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찾아올 무렵, 학교는 겨울방학을 맞이했고, 나는 인천공항에 있는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월세, 생활비, 각종 공과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일주일에 4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에 8시간씩 근무하면 됐다. 그 외에는 온전히 개인적인 시간이 되었다. 한 가지 일을 더 할까 생각했지만, 보수가 좋은 편이라 금전적인 부담을 덜 수 있었다(거리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온 이유이기도 하다). 예식장, 카페,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있는 호텔이었는데, 주로 몸담은 곳은 레스토랑이었다(종종 예식장이나 카페도). 프론트에서 일하는 호텔리어를 제외한 직원들은 호텔 뒤편 길로 출근했다. 그곳을 지나면 환풍구에서 수영장 락스 냄새 같은 것을 필연적으로 맡게 되는데, 나는 그 향을 꽤 좋아한다. 꽤 중독성이 있지 않은가. 길 건너편에 흡연장이 보이면 호텔건물에 음산한 철문이 하나 나온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락스 냄새는 사라지고 세탁소에서 풍기는 약품 냄새가 진동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호텔의 의상 규정 중 기본은 정장이었다. 직원도, 아르바이트생도 흰색 셔츠, 검정 정장, 뾰족한 정장 구두를 신고 종사해야만 했다. 다소 까다로워 보이지만, 구두만 준비하면 나머지는 이 약품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빌릴 수 있었다. 입구에서 복도를 조금만 걸어가면 우측 통유리창에 개찰구처럼 구멍이 하나 나 있고, 구멍 안쪽으로 매서운 눈매가 매력적인 부부가 늘 같은 자리에 앉아있다.
“학생 또 왔어? 잘 버티네- 꽤 힘들 텐데.”
“이만한 시급을 가진 일자리가 몇 없어서요. 당분간 잘 부탁드립니다. 사모님.”
“사모님은 무슨- 장여사라고 불러! 라지 사이즈로 주면 되지?”
“부탁드릴게요.” 나는 신고 있는 구두의 앞꿈치를 반복해서 부딪혔다.
정장 한 벌을 들고 남성 탈의실로 가서 환복을 마치면, 곧장 승강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승강기 바로 앞에는 매니저를 포함한 직원 사무실이 있었는데, 아르바이트생도 일단 그곳에 모여서 그날 일할 곳을 배정받았다.
“훈이 왔어? 마침 잘 왔다. 오늘 콘퍼런스 행사가 있어. 거기 일 마치면 예식장에 힘 좀 실어줘.”
아르바이트생 관리는 매니저 중 한 명이 하고 있었는데, ‘허브’라는 별칭을 가진 남성이었다. 그는 180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장대 같은 키를 가지고, 머리를 뒤로 넘긴 멀끔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 허브를 보고 당황했던 점이 있었는데, 그는 얼굴 반쪽의 털이 모두 흰색으로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개성의 시대라고 하지 않았던가. 의도한 염색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눈썹은 그렇다 쳐도 눈꺼풀까지. 그것도 매번 볼 때마다 염색한 것과는 다르게 색에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노인의 흰머리도 다 같은 색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가 가진 건 백반증이라고 보는 편이 합당했다.
그가 건네준 근무 기록지에 오늘 날짜와 이름을 적고, 콘퍼런스가 예정되어 있는 3층으로 이동했다. 행사장 입구에는 둔중하고 진한 붉은색의 방음문이 양쪽 끝까지 열려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검정 식탁보가 씌워진 원형 탁자와 녹색 의자들 여러 쌍이 배치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시상식이나 만찬이라도 진행할 법했다. 외곽에는 호텔에서 준비한 각종 다과와 커피머신이 놓였다. 그 앞에 나와 같은 종류의 정장을 입은 단발의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정장도, 머리칼도, 자세도 어느 것 하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그는 내 존재를 눈치채고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오늘 여기 담당하세요?” 내가 물었다.
“네.” 간결했다. 나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그의 언저리에서 고급지게 생긴 커피머신을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지 설명서를 읽었다.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 내게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는 용어 천지였지만, 버튼마다 그려진 그림들이 그 기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허브에게 듣자 하니, 콘퍼런스를 주최하는 기업이 이 커피머신을 제작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나.
잠시 후, 호텔 매니저와 기업의 담당 직원이 들어와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나 조명, 음향 환경 확인까지 끝마치고 나서야 한숨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행사장은 방대했지만, 창문이 없어서인지 어딘가 답답해 보였다. 기업의 직원은 공간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물어보고, 적고, 끄덕였다. 구레나룻에 땀까지 맺혀 있어, 보는 내가 급해질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기업에 어엿한 직원으로 취직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의 다급함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책임감의 형태가 그의 손에서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현대의 조직에 속해진다는 건, 사람과의 관계를 원한다는 원초적인 목적보다는 급여, 경력 혹은 매력적인 인맥 등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욕망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눈앞에 보이는 저 긴장감은 그 급여의 대가로 이해하면 되는지, 추측만이 난무할 뿐이었다. 저마다의 절차로 이루어지는 것들에 반하는 생각을 가졌더라도, 있는 그대로 뱉어내면 조직에 섞이지 못할 여지가 생긴다. 그런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찝찝한 인상을 심어줄 순 있을 것이다.
