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식사를 위해 집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젊은 커플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였는데, 숲을 콘셉트로 잡은 실내장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 근방에서는 꽤 유명해졌다. 겨울임에도 내부는 울창했고, 풀의 종류에 대해서는 무지했지만, 코가 쾌적해질 정도의 향은 무척 좋았다. 카운터에서 치킨 리소토와 히비스커스 차를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아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입학 기념으로 구매한 노트북과 마우스를 꺼내 펼쳤다.
나츠에게
문자 고마워. 너를 따라 편지처럼 써보려고 해. 어색해도 이해해 줘.
나는 지금 막 답장을 하기 위해 브런치 카페에 와서 앉아있어. 그리고 일본 여행을 결심했다는 소식을 네게 전해. 미리 말해두지만, 난 너에게 사과받을 일이 없어. 실수하지도 않았고, 했다고 해도 밥을 얻어먹을 정도는 아니야. 그러니까, 음식값은 나누어 내는 걸로 알아두었으면 해. 내가 일본에 가는 건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일 뿐이라는 걸 명심하길 바라!
항공편 일정을 알아보고 정확한 출국 일자가 정해지면 문자 보낼게. 서울은 여느 해보다 현저히 기온이 낮아서 겹겹이 입은 사람들밖에 없어. 후쿠오카는 비교적 따뜻하겠지만, 감기 주의하면 좋겠다. 유키에게도 안부 전해줘.
1월의 어느 날
템스강 거리를 그리워하며
김훈
나츠에게 문자를 전송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동벨이 리소토와 차가 완성되었다는 신호로 강한 진동을 울렸다. 작은 목제 쟁반에 올려진 접시 옆으로 냅킨 석 장을 얹어서 가져왔다. 노란빛의 먹음직한 치킨 리소토 위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한입 가득 떠먹자 리소토 향이 입안 가득 채워졌다. 나는 본격적으로 출국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일주일을 여행 기간으로 잡는다면, 아르바이트 일정이 겹치기 때문에, 호텔 측과 협의가 우선이었다. 정확히는 부탁에 가깝지만. 절차는 절차이니, 호텔에서 근무 중일 허브에게 연락을 취했다. 한 주만 근무를 빠질 수 있느냐고. 하루도 아니고 나흘의 공백을 만드는 일이라, 반려될까 걱정이 앞섰지만, 결과적으로 휴가를 사용하는 인원이 없는 1월 마지막 주에 쉴 수 있게 되었다. 날짜가 정해지고부터는 일사천리였다. 항공, 호텔, 고속버스, 교통권의 예약과 결제, 그리고 나츠에게 일정 공유까지 마쳤다. 출국 날짜까지 시간을 넉넉히 두지 않고 예약했기 때문에, 항공권 구매비용이 비싼 감이 있었지만, 나츠와 유키가 동시에 시간을 비울 수 있는 날이 포함되어 있어 변경할 궁리는 하지 않았다. 선행 준비를 마치고부터 출국 날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가능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저가 항공사(LCC) 항공편 중에서도 이른 아침 시간대를 예매했다. 국내 저가 항공사는 대부분 B737-800 비행 기종을 운용하고 있었고, 내가 타게 될 기종도 그러했다. 인천공항의 탑승구에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항공기가 지상 교통 직원의 유도에 따라 둔중한 몸을 옮기더니, 게이트 사이에 다리가 연결됐다. 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 탑승률 95% 이상은 채울 정도의 승객들이 줄을 만들었다. 나는 당장 배낭 하나만이 짐이었으므로, 급하게 탑승할 이유도 없었다. 줄이 줄어들면 탑승하기로 마음먹고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만을 움직였다. 그렇게 시선을 옮기다 한 가족에게서 멈춰 섰다. 이들은 모두 금발의 백인이었는데 부모로 보이는 이들 사이에 소년 한 명이 있었다. 그러니까, 중앙통로를 사이에 두고 왼편에는 내가, 그들은 우측에 있었다. 시선이 멈춰 선 데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금발의 소년과 눈이 마주쳤을 뿐이었다. 나와 소년은 5초가량 아이 콘택트를 지속했다. 그리고 반갑다는 의미로 휘저은 나의 손짓 몇 번으로 소년은 제 어미의 뒤로 잽싸게 숨었다. 다시금 흥미를 유도할 시간이 내게는 남지 않았기 때문에 배낭을 메고, 게이트 앞으로 움직였다.
새벽 시간 비행인지라 피곤을 호소하던 눈은 좌석에 안착하자마자, 창밖을 볼 새도 없이 단잠에 들었다. 나를 잠에서 깨운 건 항공기가 지면에 닿을 때 발생 되는 충격이었다. 잠에서 갑작스럽게 빠져나와 비몽사몽 했으므로, 눈을 질끈 감고 양 손바닥으로 눈을 감쌌다. 그 사이 승객들은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마자 사전에 짜기라도 한 듯 일제히 일어나 짐을 챙겨 빠져나갔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하카타 시내까지 가는 교통수단은 몇 가지가 존재한다. 나는 시간은 조금 더 소요되지만, 환승 없이 이동할 수 있는 버스를 택했다. 하카타 시내에서 하차하여 호텔까지는 도보로 10분. 아침 비행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유키와 나츠를 만나기로 한 점심시간이 코앞까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