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는 기술이 좋아질수록 우리는 과거의 빛, 아득한 시간을 마주한다. 파병을 나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아름다움은, 절반은 우주의 가면무도회를 앞 열에서 방해꾼 없이 직관할 수 있다는 데서 온다 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유난히 별의 군대가 우윳빛으로 행진하는 날이면, 기꺼이 후회할 만한 삶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더운 바람에 껍질만 남기고 덩그러니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생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옛날, 사람들은 별을 눈에 담아 자기 길을 찾아갔더랬다. 육안으로 본 항성은 비록 우리의 것보다 멀리 과거를 거슬러 올라갈 순 없었겠지만, 한 사람분의 역사를 톺아보며 후회를 비추고 앞길을 인도하는 이정표로서는 손색이 없었을 테다.
이 우주엔 별이 지구의 모래알 수보다도 많댔으니까. 나 하나만을 위해 턱시도처럼 맞춘 길잡이를 슬쩍 기대하는 마음도 그리 못된 욕심은 아니었다. 남들 다 간다는 길에 나를 맞추려 집착하고 싶지 않았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억지로 걸치고 앞사람 뒤통수만 보는 기차놀이가 이상하게 거북스러웠다. 이제는 닳고 닳아 따끔한 맛이 없는 '나다운 삶'을, 그 덕인지 또래 애들보다 일찍 갈망할 특권을 누렸다. 1 캐럿 크기나마 내 이름이 새겨진 별자리가 이끄는 길로, 들판의 목동은 작은 보폭이지만 착실히 걷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종아리가 탱탱해지면서 집착을 좀 내려놓았나 싶었는데 웬걸, 집착도 저 죽기는 싫다는 듯 변종 바이러스가 되어 일상의 세포막을 침투하는 것이었다.
후회할 삶을 살지 말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인생은 이상하게 굴러가다 어디엔가는 가 닿을 것이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어떻게든 후회를 하진 말자.
확언으로 단정하는 부사어는 언어의 감옥이 되어 집착의 곰팡이가 속에 피기 쉽다는 것을, 가능성의 마당을 햇살과도 바람과도 단절시켜 우직으로 가장한 편협이 자라기 쉽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아쉬움이 끈적하게 묻어있는 시간으로 하루하루를 대충 쓸어 넘기다 보면 눌러붙은 때가 되어 쇠수세미로 박박 밀어도 벗겨지지 않는 회한의 지층이 될까 두려웠다. 곁에 두고 지내볼 용기가 없어서 겁이 났고, 오발탄이라도 행여 자존감을 찢고 지나갈까 무서웠다. 겁이 나고 무서우면 응당 밀어내기 마련이고, 내 삶을 못 본 체 비껴갔으면 하고 남몰래 바라기 마련이었다.
나보다 다섯 살은 어린 친구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뭐에 홀린 듯 목포에서 당진까지 차를 밟은 날이 있었다. 그날따라 비바람이 유난히 세차게 내리는 게 이거 이러다 내가 장례식장에 누워있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밤이었다. 상주복을 입은 민성은 어른 옷을 빌려 입은 아이의 그것처럼 어색해 보였다. 장례식에 혼자 가 본 경험이 없어 서툰 나를 보고 대학원 나온 거 맞냐고 놀려대는 그 모습이, 애써 밝은 티를 내려는 것 같아 속상하면서도 저답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마주 앉은 상 위에 반찬과 함께 육개장을 펼쳐놓고 우리는 안부를 맡겨놓은 타임캡슐처럼 마구 풀었다. 대부분은 내가 낭만 두세 술 얹은 이야기를 풀고 나면 민성은 그걸 주섬주섬 주워 다정한 말로 묶어주는 식이다. 마치 합을 맞춘 마임 배우처럼.
"이런 생각 다들 한 번씩 하면서 살잖아. 왜 유난 떨고 그래."
"다들 생각은 하죠. 형은 그걸 진짜로 하구요."
후회라는 말을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것처럼,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저질러보는 성격에 찬탄하는 지인들에게 감히 고백할 날이 올지 모르겠다.
후회 경연대회가 있다면 넉넉히 입상쯤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 별자리에 맡겨놓은 탄식은 선물 받은 머그잔처럼 해가 갈수록 쌓여만 갔다. 전학 가는 짝사랑 상대에게 용기를 내지 못해 며칠을 끙끙댔다던 해묵은 이야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교환학생과 복수전공을 동시에 하느라 남들보다 학교 일 년 더 다녀야 했던 고초나, 공부가 재밌어졌다는 착각에 대학원을 선택한 광기라든가, 에버랜드에서 춤춰야 한다고 제때 할 졸업과 취업을 놓친 당혹감 등이 겹으로 쌓여있었다. 그중 백미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훈련소에 또 들어가는 재입대 길이 아닐까 싶은데, 입소하기 무섭게 후회를 머리끝까지 덮을 것을 전날 저녁부터 쭈뼛쭈뼛 털이 솟으며 촉이 왔다고 하면 다들 믿지 않았다.
재밌는 점은 일련의 후회를 시간순으로 줄지어보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에서 점차 저질러 버린 것에 대한 후회로 변화하는 경향이 관측된다는 것이다. 안 하면 안 한 대로 후회하고 하면 한 대로 후회하는 게 인간 만사라면, 이왕이면 해 버리고 후회하자는 소망이 내심 묻어났던 거였나 싶다.
겁이 나고 두려운 상대를 무서워하지 않을 방법은 옆에 두고 무서워지지 않을 때까지 차근히 살펴보는 것이다. 톡 건드려보기도 하고 코에 붙이고 킁킁거리며 입안에 넣는 시늉이라도 해 봐야 이놈 이거 별거 아니구나 하고 용기가 생기는 법이다. 어떻게든 후회할 짓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또 다른 집착이 되어 통증을 안겨 왔으니 처방전에 쓸 문구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새 학기 친구처럼 후회와 낯 트기가 내게 필요한 약이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는 걸 누구나 알지만 스트레스를 0으로 만든다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몸에 이롭기만 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우린 스트레스를 '제거'한다거나 '박멸'한다는 말 대신 '저감' 혹은 '관리' 한다는 용어를 쓴다. 후회도 그런 게 아닐까. 결코 후회 없는 삶을 목표로 집착에 고통받기보다는 감당할 수 있는 후회로 지나간 나와 건강한 관계를 이어가는 쪽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후회를 적당한 수준으로 관리해 한탄이나 회한, 원통같이 끈적한 감정의 언어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숨겨진 섬의 보물을 찾는 요령이 하나 더 늘었다.
행복해지려고 사는 게 아니라고, 니체는 말하던데 후회하려고 산다는 말은 더욱 맞지 않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살아간다는 말은 그럼 맞는 걸까. 모르겠다. 그저 후회도, 후회하지 않음도 내 삶에 찾아온 사건의 인연을 오롯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태도가 된다면, 밑바닥까지 삶의 필연성을 긁으며 탐닉하는 국자처럼 쓰며 지내고 싶다. 기꺼이 후회할 삶으로, 하지 않음을 후회하기보다는 해 버렸음을 후회하는 태도로, 잔잔하고도 하찮은 탄식으로 오늘이라는 그릇을 꾹꾹 눌러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