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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경 Nov 15. 2023

대구 청소년 일상 아이디어 대회 심사 소회

'청소년 정책 제안'이 아니라 '청소년 아이디어 제안'을 하자

나는 청소년 활동을 제법 늦게 시작했다.

21살 때부터 여러 청소년참여위원회의 면접을 보았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23살의 나이가 되어서야 대구광역시 청소년참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청소년참여위원회의 역할은 청소년 기본법 제5조의2(청소년의 자치권 확대)에 잘 기재되어 있다. 

④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청소년 관련 정책의 수립과 시행과정에 청소년의 의견을 수렴하고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청소년으로 구성되는 청소년참여위원회를 운영하여야 한다.

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제4항에 따른 청소년참여위원회에서 제안된 내용이 청소년 관련 정책의 수립 및 시행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


청소년참여위원회의 역할은 여러 가지가 언급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정책을 제안하는 것이다. 청소년은 많은 정책의 수요자이지만 대다수가 피선거권이 없고 사회 참여에도 제한적이어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가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청소년참여위원회를 비롯한 참여기구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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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청소년참여기구는 활동은 좋은 '정책제안서'를 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 정책제안서라고 하는 것이 참 쓰기 어렵다. 통상 '제안 배경 - 정책 과제 - 기대 효과'의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량은 2,000~6,000자 정도이다. 단순히 생각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목표 아래 전문적인 자료를 적재적소에 유기적으로 배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23살, 교대를 다니며 교생실습을 나가고 있던 나에게 수업지도안을 쓰는 것보다 정책제안서를 쓰는 일이 더 많은 공부를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많은 참여기구가 연초에 청소년을 모집하고 나면 오랜 기간 정책제안서를 쓰는 교육을 시키고, 정책제안서를 쓰는 오랜 시간과 컨설팅을 경험하며, 결국 청소년의 실력 부족으로 제대로 된 정책제안서가 작성되지 않았을 경우 담당 선생님이 옆이 밀착하여 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소수의 청소년은 정책제안서를 쓰는 과정을 즐기고, 자신의 실력의 증진을 경험하며, 수준 높은 정책제안서로 지역의 발전을 도모한다. 하지만 다수의 청소년은 틀에 박힌 양식 속에서 허우적대며 창발적 사고를 하지 못한 채 빠르게 흥미를 잃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이제 청소년의 시기를 지나, 다양한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청소년정책제안의 현장을 바라보니 조금은 바뀌어야 할 듯한 느낌이 든다. 왜 우리는 '정책제안서'라는 형식에 그렇게 얽매이고, 청소년을 괴롭히고 있는가.

교육공학적으로 청소년참여기구의 청소년은 1년 만에 훌륭한 정책제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충분한 출발점기능과 역량을 갖추었는가? 그리고 그렇게 정확한 틀에 맞추어 어떤 정책을 제안해 내야만 결과물이 유의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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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대회의 명칭이 '아이디어 대회'라는 것에 크게 감동했다. 

이 방향이 맞다. 우리는 청소년에게 정책 제안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저 청소년의 삶 속에서 느끼는 수요자 중심의 경험과 창발적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적절한 언어로 바꾸고, 실현시키는 것은 전문가가 해도 된다.


이제 우리는 '정책제안서'라는 틀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참여기구에 들어오면 '정책'이 뭔지만 충분히 가르치자. 그다음은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마음껏 자신들의 생각을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데 집중하자. 그러면 지금에 비해 더 많은 청소년이 활동에 재미를 느낄 것이고, 우리는 지금까지 정책제안서라는 틀에 박혀, 그리고 지쳐서 하지 못했던 더 많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정책제안서는 청소년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해주는 매개가 아니라, 청소년의 아이디어의 발산을 막고, 지치게 하는 요인으로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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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대구광역시의 청년 성장 프로세스이다.

청년마저도 '청년정책제안자'라는 것이 어려운 단계이며, 일정한 프로세스를 통한 성장을 거쳐야 이를 수 있는 단계로 바라보고 있다. 청소년에게 꼭 '정책제안서'를 받아야 하겠다면 처음 청소년참여를 시작한 청소년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치밀한 성장 프로세스를 만들고 일정 이상의 역량이 갖추어졌다고 여겨졌을 때 작성하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나아간다면 대구광역시의 청소년은 더 즐거운 정책 제안 경험을 갖게 되고, 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타나 청소년계를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청소년정책제안'이라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틀을 깼을 때 청소년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지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심사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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