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에세이, 다산북스, 2021. 271쪽 분량.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지만 완전한 삶-
한 줄 리뷰.
-첫 문장부터 압도적이다. '나는 일주일 중 이틀은 집에서 빵집을 연다'
-그럼, 나머지 요일은?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씁쓸하네.
-'빵을 굽고 파는 일이 창조적인 기쁨, 놀이의 즐거움이 되는 선에서 멈춰야 한다.'(p.17) 이 문장도 끌린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4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일한 저자.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마흔에 남편도 은퇴(동아일보 기자), 저자도 은퇴. 첫째는 초등학생, 둘째는 취학 전이었음. 대단한 용기다.
-부부는 사내 연애 ㅎㅎ
-저자는 시애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에 산다. 캐나다 밴쿠버와 가까움.
-시골 동네는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춥지 않은 지역이란다.
-야생 블랙베리를 따서 냉장고에 얼려두는 작업도 한다. 재밌는 챕터였음.
-먹는 데 돈을 덜 썼더니 크고 작은 물건들, 여행비, 오락비에도 돈을 안 쓰게 되었단다.
-미니멀리즘, 실천하는 작가님.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 100만 원이라니 놀랍다.
-우리는 1인당 이 정도 쓰지 않나. 아닌가.
-스마트폰은 없고, 통화와 문자만 되는 2G 휴대폰 두 대를 네 식구가 나눠 쓴다는데, 와 아이들이 더 대단하네.
-옛날에는 다들 스마트폰 없었는데... 이제는 엄청 놀랄 일이 되어버렸다.
-저자 집에 없는 거 세 가지: 커피, 술, 인터넷.
-처음부터 커피, 술, 인터넷을 쉽게 끊은 건 아니란다. 금단현상이 리얼하게 서술되어 있음.
-나는 스타벅스 블루베리 베이글과 크림치즈를 끊어야 한다.
-남들이 우르르 돈을 벌러 다닐 때 저자는 돈을 등지고 살기로 결정. 멋지다!
-레오 니오니 <프레드릭>에 나오는 '프레드릭' 같은 저자.
-저자의 학력과 경력이 책 마케팅에 도움이 되었을 거 같다.
-<월든>이 떠오르는 책. 다시 <월든>을 읽게 만드는 책.
-초반에는 에피소드, 저자의 경험, 결단, 포기 등 흥미진진.
-저자처럼은 못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삶을 뒤돌아 보는 시간이 좋았다.
-초반엔 너무 신선하고 재밌는데 후반에 갈수록 책 소개와 설명하는 문장들, 타인들의 시선에 반론하는 글들이 다소 거슬렸다. 자기계발서 느낌.
-일이란 무엇인지, 돈을 버는 게 무엇인지 숙고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음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 준 책.
-저자에게 꼭 끝을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려는 강박증이 살짝 보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걸까.
-유튜브에서 저자를 찾아봤는데 '숲속의 자본주의자'로 활동하고 계신다. (목소리 씩씩함.ㅋㅋ)
-집 뒷마당 풍경이 거의 월든이었음.
-별점은 5점 만점에 3.0점.