좌석 대부분이 정장을 입은 이들로 채워지자 조명이 어두워지고, 박수갈채 속에서 한 남성이 무대로 올라섰다. 그는 자신을 기업의 상무라고 소개했다. 동시에 차세대 커피머신 자료가 거대한 화면에 띄워졌다. 당장 내 옆에 있는 커피머신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으나, 모두가 손뼉을 쳤다. 그럼에도, 이들의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임에는 틀림없으므로, 디테일한 변화가 녹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구두를 신고 계속 서 있으면 발바닥에 열감이 차오른다. 그래서 바람이라도 통하게 하려면 발을 들었다 놨다 하며 발을 동동 굴러야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소변이라도 마려운 사람 같았다.
“정신 사나우니까, 발 아프시면 뒤에 잠깐 앉아 계세요. 어차피 어두워서 외곽은 보이지도 않아요.” 단발의 여자가 말했다.
“아, 네. 미안해요. 다리 안 아프세요?”
“아파요. 교대로 앉죠.” 나는 다과 옆에 있는 의자를 여자의 곁으로 가져왔다.
“반씩 앉을래요?”
“됐어요. 엉뚱한 사람이네.”
“하하. 저 상무라는 분 말 끝나기 전까지 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김훈이라고 해요. 이름 물어봐도 돼요?”
“김아리이에요.”
보통 레스토랑이나 예식장에서 일하면, 주문이라든가 서빙이라든가 앉아있을 새 없이 일만 했는데, 이런 행사 덕분에 앉아있을 수 있는 건 행운이었다. 한 가지 여담으로 말하자면, 내게 하루의 여유는 전적으로 다음 날 일정에 달린 편이다. 가령, 다음 날 아침부터 눈을 뜨고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면, 잠들기 전까지 내 시선은 출근 시간으로 앞서가 있다. 걱정의 형태를 띄운 상태로 말이다. 그리고 이 형태는 최근 겪어온 일의 강도와 스트레스에 따라서 더욱 위협적으로 만들어진다. 당장 여유 있는 책 읽기, 러닝, 영화 속 절체절명의 상황에 몰입하려면, 마음만 먹으면 한두 시간쯤은 넉넉히 게으름 피울 수 있는 시간이 받쳐주어야 하는 게 나라는 인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한테 치이는 일 없이, 자리만 지키면 되는 일이라니. 당분간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 사람들 피곤하겠죠?” 내가 말했다.
“뭐가요?” 아리가 옷맵시를 정돈하며 대답했다.
“직급이 상무면 아무래도 임원이니까, 저 사람 말 한마디에 큼지막한 일이 생겨나잖아요. 콘셉트가 달갑지 않아도 목소리 내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고. 월급이라는 보상은 확실히 있지만, 힘든 건 힘든 거잖아요.”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것 같아, ‘아차’하는 동안 답변이 곧바로 들려왔다.
“우리가 저 사람들을 이렇다 저렇다 할 자격은 없죠. 취업이 목표가 된 시기도 있겠지만, 커리어 발전에 열의를 갖는 건 또 다른 목표가 파생된 거니까요. 피곤함에 긍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훈씨 말에 한마디 첨언하자면, 저는 넘쳐나는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외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의하면, 우리 동양 사람들은 유교 문화를 기본으로 배워온 것 때문에, 어른을 공경해야만 하고, 잘 듣고 잘 따르고. 하물며, 토를 달거나 반대하기 어렵게 은연중에 교육받았다고 해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고, 배려해서 말을 삼가죠. 비교적 평등한 관계인 학교에서보다 직급 체계가 있는 회사에서는 어떨까요. 회의 중에 곤란해질까 하는 생각에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일도 있고, 집단주의 성향이 강해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대세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죠.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건 그런 환경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 상무라는 사람이 오늘 회식으로 돼지고기를 먹자고 하면 돼지고기를 먹겠죠? 저라면 소고기를 외칠 거예요.”
“반영이 안 돼도요? 그전에, 질타를 받을 수도 있잖아요.”
“일만 잘하면 됐죠.” 아리가 웃었다.
“저는 저 직원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업을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빚이든, 가족이든… 단지, 그렇게 애쓰고 힘쓰면서 버티도록 만든 체계를 바꾸고 싶을 뿐이에요. 이래 봬도 사업가가 꿈이거든요.”
아리의 말을 들으며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반듯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와는 달랐다. 현실에 불만을 털어놓는 이가 나라면, 아리는 타개할 생각을 했다. 행사장의 어두운 외곽에서도 그 기개가 그렇게 빛났다. 말없이 아리를 쳐다보다가, 멀찍이서 들려온 매니저의 손가락 튕기는 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예식장으로 이동하라는 신호였다. 아리는 처음 봤을 때처럼, 내게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하고, 단정하고, 일관성 있는 소녀였다. 어쩌면, 보지 못하는 훨씬 더 많은 곳에서 ‘용기’라고 불릴 만한 것이 일렁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식장에서 할 일은 레스토랑에서 하는 일의 종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객의 커피나 물이 떨어지면 그들의 우측으로 가서 컵을 채운다. 그 외에는 접시를 치워달라거나 쿠키를 더 달라는 식이다. 누구의 부름도 없을 때는, 콘퍼런스 행사장에서처럼 어두운 곳으로 가서 눈에 띄지 않는다.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예식은 주인공의 동선은 밝게, 하객이 있는 곳은 비교적 어둡게 조명이 들어가 있다. 호텔은 그보다 이슥한 곳에서 신부의 드레스를 끌어주고, 다시 커피를 채우고, 조명의 밝기를 조절한다. 그런 식으로 주인공을 그 어느 때보다 찬연하게 만드는 일이 이 조직의 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