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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케이 Jun 04. 2019

20. 믹키라고 불렸던 그 남자  

5년동안 열렬히 사랑했던 동방의 신들은 20살이 되자마자 사라졌다. 

일을 하다가 일정을 잡기 위해 무심코 캘린더를 보는데 6월 4일이다. 

어랏. 혹시 이 날짜를 듣고 누군가를 떠오른다면 당신은 예전 학창시절 때 동방신기의 팬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6월 4일은 믹키유천(박유천)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멤버들의 생일은 모두 1월, 2월로 빠른년생이었는데 믹키유천 혼자 동떨어진 6월이라서 더욱 기억에 잘 남는 것도 있다. 마음이 떠난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6월 4일 하면 "어, 믹키유천생일"하고 떠올릴 정도로 2004년부터 2009년 초까지. 난 참 동방신기를 좋아했다. 

안티팬 아닙니다...나름 최선을 다해 그려보았습니다. HUG 

2004년 (와, 2014년이라 적을뻔했다. 2004년이라는것이 더 충격이다) 동방신기가 'HUG'로 공식 데뷔를 했다. 동방신기는 소위 데뷔하자마자 대박 친 아이돌이었다. 일명 모두가 180cm 장신에 비주얼 쇼크 (5명 모두가 잘생겼다), '아.카.펠.라' + '댄.스' 이란 기묘한 장르로 나름 얼굴도 잘생겼는데 실력도 완벽한 일종의 완전체 아이돌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때부터 동방신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2004년 초반까지는 TV 연예인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집에서 가요프로그램을 못보게 하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나는 2004년에는 꽤 모범생이어서 공부에 조금 집착했기 때문에 "동방신기"라는 단어가 아이돌을 가리키는 건지도 몰랐다. 

어처구니가 없겠지만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동방신기"가 개그맨 그룹 같은 건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 전에 확실하진 않는데 청소년 잡지 "미스터케이(Mr.K)"에서 "와룡봉추" 였나. 그런 개그맨 콤비 인터뷰 기사를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와룡봉추"와 "동방신기"란 이름이 어감이 너무 비슷해서 아 또다른 개그맨 콤비인데 개그콘서트에서 대박났나보다 라고만 생각할 정도로 무심했다. 

동방신기는 점점 모든 여중생, 여고생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HUG"부터 시작해서 "My Little Princess (마리프라고 불렀다)"로 우수어린 꽃미남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당시 반 아이들 중 약 50%는 동방신기의 팬이었고 30%는 동방신기에 호감이 있는 정도였고 20%는 신화나 god 등 타 가수의 열렬한 팬들이었다. 내 절친들도 어느순간 동방신기 팬이 되었고 나는 그들과 같이 급식을 먹으면서 자연스레 동방신기란 존재에 대해 세뇌당하기 시작했다. 

안티팬 아닙니다 222 나름 최선을 다해 그려본 The Way U Are

언제부터 그리 갑자기 훅 좋아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주입식 교육의 효과인가. 

"The Way U are"로 동방신기가 컴백했는데 그 시기에 내가 그 컴백 무대를 손꼽아 기다리며 챙겨봤던 것이 생각난다. 맨처음엔 망사옷을 입고 춤을 추는 것은 둘째치고 노래도 별로고 가사는 더 이상해서 실망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팬이라면 그런 노래도 계속 들으며 결국 그 노래에 푹 빠지게 된다. 

SM 뮤직들이 그런게 좀 많았던 거 같다. 처음에 들을 때는 "뭐야" 하고 좀 기이하게 들리다가 나중엔 그 노래 가사를 다 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말한다. "와 유영진 천잰가봐"

그렇게 나는 5년간 푹 빠졌다. 

작은 소도시 출신이기 때문에 서울 친구들처럼 공방을 뛰어다니거나 그러진 못하고 

대신 당시 동방신기 최대 팬카페 "유애X비" (내가 이 카페명을 아직도 기억하는것에 대해 소름돋았다) 와 "베스X즈" 커뮤니티에 맨날 들어가 스케줄을 확인하고 출연 방송을 챙겨보고 팬들이 올리는 영상보면서 또다시 되새김질하고 그랬다.

