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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Sep 13. 2022

한창, 반주가 맛있을 나이

개화동 제일한우촌 간장게장정식


갈 길이 멀다. 가득 차려진 한상의 반찬의 맛을 모두 천천히 吟味(음미) 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조금 힘에 부쳤다. 더위나 계절이 기승을 부리는 건 시기마다 일어나는 같은 일인데 유난히 새벽부터 으스러지게 귓가에 맴도는 새소리가 거슬린다 해야 할까. 날카롭게 깎아 올린 신경이 스쳐 지난 지난밤에 부족한 수면시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방은 오래된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닮기로는 경의 중앙선 열차를 타고 내리던 K , MT-촌에서 食事(식사)와 宿泊(숙박)을 병행할 수 있는 주상복합 시설처럼 보였다. 입구에서부터 해를 가리기 위한 것인지 신비로운 효과를 위해 일종의 톤 보정을 기대했던 것일지 이와 같은 환경에서 여러 번 공통적인 느낌을 받았던 ‘푸른색 시트지’는 한낮의 뜨거운 햇살의 은은하게 그리고 조용히 바깥세상으로부터 차단하고 있었다. 


어설프지 않고 정직하게 빛바랜 에어컨의 외관의 색, 물가 상승에 야무지게 여러 번, 漆甲(칠갑)을 두른 메뉴판에서 알 수 있는 세월의 풍파는 이곳이 그 멀다는 길을 아주 오래전에 출발해 오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반들반들해진 테이블과 어느 계절까지는 좌식이었다 이제는 달라진 지금의 구조를 어렴풋이 떠올리던 중에 조심스레 넣어져 있던 의자 끄는 소리로 그 시간이라면 자연스러운 寂寞(적막)을 깼다.


뒤돌아보면 놀라울 만큼 빠르게 지나있는 시간을 보고도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고단했다. 점차에서, 이미 한참 더워진 날씨에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일 말고 숨을 고르기엔 공회전만 한 것이 없어 보였다. 모든 걸 잠시 멈추고 둘러앉아 금방은 끝날 것 같지 않은 이른 시간에 낯설기만 한 그곳으로 향했다. 휴가철에도 여행은 부담스럽고 補身(보신)까지는 아니었지만 작은 逸脫(일탈)이 자 소소하지만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따끈한 밥 한 끼를 같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는 익숙하고 적막한 분위기인 이런 곳에서 술판을 버린다면 동네의 어느 역 앞에 맛집이 아니라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근교 드라이브 코스나 여행지, 내지는 거처 가는 길목의 어느 외딴곳에 있는 로컬에게도 식사에 있어 상징적인 곳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애초에 한우를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고향 같은 (촌)에 들어선 한우 마을에 대한 ‘定食(정식)’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다. 말하자면 추어탕 집이나 두부두루치기 집에서 ‘돈까스’를 주문하는 것 같은 남다른 선택인데 오히려 그 ‘돈까스’를 주문하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 왔고, 그 타당성에 대해서는 다녀간 사람들 모두 의심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쪽이 더 먼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과 경험은 신비롭게도 옳았다. 기대 없던 튀김옷을 입은 돼지고기가 진짜 ‘가츠’였던 건지 모를 일이니까. 


반전을 위해 ‘한우’라는 타이틀로 위장한 이곳은 실은 속세를 벗어난 ‘프로 간장게장’ 선수가 운영하는 고급 백반집이면서 동시에 불판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고깃집이었다. 이런 곳에서 소고기라는 거들뿐인 걸까. 질 좋은 재료를 굽거나 튀기면 웬만해선 기본 이상의 맛을 낸다는 일상적인 기대는 작은 호기심 정도에 그쳤다. 백반에 반주, 정식에 곁들이는 飯酒(반주)는 말 그대로 잘 차려진 집 밥에 술을 얹은, 한식대첩의 술상 버전을 보는 일이었다. 



간장게장은 사 먹어야 닿을 수 있는 음식이고 음료를 곁들이지 않아도 목적 달성을 위해 필사적이었다면 무엇이든 조화로운 곁들임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슴슴한 간장 베이스의 숙성 메뉴와, 계속해서 요구하게 만드는 소소한 찬들, 묵지 않고 살아있음이 온전히 느껴지는 쌀알 한 톨이 모여 뭉친 정갈한 밥그릇 안의 따끈한 온도에 차가운 냉장고 안에서 이제 막 꺼낸 소주, 그리고 공회전에 도움을 줄 복분자 한 병을 어김없이 털어 넣는다. 그 순간 옛 어른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술 따로, 밥 따로 먹던 사람이 반주가 맛있어지면 나이가 든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진짜 飯酒(반주)였다.



EDITOR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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