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1: 글자에 관한 판타지적 상상.
글자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길래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것일까? 그리고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판타지적 상상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문자를 아는 사람이 극소수였고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글자가 가진 힘을 독점하고 있던 것이다. 문자로 불이라 쓰면 실제로 불이 되고 벼락이라 쓰면 벼락이 내리치는 그런 힘. 부적이 가진 힘이란 그런 것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몇몇 반역자들이 글자를 훔쳐 일반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고, 글자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글자가 가진 힘은 약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힘이 약해지다 못해 같은 글자를 보아도 서로 다르게 해석해서 사람마다 뜻이 통하지 않게 되는 지경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
생각 2: 글씨를 보면 떠오르는 일화.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글씨를 어른처럼 쓰고 싶었다.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인데, 당시에 내가 생각하는 어른처럼 쓰는 글씨는 가로보다는 세로가 조금 길도록 모음을 길게 늘여 쓰는 글씨체였다. 그런 글씨를 따라서 쓰다 보니 친구들이 어른처럼 글씨를 쓴다고 해줬다. 내심 뿌듯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내 글씨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어느 날 수업 시간이었다. 문제에 대한 답을 칠판에 적기 위해 친구 몇몇과 함께 앞으로 불려 나갔다. 나는 여느 때처럼 글씨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한 채로 답을 적고 자리로 들어왔다.
담임교사가 순서대로 설명하다 내가 쓴 답안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내 글씨를 두고 험담했다. 글씨가 이상하다고. 내 기억에는 그런 언급이 나올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그래서 상당히 뜬금없다는 생각과 함께 기분이 나빴다. 내 글씨가 이상하다는 말을 들은 건 그때 이후로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글씨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촌지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스스로는 촌지와 관련된 경험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나의 그 생각은 착각이었다는 것을 30대가 되고서야 알았다. 우연히 어머니 초등학생 때 있던 이런저런 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촌지를 준 적이 없어서 몇몇 담임교사들은 나를 싫어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칠판에 적어둔 내 글씨가 떠올랐다. 나는 아직도 상대방의 언행에서 숨겨진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고민하지 않는다. 9살의 나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그날의 일은 나와 부모님께 보낸 신호 같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