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여자는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다.’라는 담론이 가장 크게 여자를 억압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연애는 ‘너가 나를 사랑한다.’가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연애들이 항상 행복했다.
대부분 여자가 서운한 지점은 남자가 그렇게 행동해서도 있지만, 그 행동에 대한 것보다 ‘나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이다. 그래서 서운하다. 많은 사랑을 받고 싶은데 그러지 않아서 서운한 점들이 생기는 것이다. 남자는 그 상황만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큰 사랑을 받고 싶고 확인받고 싶은 여자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여자들은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 사건이 아닌 외적 요인에 관심이 쏠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주변 남자애들이 여자친구와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소연처럼 늘어놓으면 ‘여자가 잘못했네. 그런데 그 여자 너 많이 좋아하나 보다. 사랑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평소에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으면 그런 사소한 것들로 싸우는 일이 많이 줄어들 거야. 많이 예뻐해 줘.’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끔 이런 해결책들이 정말 맞나 생각한다. 여자들은 아내에게 헌신적이고 오랫동안 한결같이 사랑해주는 남자에 대한 로맨스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애처가들은 많은 인기를 얻는다. 그런데 다만 여자만이 사랑을 그토록 원할까.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남자 또한 사랑이 필요하다. 오히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남자들도 무척 강하다. 한마디로 그것들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남자도 칭찬받고 싶고 사랑을 표현 받고 싶어한다. 적어도 내가 만났던 남자들은 마음속에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반짝이는 목걸이를 아내에게 선물하고 그것을 받고 환하게 웃는 여자의 모습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상술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본주의는 우리의 뼛속 깊숙이 스몄다. 몇몇 남자들은 돈을 많이 벌어 아름다운 여성을 ‘쟁취’하고 싶어 하며 몇몇 여자는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본인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주며 평생 사랑해줄 것을 기대한다. 일반화된 남녀 관계의 위치는 때때로 우리를 패배감에 젖게 한다. 사랑에서도 사회적으로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라고 이야기 되는 것은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다. 세상 모든 남자가 아이언맨의 주인공처럼 주차장에 여러 대의 스포츠카를 세워두고 오늘은 무슨 차를 탈지 고민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여자가 트랜스포머 여주인공처럼 아침부터 그렇게 아름답고 완벽한 몸매로 일어나지 않는다. 남과 여의 이상과 현실은 아주 멀다. 그러나 그것을 노력하면 가질 수 있을 것처럼 포장하고 평범한 일상을 패배자의 하루로 만들어버리는 게 자본주의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넘어서 연애에서도 일반적이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관이 아닌 정확한 자기 주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곧바로 서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 남들의 시선에 맞춰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드라마에서 나이많은 남자의 아내를 다른 사람들이 '트로피 여사' 라고 부르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나이많은 남자는 그의 아내가 이쁘고 젊었기에 정말 사랑스러웠을 수도 있다. 허나 그러면 왜 다들 그의 아내를 '트로피 여사' 라고 불렀을까. 그것은 그 남자의 부에 대에 대한 성공의 상징적인 의미와 과시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자랑하고 싶고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선물을 받았다는 것보다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 할 수 있음으로 그 의미가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도 모른채 자신의 삶을 전시하며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 깊숙히 내제된 욕망의 왜곡에 대해서 별 문제 의식없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정말 원하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인지 말이다.
연애를 하게 되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은 만나는 남자가 차가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내게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지만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러한 질문들이 불편했다. 이미 질문 자체에서 그들의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질문들은 종류와 범주가 더 다양해질 것이다. ‘여자는 사랑받아야 한다.’의 다음명제로 ‘좋은 경제적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라는 명제가 뒤따르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대상이 되는 남자들에게도 굉장히 스트레스 되는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만남에 있어서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 적나라하게 그들의 기준에 맞춰서 일순간에 평가받는 일 또한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여자에게 요구되는 외적 요인과 남자에게 요구되는 경제적 능력과 같은 이 모든 구분 짓기 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소수의 승리자만이 기쁨을 얻어갈 수 있는 피라미드 구조이다. 이러한 서로를 묶어두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안다. 그러나 오래되고 해묵은 세상이 바뀌기보다 결국 여자는 몸매를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남자는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마른 여자라는 추세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바나나와 사과 몇 조각 만을 접시에 올려놓고 점심밥이라며 SNS에 올리는 것이다. 필자는 선을 봐서 조건 맞춰서 결혼하지 말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라는 말을 쓰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아리따운 여성을, BMW를 모른 척하라는 게 아니다. 사회적인 보편적 가치보다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기준과 가치를 찾아야 행복에 더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잘난 사람은 너무 많다. 끊임없이 자신과 누군가를 비교하며 경쟁에 자기 자신을 내던지지 말자. 마음이 숨 쉴 수 있는 여지를 두자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이 나답지도 않고, 세상의 기준에도 맞지 않은 어중간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도 저도 아닌 그저 그런 사람이 돼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국 나는 나다운 것을 택하기로 했다. 그 누구를 만나서도 ‘나인 채로 사랑받고 싶다.’라는 욕구를 떨쳐내지 못한 탓이다. 결국, 지금의 나는 매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모두가 이 세상 많은 사람이 ‘남’ 눈치 보지 않고, ‘남’들을 위한 삶을 살지 않고, ‘남’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며 살아가길 바란다.