어준다는 엄마에게 새미가 하는 말...
아니 탄 거 좋아
세상에... 엄마의 실수도 엄마의 선택도 엄마가 태운 요리도 다 좋다는 말처럼 들린다. 화도 내지 않고, 엄마의 선택을 받아주는 이 말... "아니 탄 거 좋아".
엄마의 모든 걸 받아주고 이해한다는 압축의 말. 엄마가 우리 가족을 망가트렸지만 태웠지만 그럼에도 엄마의 감정을, 엄마의 선택을 이해는 안 되지만 받아들이고 달걀이 다 탔지만 기꺼이 먹겠다는 아들의 성숙한 태도. 새미는 엄마의 비밀을 알고 난 후부터 누구보다 엄마를 관찰하고 살폈을 것이다. 엄마의 기쁨과 슬픔을 보면서 엄마의 결정을 분노 없이 받아들였을까. 엄마의 미워하고 화내고 아픈 말들을 남발할 텐데 말이다. (햄릿을 보라!ㅎ) 고등학생인 아들이 엄마의 선택을 이토록 이해할 수 있다니. 그리고 멋진 말을 던지다. "아니 탄 거 좋아"
새미의 이 표정 너무 좋다.
▶영화 대사
엄마: 내가 너 때렸을 때 피닉스에서... 너도 기억날 거야.
새미: 딱히
엄마: 평생 널 때린 것도 아니고 딱 한 번 때렸어. 기억 안 날 리가 없지.
새미: 수영 시험 전에?
엄마: 그래, 수영 시험 전 네 등을 내리쳤지. 얼마나 세계 쳤는지 넌 시험도 망치고 기능장을 못 따서 이글 스카우트 못 될 뻔했어.
새미: 결국 됐잖아. 별 거 아니야.
엄마: 네 등에 손바닥 자국도 나고. 날 용서한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새미: 그래, 용서할게.
엄마: 왜냐면... 왜냐면 내 자식이니까.
새미: 엄마, 용서할게.
엄마: 자식은 세상 무엇보다 내게 중요한 존재야.
엄마 용서할게.
내가 어떻게 날 용서해. 난 못 해.
새미: 엄마, 내가 용서할게. 달걀 탄다.
엄마: 맙소사. 이런 다니까. 이게 옳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생사가 달린 일이야. 남들은 삶에 적응하느라 그렇게들 애쓰는데 어찌됐건.... 우리도 결국에 다 괜찮아질 거야. 내가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네 아빠도 나한테 너무나도 과분한 사람이지만 베니에겐 내가 필요해. 나도 베니가 필요하고 베니가 없으면 나는 나도 모를 사람으로 변해. 너희들도 날 못 알아볼 거야. 네 등에 끔찍한 짓을 한 여자처럼 될 테니. 이건 내 평생 가장 이기적인 짓이야. 그래도 해야겠어. 왜냐면... 사람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거야. 네 삶은 온전히 너만의 것이야. 나도 상관없는. 다 탔니? 더 만들어줄게.
새미: 아니 탄 거 좋아.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파벨만스의 엄마는 엄마의 반대(?)로 꿈을 접고 결혼과 출산, 양육의 길을 걸었다. 손을 보호하기 위해 설거지를 하지 않지만 꿈을 펼칠 수 없었던 엄마. 메인 그릇만 빼고 일회용 접시, 포크, 컵을 쓴다. 영화에서는 식구들이 식탁에서 음식을 먹고 치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메인 그릇을 치우더니 식탁보를 들어 모든 음식 찌꺼기와 그릇들을 보자기 싸듯 감싸서 버린다. 깜짝 놀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야외도 아닌 집에서 일회용 그릇을 쓰더니 음식물과 재활용 분리수거도 없이 처리하는 모습에 당황스럽지만 웃음이 났다. 시어머니는 플라스틱 포크로 먹으니 음식 맛을 못 느낀다고 푸념하고. 설거지를 안 해도 되는 주부. 그것을 모두 허용해 주고 인정해 주는 가족들. 아이 넷을 키우는 게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영화는 식탁 장면으로 어머니의 피아노와 설거지 장면을 대비시켰다.
그러나 어찌 가사를 안 할 수 있겠는가. 아이가 넷인데 말이다. 엄마는 시종일관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치웠다. 가끔 피아노를 치고, 춤을 췄지만. 영화는 과거 시절 자신의 비밀. 아팠던 부분을 정성 들여 길고 친절하고 아름답게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아마도 자신의 엄마를 비난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과 엄마의 모든 걸 충분히 이해하는 아들의 마음이 담겼다고 본다.
아... 이 상황을 이 결정을 이 마음을 새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엄마의 선택으로 남은 가족들은 불행하다. 새미는 아빠와 살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지만 영화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CBS알프란 프로덕션에서 입사하고 존 포드(데이비드 린치)감독을 만나게 된다. 감독은 새미에게 카메라 공식을 알려준다. "이걸 명심해. 지평선이 바닥에 있으면 흥미롭고, 지평선이 꼭대기에 있으면 흥미롭고 지평선이 가운데 있으면 더럽게 재미없어. 자. 행운을 빈다. 이제 여기서 꺼져!" 새미는 상기된 얼굴이다. 유레카를 발견했다는 듯이. 이후 새미의 삶은 수많은 영화를 찍게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사람은 어떻게 위대한 영화감독이 되었을까. <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젊은 초상이다.
[샛별의 씨네수다] 다르덴 형제 <내일을 위한 시간> 22기 영화토론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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