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을 모른다.
불, 기름, 칼 등은 주방에서 많이 쓰며 모두 위험하다. 난 위험한 것들에 대해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위험을 경험으로 배웠다. 기름을 올려놓고 깜박하면 불이 난다. 소화기를 정말 많이 터트렸다. 안전 교육을 시도 때도 없이 해야 한다. 칼을 다루지 못하면 손이 베이는 것은 일쑤고 몸으로 칼을 받아내기도 한다. 몸으로 받아낸 적은 없지만 가까운 지인은 다리에 훈장이라도 된 듯 칼빵을 남겨놨다. 시간이 지나면 요식업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있게 된다.
칼을 가는 법도 모르고 식당을 시작했다. 김치도 담글 줄 모르니 잘하는 건 손으로 꼽을 수도 없다. 식당을 운영하는 건 그저 먹고사는 게 최선이었구나! 깨닫는다.
누구도 내게 칼을 갈아달라고 하지 않는다. 아내는 얼마나 답답하면 장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젖동냥 다니듯이 이 집 저 집으로 칼을 들고 다닌다. 그래도 난 갈지 않는다. 나무를 베려면 오랜 시간 도끼의 날을 세우는데 시간을 다 보내겠다는 나무꾼의 이야기는 와닿지 않았다. 나는 칼이 잘 들기 때문이다. 칼을 쓰는 법을 모르니 힘으로 칼질을 했다. 무섭게 석봉이 엄마가 떡을 썰 때처럼 난 칼이 내 말을 잘 듣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했다. 왜 칼이 무디다고 하는지 말이다.
왜 그랬을까? 오늘은 내가 칼을 갈았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던 내가 솔선수범이란 걸 보여줬다. 숫돌에 그냥 문질렀다. 갈고 다시 다듬고 또 갈고 다듬고를 반복하면서 칼이 예 뼈지는 걸 느꼈다. 대장장이처럼 뻘건 쇳물에 담그고 망치로 때리듯 날을 세웠다. 양손으로 갈면서 "칼아 예쁘게 힘들지 않고 다치지 않게 해 다오." 말을 걸었다.
칼은 묵은 때를 벗기고 민낯을 보여준다.
칼이 내게 예쁘냐고 묻는 것 같다.
"만나고 싶어"
대파를 총총 쓸고
양파와 고추를, 당근을 만나고 싶다고 말을 건다.
자기가 그들의 매력을 발산시키지 못했다며 빨리 불러 달라고 아우성친다. 알았다. 칼을 갈고 겨우내 밀린 빨래 하듯 야채들을 전부 꺼냈다. 식당을 시작하기 전 한 가지 유일하게 잘한다고 생각한 게 있었다. 앙파 썰기였다. 양파부터 시작했다. 칼이 춤을 춘다. 박치인 내가 리듬을 타고 있었다. 때를 벗긴 그가 나의 손을 잡고 지르박, 탱고 본인이 원하는 춤을 춘다. 난 그의 손을 잡고만 있다.
힘이 들지 않는다. 칼을 갈면 일이 편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보였다. 얼마나 무디면 힘으로 일을 하면서도 몰랐을까. 인터넷을 보고 칼 가는 법을 배워야겠다. 고수는 칼을 간다. 맛난 요리는 칼을 통해서 나온다. 내 칼이 춤을 춘다고 느낄 때 정말 맛있는 요리가 나올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란 책에서 <자칫하면 그냥 넘어가기 쉬운 일이지만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려면 좋은 칼을 꼭 준비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재료를 갖추었다고 해도 칼이 나쁘면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 수 없다> 기본이란 게 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기본을 지키는 습관이 중요하다. 운동을 시작할 때 준비운동을 하듯이 음식을 준비할 땐 꼭 좋은 칼을 준비하자. 좋은 칼의 기본은 칼 갈기다. 날이 서야 재료가 빛이 나고 맛있어진다.
좋은 음식을 만들 줄 모른다면 좋은 칼을 먼저 만들자. 기본의 중요성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가 배웠다. 참 무디다. 칼이 중요한지 알면서 책을 읽다가 '그렇지, 칼이 중요하지' 깨닫다니. 그래 어차피 식당하는 거 이제라도 제대로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