발췌
나는 일주일 중 이틀은 집에서 빵집을 연다. 그 자리에서 통밀을 갈아 갓 만든 밀가루에 물, 소금, 올리브유, 그리고 이스트를 넣어 발효 빵을 만든다. 이스트를 최소화하기 위해 하루 넘게 숙성시킨다. 믹서기는 없고, 손으로 직접 반죽을 한다. 명상하듯 오늘의 온도와 습도를 느끼며, 거기에 맞춰 빵을 굽니다. (p.15)
생활비가 줄어든다. 돈을 악착같이 모으려고 이를 악물었던 때가 있었다. 돈을 잘 모으긴 했는데, 마음은 늘 지쳐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피곤한 마음 없이 저절로 돈을 덜 쓰게 된다. 텃밭의 농작물이나 야생 먹거리만으로는 소비가 그다지 줄 수 없다. 맛에 대한 마음이 넓어지니까 맛을 더하는 노력을 안 하게 되고, 그러면서 양념류도 안 사고, 식자재도 별로 안 사는 게으른 야생 채집인이 되었다. (p.34)
마지막으로 집다운 집을 짓겠다거나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겠다는 욕망이 사라진다. 사슴처럼 나도 자연스러운 상태로 살겠다는 마음이 된다. 어딘가를 내 땅, 나의 집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어진다. 내가 식물이 아니고 동물인데, 왜 뿌리를 내리려고 했을까? 내가 사는 동안은 내가 사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고 그게 아니라면 어디로든 갈 것이다. 그러려면 아름다운 집이 짐이 된다. (p.34)
'우리의 행복을 사고,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반드시 돈이 필요한데, 도대체 그게 얼마인가?' 이 질문을 시작한 게 약 15년 전, 큰아이 돌 무렵이다. 돈에 대한 경외심과 공포심이 극에 달했던 그때는 소비를 줄이겠다거나, 시골에서 살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 혼자 버는 수입으로는 살아가기에 부족할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은 드는데, 도대체 얼마를 더 벌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막막했다. (p.39)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지금의 우리 집을 찾게 되면 세 가지 공백에 놀란다. 일단 커피를 안 준다. 없으니까. 혹시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뭐냐고 물으면 무선 인터넷은커녕 인터넷 자체가 없다고 답한다. 그리고 술을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들인데 집에 맥주 한 캔 없다.(p.45)
집에서 거의 하루 종일 지내는 은퇴자라 인터넷에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집에서도 할 일이 너무 많지만 은퇴 초반에는 남는 게 시간밖에 없는 이상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오늘 뭐 할까?" 같은 의논을 하다 보면 벌써 오후 2, 3시. 누워서 화면을 만지작거리다 보낸 날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인터넷을 끊었다. 인터넷이 필요한 일은 적어두었다가 동네 도서관에 가서 해결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웬걸. 업무는 물론 궁금한 것까지 실컷 검색해도 한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끊기 전에는 하루 종일 화면을 봐도 더 볼 것이 있었다. (p.51)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무언가 하게 된다. 그냥 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빵도 굽고 콩만 넣은 된장도 만들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애들이랑 시시한 장난도 치고 농담을 하고, 식물 공부도 한다. 봄에는 땅에 나가 쐐기풀도 따고, 블랙베리의 새순도 따 먹으며 너무나도 풀답고 새순 다운 그 맛에 감탄한다. 여름에는 대충 심어둔 호박이나 깻잎, 방울토마토도 먹고, 가을이 되면 라벤더, 로즈메리 같은 허브를 따서 말리거나 얼려 둔다. 하다가 싫증나면 대번에 그만둔다. 그러니 어떤 날은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서 천장만 쳐다보기도 한다. 대신 깨어 있는 시간에는 멀쩡한 정신으로 산다.(p.57)
공포로부터의 자유다. 먹는 일은 삶의 일부이지. 공포나 배척, 신앙 행위여서는 안 된다. 할로윈 때 아이들이 캔디를 잔뜩 받아 오면 함께 먹으며 즐거워한다. 아이들이 생일 때는 패스트푸드를 먹고 싶어 하는데, 그 또한 온 가족이 몇 달씩 기다리는 즐거운 날이 된다. 사람들과 만나 외식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때는 메뉴를 가리지 않는다. 먹는다는 것은 몸이라는 기계에 연료를 채우거나 기능을 증진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다. 먹는 건 즐거움이어야 한다.(p.61)
포기도 때가 있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p.72)
포기라는 것은 결국 욕심을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불굴의 의지 같은 건 없는 나에게 너그러워지는 과정이었다. 참고 견뎌야 할 때, 남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때 나는 그러기 싫은 나의 마음은 나만이 지켜줄 수 있었다. (p.74)
시골 동네에서 금, 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파는 빵 이야기. 우리는 매일 두 가지 빵을 준비한다. 먼저, 내가 특별히 공을 들이는 그냥 빵. 밀, 물, 소금, 이스트, 그리고 약간의 올리브유로만 만든다. (p.120)
막연히 '돈 벌기 힘들다'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집하는 대가로 돈을 적게 벌거나, 돈을 쓰는 사람에게 맞춰 많이 벌고자 하거나,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결정하는 순간 이미 능동의 세계로 넘어간다.(p.127)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번다는 것은 어쩌면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가능한 현실이기는 하되 기대하지 말아야 할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