기린같았던 막내 최강창민

나는 다섯명 중 최강창민(심창민)을 제일 좋아했다. 

사실 처음엔 그가 안쓰러워서 신경이 쓰였다. 

인기가 제일 많은 믹키유천과 시아준수는 방송에서 까불까불거리고 알아서 잘했고 

영웅재중이랑 유노윤호도 나름 맏형, 리더로서 센스있게 말을 할 줄 알았다. 

근데 당시 연예인이라 하기엔 너무나 숫기 없었던 막내 최강창민은 방송에서 말을 하는게 너무 어색했다. 나름 농담이나 웃기려고 준비한 것도 너무 작위적이었고. 노력은 열심히 하는데 방송에서 조금 겉도는 느낌이랄까. 


원래 연예인과는 거리가 멀게 모범생 출신이어서 그런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던 최강창민은 모범생으로 공부를 꽤 잘했다. 그러다가 정말 우연히 연예인의 길을 밟게 되었다는 걸로 알고있다) 

처음엔 유독 연예인화(?)가 덜된 그가 너무 안쓰러워서 신경을 쓰다가 점점 그를 제일 좋아하게 됐다.

(와 생각해보면 난 그 때 최강창민에게 팬레터도 썼던 것 같다. 그만큼 진짜 좋아했다) 

대학생이 되면 안경벗고 살빠지고 나도 만화책처럼 환골탈태할줄알았지 개뿔 

2009년.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6년동안 쏟아부은 내 사랑은 대학생이 되었다는 이유로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동방신기가 해외활동으로 뜸했던 것도 있지만 이후 컴백했을 때도 신곡을그냥 듣는등 마는등 그들의 영상을 찾아보는 일도 거의 없었다. 팬심이 그렇게 점점 소멸되어 이제 아무런 감정이 안남아있을 때쯤 'JYJ'와 '동방신기' 사건이 일어났고 동방신기는 곧 해체가 되었다. 신기한건 나는 그 때 생각보다 담담했다. 이미 마음이 많이 식어서 그런가. 오히려 "해체될거 같았어."하고 여겼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난 한참 후에 심심해서 JYJ와 동방신기의 전말 등을 다 찾아보긴 했다. 정말 심심해서...) 

그래도 내가 한때 정말 사랑했던 오빠들이어서, 

멤버들이 드문드문 TV 방송 활동하는 건 반가웠다. 

본방을 사수하진 않았지만 어디 출연해서 인기검색어에 올라오면 그 클립 영상을 찾아보는 정도? 

그리고 최근 몇년간 믹키유천의 두가지 큰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알기론 이젠 더이상 믹키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믹키유천이라고 부르고 싶다.) 

심지어 그 큰 사건 두개는 모두 일종의 수치스럽고 고개를 감히 들 수 없는 그 정도의 스케일이었다. 과거에 그의 팬이었던 것을 부끄럽게 만들정도로. 

노란장미는 당시 '이별'을 뜻한다며 믹키유천 교체설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박믹키유천은 동방신기 시절부터 '감성적'인 걸로 유명했다. 

그 때 당시엔 그게 참 멋있어 보이면서 오그라들었다.

항상 목소리를 깔고 나레이션을 하는 건 박믹키유천의 파트였는데 그 우수에 찬 눈빛이 멋져보이면서도 연기하는 느낌도 들고. 여러모로 나는 조금 오그라들었다. (나는 나름 깔껀 까는 참된 팬이었다) 


그리고 괜히 한 음악방송 무대에서 "노란장미"를 꺼내며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한 때 "동방신기 멤버 교체설(로테이션)"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동방신기 다섯 멤버 중 암묵적으로 스캔들이 가장 많이 난 사람이기도 했다. 항상 밝게 까불까불 대는 와중에 내면의 우울함이 살짝살짝 비쳐졌던 그였지만 그러한 감성이 그의 작곡/작사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지, 이런 이상한 방향으로 풀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휴. 

이미 마음이 떠난지는 오래지만 

그를 그렇게 5년동안 지속적으로 사랑했던 나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다. 

과거의 팬마저 부끄럽게 하는 가수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4일, 

날짜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그의 생일이 떠올리다니.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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